입력 : 2018.10.28 04:00
“한강철교 옆에 태양열판이 부착된 12개의 주거용 타워가 한강을 가로질러 서있다. 중랑천 제방 옆엔 도로를 따라 이른바 ‘섬 도시’가 들어선다. 장마철 불어나는 물을 임시로 저장하기 위해 설치된 마포대교 북단 마포 유수지(遊水池)엔 공유주택과 공원이 입체적으로 설치되고, 한강엔 강남·북을 잇는 보행자 다리가 조성된다.”
국내외 유명 건축가들이 건축적 상상력으로 서울의 미래 도시 모습을 대담하게 그려낸 건축 작품을 대거 선보여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울시가 옛 남대문세무서 터에 짓는 서울도시건축박물관 임시 개관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슈퍼그라운드: 서울 인프라 공간의 미래비전’ 전시회가 그것.
출품된 18개 작품은 서울의 정체성을 살리면서도 누적된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해 서울의 미래 모습을 창조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영준 전 서울시 총괄건축가는 “대부분 작품이 상상에 바탕한 설계여서 어쩌면 허황된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면서 “하지만 현실적인 서울의 조건을 대입해 가까운 미래에 적용할 수 있는 뜻깊은 작품들”이라고 했다.
땅집고가 서울의 미래 도시 모습을 창조적으로 그려낸 작품 중 대표적인 5개를 골라봤다.
1. 한강보행교 ‘거주하는 다리’
현재 한강을 가로지르는 28개 다리는 모두 자동차 전용이다. 동작대교, 마포대교 등 많은 다리에 보행로가 있기는 하지만 진짜 ‘뚜벅이’만을 위한 다리는 없다.
서울시 총괄건축가를 역임하고 현재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승효상 이로재 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는 한강의 남과 북을 잇는 보행자 다리를 제안했다.
그는 “한강의 29번째 다리로 용산에서 시작해 한강을 건너 반포의 덮개공원을 연결하는 첫번째 보행교를 그려봤다”고 했다.
승 대표가 제안하는 ‘거주하는 다리’ 위엔 차가 다니지 않는다. 이 길은 서울 곳곳의 골목길을 닮아 이리저리 휘어진다. 다리 위엔 편의시설은 물론 석양을 보며 쉬는 휴식공간도 마련했다. 곳곳엔 마당과 작은 공연장, 갤러리와 작은 가게들이 있다.
다리 북단엔 한강 위에 400m 길이 새로운 대지를 만들어 물 위에 띄워놓았다. 강변에선 요트와 낚시 등 물놀이를 할 수 있고, 땅 위에는 식당이나 카페, 수상 편의시설 등이 들어선다.
2. 한강철교 ‘헬리오모픽 서울(Heliomorphic Seoul)’
한강철교는 한강에 최초로 건설된 다리로 노량진역과 용산역을 잇는다. 서울 개발의 산증인이며 ‘한강의 기적’을 상징하기도 한다.
찰스 왈드하임(Waldheim) 하버드 디자인대학원 교수가 제안하는 ‘헬리오모픽 서울’은 태양열판이 부착된 12개의 주거용 타워를 한강철교 양 옆으로 각각 여섯개씩 배치한다. ‘헬리오’는 ‘태양의’라는 의미의 접두사다. 이 프로젝트는 태양열을 통한 친환경 에너지 모델을 지향한다.
거대한 타워의 외관 패널엔 식물을 배치해 주변 공기를 정화하고 고층부에 있는 주거공간에 에너지를 지원한다. 안개집수 스크린은 상층부 수증기를 흡수한다. 헬리오모픽 서울은 개발 시대 상징인 한강철교 인근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지속 가능한 주거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3. 4호선 창동역~당고개역 ‘서울 라퓨타’
서울지하철 4호선 창동역과 당고개역을 고가(高架) 철도로 연결하는 구상이다. 철도는 시민의 발 역할을 하는 동시에 지역의 남과 북을 차단하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김찬중 경희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기존 고가도로와 주변 건물을 활용한 새로운 도시재생 방안을 제시한다.
전동차가 다니는 고가철로에 지붕을 활용해 플랫폼을 만들고 인접 건물에 연결한다. 연결된 고가로 생긴 부지는 해당 건물 소유자에게 점용권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구축한다. 인접 대지 점용권을 받은 인근 건물주는 플랫폼 위에 일정 규모 이하 시설물이나 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 인센티브를 받는 셈이다. 이렇게 남북을 잇는 공중도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김 교수는 ‘서울 라퓨타’ 프로젝트에서 고가철도나 건물 옥상 같은 공중공간을 개발할 수 있게 해 토지 소유자들에게 인센티브를 주자고 제안한다.
4. 마포유수지 ‘마포중첩경관기계’
마포대교 북단의 마포 유수지는 현재 주차장으로 쓰면서 장마철 불어나는 강물을 임시로 저장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서울시는 정부와 함께 한강 자연성을 회복하고 관광자원화하는 차원에서 마포 유수지 공영주차장 일대를 문화복합타운으로 개발한다는 계획이었다.
스페인 건축가인 페데리코 소리아노(Soriano)와 돌로레스 팔라시오스(Palacios)는 이 곳에 물재생센터와 수영장·공원·식물원 등 공공시설, 청년·노인 공유주택, 숙박시설, 상업시설 등이 복합적으로 들어서는 친환경 복합건물 ‘마포중첩경관기계(Mapo Stackedscape Machine)’를 제안했다.
공공성을 잃지 않기 위해 자연적인 물 관리와 정화를 위한 물 재생센터를 기반에 두고, 그 위에는 층을 겹겹이 쌓고 층별로 상업시설, 유흥시설, 전망대, 주거시설 등을 배치하는 방식이다. 도시는 물 재생센터라는 인프라를 얻을 수 있고, 디벨로퍼(부동산 개발업자)는 각종 시설에서 나오는 수익을 얻을 수 있다.
5. 송정제방공원 ‘구두장이의 섬’
서울 성동구 성수동은 오래된 구두공장 밀집지역이다. 최근엔 강남으로 이어지는 지하철 분당선이 개통되고 서울숲이 들어서면서 서울에서 가장 ‘힙한 지역’ 중 한 곳으로 떠올랐다.
삼표산업 성수공장은 서울숲에 편입돼 더 큰 공원으로 조성될 계획이다. 삼표공장 터에는 일본 도쿄의 산토리음악홀, 프랑스 파리의 루이비통미술관을 표방하는 ‘과학문화미래관(가칭)’과 수변공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프랑스 건축가 프란시스 솔러(Soler)는 성수동 중에서도 중랑천과 청계천이 만나는 합류지점을 주목한다. 성동교와 장안교 사이에 제방 위를 달리는 간선도로를 따라 들어서는 ‘구두장이의 섬’을 만들자는 것. 길이 800m의 섬 도시인 셈이다.
구두장이 섬에는 200m 높이의 가늘고 긴 수직 구조물이 들어선다. 이는 지역의 스카이라인을 새롭게 만드는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 섬 도시에는 서울역 앞 ‘서울로 7017’과 마찬가지로 보행자 도로가 설치된다. 섬 위에는 여러 개 부스를 조성해 구두산업을 유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