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10.25 06:09
[발품리포트|서남대 폐교 후 8개월…남원은 지금]
교정 폐허 된 지 오래…주변 원룸촌·상권 이미 몰락
지방대 중심 정원감축·폐교 현실화 이제부터 시작
투자자들 2~3년 전부터 발 빼…"상황 더 나빠질 것"
"관광 인프라 개발이나 산업단지 유치 등에 힘써야"
지난 16일 전라북도 남원시 광치동의 옛 서남대학교 교정. 학생도 교수도 모두 떠나버린 대학 캠퍼스 곳곳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강의실은 모두 잠겨 있었고, 건물 곳곳에 폐기물이 가득 차 있었다. 대학본부 옆에는 짓다 말아 철근이 그대로 드러난 건물이 서 있었다.
대학 교정만 폐허가 된 것이 아니다. 서남대의 주변의 대표적인 상권이었던 후문 원룸촌과 상권도 비슷했다. 슈퍼마켓, 문구점, 당구장 등도 대부분 문을 닫아 동네 전체가 유령 마을처럼 변해 있었다. 서남대학교는 작년 교육부로부터 ‘부실 대학’ 판정을 받아 올해 2월 문을 닫은 4개 대학 중 한 곳이다. 교직원 200여명, 재학생 800여명(대학알리미 2017년 공시 기준)이 떠난지 8개월 된 서남대 주변 부동산 시장과 상권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땅집고 취재팀이 서남대가 있던 남원을 찾았다.
■ 서남대 폐교 8개월, 남원 대학가 지역 경제도 함께 무너져
서남대 후문 광치동의 원룸 주택가 곳곳에는 ‘원룸 임대’라고 적힌 빛바랜 현수막이 건물 외벽에 붙어있었다. 간혹 동네 주민들이 골목길을 오가고 있었지만, 원룸촌 대부분은 비어 있었다. 동네에서 ‘A원룸’ 18개를 운영했었다는 건물 주인은 “예전에는 방 1개에서 1년치 월세 240만원을 한꺼번에 받아 돌렸는데 이미 옛날 얘기”라며 “서남대 폐교 이후에 다른 직장인 세입자라도 받아 보려고 월세도 내려봤지만, 더 이상 이곳을 찾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서남대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율치마을도 직격탄을 맞았다. 이 마을은 원래 평범한 농촌이었지만 1991년 서남대 개교 후 원룸 58개동(1000가구)을 품은 ‘청솔원룸단지’가 됐다. 주민들이 집을 개조하거나 원룸 건물을 앞다퉈 지었다. 바로 옆 덕원마을에도 원룸 건물 30개동(700가구)이 새로 생겼다. 하지만 20년 넘게 빈 방이 없었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던 서남대 원룸촌은 현재 월세를 10만원까지 낮춰도 방을 찾는 사람이 없어 빈 건물만 남아 있다.
주변 자영업자들도 급격하게 상권이 몰락하며 지역을 떠나고 있다. 남원시에 따르면 서남대 폐교 후 인근 가게 40여곳 중 35곳이 폐점했다. 상가 건물 7개동 중 3개동은 대출금을 갚지 못해 경매에 넘어갔다. 학교 후문 쪽에 있는 중국음식점 주인 김모씨는 “서남대 상권이 괜찮은 편이어서 건물을 사서 1층에는 식당, 2층에는 원룸 8개를 운영해왔는데 학교가 폐교하면서 나도 망했다”며 “이런 건물을 헐값에 내놔봤자 누가 사겠느냐”고 말했다.
n학생 수 감소 빠르게 진행, 지방 중심으로 폐교하는 대학 많아질 것
대학 폐교에 따른 지역 경제의 몰락은 이제 시작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1학년 도에는 전국적으로 대학 정원 대비 5만6000명이 미충원돼 통계적으로 약 38개 대학이 폐교될 운명이다. 20여년 전부터 우리나라 출산율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전국의 지방 대학이 비슷한 운명에 처했다.
우리나라 학령 인구는 점점 줄고 있다. 한국국토정보공사(LX)가 인구 구조의 변화에 따른 사회 변화를 예측해 발간한 ‘대한민국 2050 미래항해’라는 자료에 따르면 2000년 82만명 정도였던 학령인구가 2010년에는 약 69만명, 2015년 기준 대학 정원은 55만명으로 줄었다. 대입 희망자도 2021년 42만명, 2023년 39만명 급격하게 줄어든다.
학생이 없는 대학은 문을 닫아야 한다. 서울에서 먼 지방대부터 시작됐다. 정부도 2015년부터 사실상의 지방 대학의 단계적 폐교 수순에 들어갔다. 정부는 절대평가로 대학을 총 5개 등급(A~E등급)으로 나누고, A등급 대학을 제외한 나머지 4개 등급 대학교는 강제로 정원을 감축하고 있다. 첫 평가 때 전체 대학의 85.4%(281곳)에서 정원 2만4000명이 줄었고, 대학 4곳(대구외대·대구미래대·서남대·한중대)이 폐교됐다. 낮은 등급을 받은 대학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학생이 없는 대학이 살아날 방법은 없다.
n 정원 감축 지방대 주변… 원룸촌 텅텅 비어
지방을 중심으로 대학 폐교와 정원 감축이 현실화하면서 대학가 주변 부동산 시장과 상권 몰락도 진행 중이다. 한때 ‘대학가 부동산에 투자하면 기본은 간다’는게 기본적인 상식이었지만, 요즘 지방대 주변이 가장 위험한 투자처가 됐다. 경북 경주대의 경우 2011년 1400명이던 재학생이 700명 정도로 반토막 나자 인근 충효동과 선도동 등의 원룸 공실률이 40%를 넘어섰고, 상권도 급격하게 위축됐다. 충효동의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불과 10여년 전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외지 사람까지 몰려와 원룸 건물을 막 지어 올렸는데 놨는데 이게 모두 애물단지가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방 대학가 주변 부동산·상권의 몰락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재언 미래에셋대우 부동산VIP컨설팅팀 수석매니저는 “지방대 폐교 흐름을 눈치 챈 서울 투자자들은 이미 2~3년 전부터 지방 원룸을 팔고 떠났다”며 “앞으로 지방 대학가 원룸촌 사정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소장은 “대학 외 별다른 산업이 없는 지자체 부동산 시장은 대학 정원 감축에 따른 타격을 크게 받을 것”이라며 “이런 도시들은 관광 인프라를 개발하거나 산업 단지를 유치하지 못하면 부동산 뿐 아니라 지역 경제 전체가 위험해 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