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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듈러로 명품 주택도 1억대에 지을 수 있죠"

    입력 : 2018.09.21 04:00 | 수정 : 2018.09.21 07:07

    “부자가 아니어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설계한 멋진 집을 저렴한 가격에 소유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 사업을 하는 이유죠.”

    호세 로베르토 안토니오(Antonio·41).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필리핀 50대 부자로 꼽았고 세계 100대 아트 콜렉터이자 세계 부동산 시장 40대 라이징 스타(rising star)에도 뽑힌 인물이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그를 미국 무역 특임대사로 임명하기도 했다.

    호세 로베르토 안토니오 대표가 서울 신라호텔에서 땅집고와 인터뷰하고 있다. /심기환 기자

    원래 필리핀 재벌 가문 출신인 그는 뉴욕에서 건축학을 공부하고 부동산 개발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를 전 세계적 스타로 만든 건 2015년 12월 창업한 주택건설 스타트업인 ‘레볼루션 프리크래프티드’(Revolution Precrafted·이하 RP)다.

    우리에겐 아직 생소한 ‘모듈러 주택’을 짓는 회사다. 모듈러 주택이란 골조(骨組)와 문, 창호, 전기배선 등 집의 기본 형태를 미리 만들어 현장에서 바로 조립하는 방식이다. 창업 2년여년만에 6개 대륙, 24개국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기업가치 1조원(美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트 추산)이 넘는 유니콘 기업으로 급성장했다. 우버와 에어비엔비에 투자한 K2글로벌, 실리콘밸리의 대표 엑셀러레이터인 500스타트업으로부터 투자도 받았다.

    그는 “자하 하디드, 장 누벨, 렘 쿨하스, 다니엘 리베스킨트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집을 싸고 빠르게 지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사업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실제 그는 동대문 DDP로 유명한 고(故) 자하 하디드, ‘빛의 건축가’ 장 누벨 등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건축가 13명과 유명 브랜드 아티스트 80여명으로부터 디자인을 독점 공급받는다. 또 이들이 디자인한 집을 3.3㎡(1평)당 700만원 정도면 짓는다. 우리나라에선 서울 강남 아파트 건축비가 평당 1000만원이 넘는다. 그는 어떻게 집을 싸게 짓고 있는 걸까.

    땅집고는 국내 유일의 소규모CM전문 기업인 친친디CM그룹 초청으로 지난 5일 한국을 찾은 로비 안토니오 대표를 서울 신라호텔에서 단독으로 만났다.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원래 뉴욕과 필리핀에서 부동산 개발업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부동산업은 주로 지역 한정적이다. 땅이나 집은 옮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를 벗어나고 싶었다. 좀 더 글로벌하게 사업 영역을 확장할 수 없을까 고민하던 중에 어디서 생산해도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모듈러 주택을 지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 사업은 무엇보다 기술 집약적이면서 주문 제작하기 때문에 재고가 많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 들었다. 여기에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잘 활용해 집짓기에 필요한 재료를 싸게 조달한다면 기존 주택 건설에 드는 비용보다 저렴하게 세계적인 건축가나 디자이너의 브랜드 집을 지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안토니오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의 도면을 아파트보다도 싼 가격에 시공한다. 보통 디자이너 주택은 디자이너 도면에 따라 한없이 비싸지는데, 그는 명품을 싼 가격에 제공하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집은 비싸지 않나.
    “RP가 제공하는 모듈러 주택의 1㎡당 건축비는 평균 700~800달러(77만~88만원) 선이다. 22㎡ 정도 초소형 주택은 2만달러면 지을 수 있다.

    유명 건축가 디자인의 경우 1㎡당 건축비는 적게는 2000달러, 많게는 4000달러 이상이다. 장 누벨이 디자인한 ‘심플(Simple)’이란 작품은 1㎡당 2540달러 정도 건축비가 든다.

    RP가 어떻게 하면 주택 건설업계의 ‘이케아(Ikea)’가 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 훌륭한 디자인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의류브랜드 ‘자라(Zara)’나 혁신적인 전기차를 생산하는 ‘테슬라(Tesla)’ 같은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

    건축가 장 누벨이 디자인한 모델 '심플(simple)'. /레볼루션 프리크래프티드 제공

    모듈러 주택은 공장에서 바닥, 지붕 등 부분별로 70~80%까지 미리 제작한 뒤 현장으로 옮겨 조립ㆍ마무리한다. 건축 방법이 레고 블록 조립과 유사하다. 통상 최대 60일 정도면 집 한채(건축면적 66㎡ 기준)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선 시장이 작아 사업성이 낮아 영세업자가 시공하는 경우가 많고 기술 발전도 더디다.

    -세계적인 건축가의 집을 1억원이면 지을 수 있다니 놀랍다. 비결은 무엇인가.
    “함께 일하는 파트너들에게 명확한 가격 포인트와 한도(parameter)를 제시한다. 우리는 저명한 건축가, 예술가, 디자이너들과 함께 일한다. 기술이나 생산, 물류 측면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최소화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 기준을 맞출 수 있는 파트너만이 세계 최고 건축가들의 디자인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기술에 가치를 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술 개발을 통해 가격을 낮추는 게 중요하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가격 기준을 맞출 수 있는 파트너를 찾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주문 제작으로 재고를 줄이고, 배송비는 고객사가 지불하게 해 비용을 대폭 줄인다.

    결국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사업이 글로벌하게 진행돼야 하는 것이다.”

    로비 안토니오와 함께 일하고 있는 건축가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동대문 DDP로 잘 알려진 자하 하디드, 건축의 '전설' 필립 존슨 & 앨런 리치, 세계적인 가수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레니 크라비츠, 2006년 프리츠커 상을 최연소로 수상한 칠레 건축가 파울로 멘데즈 데 로차, 세계적 산업디자이너 론 아라드, '빛의 건축가' 장 누벨. /레볼루션 프리크래프티드 제공

    -어떻게 유명 건축가나 디자이너를 같은 편에 서게 할 수 있었나.
    “나는 15년 이상 건축 디자인과 부동산 개발업을 했다. 그러다보니 이 분야 유명 인사들을 잘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예술 애호가기도 하다. 박물관을 소유하고, 예술 작품을 모은다. 예술 작품 같은 집을 대중화시키려는 나의 열정을 이해해 주는 예술가들이 함께 하고 있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집을 만들기 위해 최고의 팀을 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모듈러 주택이 새로운 건 아니지 않나.
    “모듈러 주택은 이미 존재하는 기술이다. 우리는 원래 있던 기술을 매력적(sexy)으로 보이게 했다.

    대부분 모듈러 주택 사업은 특정 지역에 국한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여러 국가에서 가격이나 품질면에서 경쟁력 있는 부품들을 한데 모아 생산라인화했다. 물류비용을 줄이기 위해 전 세계를 가까운 지역끼리 묶어 물류 거점을 만들기도 했다.

    가격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기술을 개발하고 엔지니어를 기르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기술 개발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건축가 엘리자베스 드 포잠박(Portzamparc)이 설계한 '버터플라이(butterfly)'의 실제 건축물. /레볼루션 프리크래프티드 제공

    -지역마다 건축 규제가 다른 것이 문제가 되진 않는지.
    “맞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좋은 파트너를 고집하는 이유다. 우리가 B2B 비즈니스(기업 간 사업)를 하는 이유기도 하다.

    국가별로 인허가 과정은 다르다. 글로벌 기업이 처음부터 모든 국가의 인허가 과정을 숙지하긴 어렵다.

    규제뿐만 아니라 기후나 문화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같은 나라지만 동부와 서부 날씨가 다르다. 일본은 매년 여름 태풍이 찾아온다. 이런 식으로 지역마다 다른 변수가 있어 우리는 지역 회사들과 함께 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안토니오 대표는 세계 곳곳에서 부동산 사업을 하며 예술계 인맥을 갖췄다. 미국의 톱모델 케이트 업튼(Upton, 왼쪽)이나 할리우드 스타 패리스 힐튼(Hilton)과 만나 인터뷰하기도 했다. /레볼루션 프리크래프티드 홈페이지 캡처

    -한국에서도 사업을 싶다고 들었는데, 어떤 지역을 유심히 보고 있나.
    “그렇다. 서울은 역동적이고 예술적인 측면에서도 볼거리가 참 많다. 하지만 부동산적인 관점에서 보면 서울은 집 지을 수 있는 땅이 많지 않아 단독주택을 대단지로 짓는 사업은 도전적이지 않을까 싶다. 꽤나 창의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다.

    오히려 제주도가 기회가 많다고 본다. 제주도는 단독주택 신축 붐이 불고 있어 접근이 상대적으로 용이할 것 같다.”

    -앞으로 계획은.
    “올해 말 필리핀에 완성된 집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음달에 두바이에서 사업을 시작하고, 11월에는 미얀마, 12월에는 트리니다드 토바고 등지에서 사업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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