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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서울이죠, 매물 나왔어요? 지금 돈 보낼게요"

    입력 : 2018.09.10 03:08

    요즘 지방 부자들 上京투자… 집도 안보고 서울아파트 계약

    경북 안동 시내 인기 주거 지역인 옥동의 신진 공인 중개사무소에는 요즘 아파트를 보러 오는 손님이 없다. 마지막으로 아파트를 중개한 것은 지난 2월. 전용면적 84㎡ 아파트를 이전 거래 가격인 3억1000만원보다 3000만원 싼 2억8000만원에 중개한 게 끝이었다. 이 사무소 대표는 "가지고 있으면 손해인 아파트를 누가 사겠느냐"고 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S 공인 중개사무소는 9일에도 지방 손님 전화를 받았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매물이 실제로 있는지 확인하는 전화였다. 이 사무소 직원은 "지방 아파트를 처분한 현금을 쥐고 '강남권 매물의 동과 호수만 알려주면 안 보고 송금하겠다'는 전화가 매일 걸려온다"고 했다.

    재건축 들어간 반포아파트, 평당 1억 지방 아파트값이 장기간 떨어지자 지방 투자자가 서울로 올라온 것이 급격한 아파트값 상승 원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은 재건축을 앞두고 지난달 3.3㎡당 약 1억625만원에 팔린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 1단지(1·2·4주구).
    재건축 들어간 반포아파트, 지방 아파트값이 장기간 떨어지자 지방 투자자가 서울로 올라온 것이 급격한 아파트값 상승 원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은 재건축을 앞두고 지난달 3.3㎡당 약 1억625만원에 팔린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 1단지(1·2·4주구). /뉴시스

    지방 아파트값 하락세가 2년 이상 이어지자 지방 투자자들의 상경(上京) 투자가 늘어나고 있다. 투자 방식도 서울 투자자보다 더 공격적이라고 중개사들은 입을 모은다. 매물을 직접 확인하기 어려운 공간적 제약이 있다 보니, 유명 단지를 찍어놓고 매물이 나오면 '안 보고 송금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정부가 서울 아파트값 잡기에만 혈안이 돼 지방 시장 침체를 장기간 사실상 방치한 결과, '망가진 지방 시장의 복수'가 시작된 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침체된 채 장기 방치된 '지방의 복수'

    9일 한국감정원 전국 주택 가격 동향 조사를 보면, 2011~2016년 이뤄진 서울 아파트 거래 중 '서울에 살지 않는 사람'이 매수인인 경우는 평균 16.6%였다. 하지만 이 비율은 19.3%로 튀어올랐고, 올해는 7월까지 20%를 기록 중이다. 서울에서 아파트값이 가장 비싼 강남구도 마찬가지다. 2011~2016년 평균 20.9%였는데, 작년 22.7%, 올해는 23.6%이다.

    이런 상경 투자가 급증하는 배경에 지방 아파트 시장의 침체가 있다. 전국 시·군 지역 아파트값은 2010년대 초반 매년 2%대씩 올랐다. 그러다가 2016년 마이너스(-)로 돌아서 1.17% 내렸다. 작년엔 -1.67%로 하락 폭이 커졌고, 올해는 7월까지 이미 3.31% 내렸다. 그 사이 여유가 있는 지방 투자자들이 서울로 향한 것이다.

    지방 주택 시장 침체와 상경 투자 그래프

    강남구 잠원동 강철수 공인중개사는 "특히 대구·부산 등 경상도 사람이 많다"고 했다. 이 지역들 집값은 다른 곳보다 더 떨어졌다. 전(前)고점 대비 8월 아파트값이 전국 평균 2.8% 떨어졌는데, 경북은 11%, 경남은 15% 각각 떨어졌다.

    최근 서울 서초구 아파트를 계약한 김모(60대·경북 구미시)씨는 "가지고 있던 구미 빌라를 제값 받고 팔려고 2년을 기다렸는데, 도저히 희망이 안 보여서 눈 딱 감고 매입가보다 싼 값에 넘기고 그 좋다는 서울 아파트를 나도 한 채 샀다"고 했다. 경남 창원의 B 공인중개사는 "조금 부자(富者)는 평택이나 동탄 같은 수도권 신도시로, 큰 부자는 서울로 간다"고 전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정부가 서울 과열과 지방 침체를 분리해서 지방을 상대로는 경기 부양책을 써야 했는데, 규제 일변도로 대응한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는 것"이라며 "말하자면 '지방 시장의 복수'인 셈"이라고 말했다.

    ◇양도세 중과 후 부자(富者)가 가격 주도

    서울 아파트값 급등의 또 다른 원인도 정부 규제가 제공했다. 올해 4월부터 다(多)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대폭 올린 결과, 다주택자가 가진 아파트를 더는 팔지 않으면서 시장에 ‘매물 품귀(品貴)’를 불러온 것이다. 서울에만 아파트 6채를 가진 다주택자 이모(38)씨는 “5억원에 사서 지금은 10억원이 된 아파트를 지금 팔면 나로서는 양도세 때문에 사실상 7억원에 파는 꼴인데, 내가 왜 팔겠느냐”며 “지금 정권이 천년만년 가는 것도 아닐 테고, 정권 바뀔 때까지 10년이고 20년이고 무조건 버틸 것”이라고 했다. 서초동 롯데공인중개 측은 “사겠다는 사람은 많은데 4월 이후로는 매물이 씨가 말랐다”며 “우리도 답답하다”고 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매물 품귀 속에서 집주인들이 ‘아니면 말고’ 식으로 부른 금액을 주고 매물을 채 가는 것도 결국 현금 부자들”이라며 “정부가 부자를 상대로 가한 규제가 결과적으로 아파트값을 더욱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주택 시세를 모두 합한 ‘주택 시가총액’은 4022조4695억원으로 1년 전보다 7.6% 늘었다. GDP의 2.32배에 해당한다. GDP 대비 주택 시가총액 배율 집계를 시작한 1995년 이래 최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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