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9.08 04:04
[발품 리포트|서울 4대 집창촌, 지금은 ③ 천호동 텍사스촌]
윤락업소·재래시장으로 슬럼화…2003년부터 재정비사업 추진
한강·천호역과 가까워 교통·인프라 등 '명품 주거도시' 기대감
주변 아파트값도 덩달아 들썩…한달 만에 1억5000만원 뛰기도
지난달 27일 오후 7시. 해가 저물고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서울 강동구 천호동사거리를 지나 ‘2001 아울렛 천호점’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청소년 통행금지’라고 쓴 커다란 현수막이 걸린 입구를 지나자, 유리창으로 된 업소들이 골목 양 옆에 줄지어 있었다. 골목 사이에도 붉은 조명과 유리창으로 된 가게가 이어졌다. 이곳은 서울에서 거의 사라져가는 집창촌 중 강동구에 있는 ‘천호동 텍사스촌’이다.
업소 직원이나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해질녘 유리창을 닦으며 영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창 안에서는 딱 달라붙은 원피스 차림을 한 여성들이 화장과 머리 손질에 한창이었다. 단장을 마친 한 여성은 길거리에 남성들이 지나가자 손을 흔들며 호객(呼客)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천호동텍사스촌은 한 때 500~1000여 명의 여성들이 종사할 만큼 북적였다. 하지만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되고 이 일대에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업소가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현재는 약 50개 업소가 남아있으며 150여 명의 여성이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강과 천호역이 불과 300m가량 떨어진 천호동 노른자 땅에 위치한 이 일대는 지난 30여년 간 노후한 재래시장과 쇠퇴한 윤락업소 등으로 인해 슬럼화됐다. 하지만 이곳에도 부동산 개발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천호동 텍사스 일대는 이르면 2023년쯤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천호재정비촉진지구 사업은 천호동 362 일대 40만9000㎡ 땅에 들어선 노후 시장, 집창촌, 낡은 주택을 재정비하는 사업으로 2003년부터 추진됐다. 처음에는 천호뉴타운이란 이름으로 시작해 총 7개 구역으로 나뉘어 추진됐다. 현재는 1~3구역을 제외한 나머지 구역에서는 사업이 지지부진하다. 하지만 촉진지구 핵심인 1~3구역 개발이 속도를 내면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 “집창촌만 없어지면 천지개벽”…40층 주상복합 추진 중
강동구 주민과 이 지역 중개업소에선 천호동 텍사스를 중심으로 진행 중인 재개발·재건축이 완성되면 이 일대가 ‘천지 개벽’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천호동의 C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집창촌이 워낙 입지가 좋은 곳에 있어 재개발만 되면 주거지로 각광받게 될 것”이라며 “교통·인프라·자연 환경까지 집창촌만 없다면 주거지로 빠지는 게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하철 천호역은 5호선과 8호선이 지나는 더블 역세권으로, 천호역에서 잠실역까지는 5분, 강남역까지 24분이 소요된다. 광화문역까지는 30분 이내에 도착한다. 현재 8호선은 경기 남양주 별내신도시까지 연장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천호역 현대백화점, 이마트 등 쇼핑시설과 올림픽공원, 광나루 한강공원 등도 갖추고 있다.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 롯데타워, 아차산 조망뿐만 아니라 일부 주택에서 한강을 바라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규모나 입지 면에서 이 지역 재개발의 핵심은 천호시장, 족발골목 등 5개의 대형 재래시장들도 포함된 상업지역인 ‘천호1구역’이다. 세 구역 중 면적이 가장 크고, 40층(135m) 규모 고층 주상복합을 포함해, 999가구로 된 아파트와 상업·업무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2016년부터 SH공사와 공동으로 사업을 시행하며 현재 관리처분인가를 받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반면 속도가 가장 빠른 곳은 재건축으로 진행되는 2구역(천호동437-5일대)이다. 이곳은 총2개동 20층 규모로 194가구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작년 12월 관리처분인가를 받아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했으며 현재는 철거를 앞두고 이주 중이다.
3구역(천호동 423-76 일대)도 지난 7월25일 재건축 사업시행인가를 받았다. 이곳에는 25층, 535가구 아파트가 들어선다. 도시환경정비사업이 진행되는 4구역은 작년 12월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후 올해 5월 포스코를 시공자로 선정했다.
■ 주변 아파트값까지 들썩… 새 아파트 84㎡ 11억 넘어
강동구는 강남 접근성과 거주 여건에 비해 새 아파트가 부족한 곳이다. 천호동 역시 ‘래미안강동팰리스(2017년 7월 입주)’ 아파트와 ‘래미안강동헤르셔(2015년 8월 입주)’ 아파트를 제외하면 새 아파트를 찾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새 아파트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이런 가운데 천호동 텍사스 재개발이 본궤도에 오르자 천호동 일대 새 아파트 가격 상승에 불이 붙었다. 아파트 단지 인근 집창촌이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주거 환경 개선 기대감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천호동 일대 새 아파트는 올 들어 가격이 평균 1억~2억원 정도 뛰었다.
지하철 강동역 1번 출구에 위치한 ‘래미안강동팰리스(2017년 7월 입주·999가구)’는 지난 8월 84㎡가 11억8500만원(33층)에 거래됐다. 상반기 내내 10억원대에 팔렸는데 8월 들어 1억5000만원 상승했다. 분양가와 비교하면 5억원 넘게 올랐다. ‘래미안강동헤르셔(2015년 8월 입주·230가구)’ 107.34㎡는 올 2월 8억8700만(33층)에 팔린 이후 7월 1억4300만원 오른 10억3000만원(20층)에 팔렸다.
■ “1구역 지주들의 현금청산 요구가 변수”
천호동 일대 재개발 지역 중에 상업시설이 끼어 있는 1구역이 ‘알짜’로 손꼽힌다. 천호 전통시장 인근 A부동산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1구역 상가건물은 3.3㎡ (1평)당 약 3000만~35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면서 “매물에 따라 1억원대 후반에서 2억원대 중반까지 추가 분담금이 나올 가능성도 있어 투자 금액이 4억7000만원 정도 필요하다”고 했다. 조합이 예상하는 일반 분양가(59㎡가 6억 초반, 84㎡는 8억 초반)와 비교하면 2억~3억원 정도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재개발 사업 특성상 불확실성이 크고 개발 기간이 지연될 우려가 있다는 점은 주의해야 한다. 특히 상가 건물이 모인 1구역의 경우 대표적으로 이 지역 대지주들이 제기하는 현금 청산이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천호1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 관계자는 “현금청산 대상자들의 숫자는 약 10명, 요구 금액이 총 1000억원 정도인데 조합이 생각하는 금액과 격차가 커 쉽게 해결이 안되고 있다”고 말했다.
집창촌과 5개의 대형 시장으로 이뤄져 성매매 종사자들이나 영세 상인들에 대한 영업보상 문제도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재정비사업 추진과정에서 1구역과 같이 다양한 이해관계가 엇갈려있는 경우 진행 속도가 느려지거나 사업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서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