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6.23 05:00
지난 8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동. 지하철 신분당선 수지구청역 1번 출구로 나와 주택가로 걸어 들어갔다. 수지구청 뒷골목은 다가구·다세대 주택이 밀집해 있다. 구청 뒷골목 불법주차를 단속하는 CCTV 카메라 전광판에는 “어린이(노인)보호구역에서 불법 주차를 할 경우 과태료가 2배”라는 경고문이 있었다.
하지만 바로 아래 불법 주차 차량이 빽빽하게 서 있었다. 바닥에 ‘소방차 전용’이라는 구역 표시가 돼 있었지만, 이 구역에도 자동차가 주차돼 있었다. 동네를 지나던 주민은 “불법 주차 감시 CCTV 바로 아래는 카메라가 비추지 않으니 모두 여기에 주차를 한다”고 말했다.
1990년대 ‘아파트 난개발’로 오명을 썼던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가 20여년이 지난 현재 다세대·다가구 주택 난개발로 또 다시 몸살을 앓고 있다. 주택 경기 호황과 소형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2000년대 후반 이후 다가구주택과 도시형생활주택 등이 우후죽순 공급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주차공간이 부족해 주민이 불편한 것도 문제이지만 더 심각한 건 ‘화재’가 났을 때다. 지난해 12월 충북 제천시에서 벌어진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 때에도 불법 주차 차량들이 소방차 진입을 막아 29명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수지 119안전센터 관계자는 “소방차가 진입할 때 최소 폭은 2.5m이고 코너를 돌 때는 3m 이상 공간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풍덕천동 골목길 일대는 불법 주차로 길이 막혀 도로폭이 2m가 안되는 곳도 많다”고 말했다.
이렇듯 상황은 심각하지만, 구청은 마땅한 대책이 없다며 손을 놓고 있다. 수지구청 관계자는 “다가구·다세대 주택 밀집 지역에선 주차할 곳이 늘 부족해 불법 주차에 대해 적극적인 단속에 나서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대책이 없다며 이런 식으로 방치해 뒀다가 화재가 나서 인명 피해라도 나면 누가 책임질 것이냐”는 불만도 나온다. 용인 수지뿐 아니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일대, 경기도 부천시 빌라촌 등 빌라·다가구·도시형생활주택 밀집 지역은 어느 곳에서나 불법 차가 심각한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도시형생활주택’ 불법 건축이 주차난 주범
다가구·다세대 밀집 지역이 불법주차로 몸살을 앓게 된 이유는 제도적인 요인이 크다. 2000년대 후반 정부가 서민을 위한 주택을 대규모로 공급하겠다는 이유로 주차장이 부족한 집도 쉽게 지을 수 있도록 기준을 완화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법규에 따르면 다가구주택은 주차장 기준이 가구당 1대다. 하지만 곳곳에 예외 규정이 있다. 전용 60㎡ 이하의 경우 주차장 공간이 0.7대 이상, 30㎡ 미만은 0.5대 이상으로 규정돼 있다. 다가구주택인 경우 가구 수가 30가구 미만이면 건축법이 아닌 주택법에 따라 사업승인을 받아 집을 짓도록 돼 있다. 이런 경우에는 지자체 조례에 따라 주차장 기준이 더 완화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1~2인 가구’의 주거안정을 위해 도입한 ‘도시형생활주택’도 주차난을 일으킨 원인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공동주택은 가구당 한 대의 주차공간을 확보해야 하지만, 도시형 생활주택은 전용 60㎡당 한 대(전용 30㎡ 이하는 0.5대)의 주차장만 갖추면 된다. 제도 도입 이후 공급된 도시형생활주택 60만 가구 중 80% 정도가 전용 50㎡ 이하로 지었다. 결국 2~3가구에 주차장이 1대 꼴로 확보된다.
박원갑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은 “풍덕천동처럼 도시형 생활주택이 몰려 있으면 반드시 주차난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며 “주차난으로 인해 주거 환경이 열악해지는 것도 있지만, 화재 같은 안전사고에 취약하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대규모 불법 증축도 주차난을 부추겼다. 풍덕천동 에너지공단 인근 원룸촌은 총 63개동이나 된다. 이 주택들은 지하1층, 지상2층 규모로 2001년 준공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준공허가 전후로 건물주들이 옥상 등에 총 850가구를 불법 증축했다. 수지구청은 2005년 건물주들을 형사 고발하고, 2017년까지 이행강제금을 두 차례 부과했다.
구청은 불법건축물을 철거할 때까지 이행강제금을 1년에 2회씩 부과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수청구청은 지금까지 2차례만 강제금을 부과했다. 수지구청 앞 불법건축물들은 여전히 불법인 상태로 방치돼 있다. 수지구청 관계자는 “법적으로 이행강제금을 반드시 부과해야 하는 것은 아니어서 두 번만 부과했다”고 말했다.
■소방차 진입도 어려워…‘제천 화재’ 언제든 재발 우려
불법주차 차량으로 골목 상권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지구 풍덕천동 다가구주택 밀집 지역은 먹자골목이 발달한 곳이다. 하지만 온라인 상에서 풍덕천 맛집 골목은 주차가 힘들기로 유명하다. 수지구청 뒷편에서 15년 간 음식 장사를 한 상인은 “주차장이 없어 인근 세차장과 계약을 맺고 고객의 차를 직접 발렛 파킹하고 있다”며 “고객이 불법주차를 한 후 받은 딱지를 우리 가게에 청구하는 일도 부지기수”라고 했다.
풍덕천동 일대 주차난이 심각해지 수지구가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현재로선 역부족이다. 수지구는 저녁 시간에는 구청사(356면)과 여성회관(443면) 등을 무료 개방했지만, 불법 주차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터무니 없는 수준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다세대·다가구 밀집지역의 불법주차에 대한 해결책은 시간을 두고 마련하더라도 최소한 소방차가 다닐 수 있는 공간은 확보할 수 있도록 지자체가 확실한 기준을 가지고 단속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