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5.26 03:16
낙후된 옛 도심을 일자리가 넘치고, 청년 창업 거점으로 되살리려는 도시재생 사업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이다. 그러나 아직 도시재생이 무엇이고, 어떤 식으로 전개될 지 명확히 알기 어렵다. 땅집고는 우리보다 앞서 도심 쇠퇴를 경험한 선진국의 도시재생 현장을 살펴봤다.
[도시재생 탐구] ① 유럽 최대 역세권 개발: 영국 런던 킹스크로스
영국 런던 중심부에서 3km 정도 떨어진 ‘킹스 크로스’(King’s Cross)역. 지하철 6개 노선과 런던 교외로 나가는 기차가 정차하는 교통 중심지다.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해 우리에게도 낯익은 곳이다. 지하로 이어지는 세인트 판크라스역에서는 유럽 대륙으로 향하는 고속철도가 출발한다. 서울 용산역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도시재생 탐구] ① 유럽 최대 역세권 개발: 영국 런던 킹스크로스
영국 런던 중심부에서 3km 정도 떨어진 ‘킹스 크로스’(King’s Cross)역. 지하철 6개 노선과 런던 교외로 나가는 기차가 정차하는 교통 중심지다.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해 우리에게도 낯익은 곳이다. 지하로 이어지는 세인트 판크라스역에서는 유럽 대륙으로 향하는 고속철도가 출발한다. 서울 용산역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킹스 크로스역 주변은 1850년대 산업혁명 당시 유럽의 교통·산업 중심지로 번창했다. 하지만 런던 주변부에 개발이 집중되면서 점점 중심지 역할을 상실했다. 제조·물류업 쇠퇴로 킹스 크로스역과 세인트 판크라스역 사이 상하차 부지(약 25만㎡)는 버려진 땅이 됐다. 100여년이 지나면서 건물이 낡아가면서 빈민촌으로 변했다.
■버려진 빈민촌이 핫 플레이스로
킹스 크로스 재생 사업이 본격 추진된 건 1996년. 세인트 판크라스역에 런던&콘티넨털 철도(LCR) 종착역이 들어서기로 확정되면서부터다. 사업 주체는 땅을 소유한 LCR과 민간 개발회사 아젠트(Argent)다. 지역 주민, 이익집단 등과 2000~2006년 6년에 걸쳐 마스터플랜을 수립한 끝에 지역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았다.
킹스크로스는 2008년부터 순차적으로 개발을 시작했다. 그런데 기존 건물을 전부 철거하는 대신 역사적 건물은 보존하면서 새로 짓는 건축물들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을 선택했다. 물품 상하차장으로 쓰이던 빅토리아 시대의 그래너리 빌딩은 개·보수 이후 영국 최고 예술대학인 런던예술대학교(UAL) 센트럴 세인트 마틴 캠퍼스가 이전해왔다. 지상 11층짜리 오피스 건물 ‘랜드스크래퍼’에는 글로벌 기업 구글의 영국 본사가 입주했다.
세인트 마틴 캠퍼스와 구글 본사는 킹스크로스의 상징이나 마찬가지다. 루이비통과 유니버설뮤직도 둥지를 틀었다. 킹스크로스는 개발이 끝나면 오피스 50개 동(棟), 주택 2500여 가구, 광장 10곳, 커뮤니티·레저시설 등이 들어서게 된다.
킹스크로스에 짓는 원래의 빈민촌 이미지는 온간간데 없어졌다. 공원 옆인데다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호화 아파트가 대부분이다. 임대료만 해도 투룸(방2개) 기준으로 한 달에 900파운드(130만원)에 달한다. 다만 전체 주택의 40% 정도는 시세보다 20%쯤 저렴한 가격에 공급될 예정이다.
■“지방정부의 유연한 대응이 성공 요인”
킹스크로스는 영국 최대 도시재생 사업일 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유럽을 대표하는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킹스크로스 개발에 대해 “옛것과 새것이 완벽히 조화를 이뤄고 있다”면서 “산업시대라는 과거와 창의적인 현재의 모습을 동시에 상징한다”고 했다.
킹스크로스 사업에서는 공공과 민간의 역할 분담이 잘 맞아떨어졌다. 민간시행자인 아젠트는 지방 정부와 협상, 마스터플랜 수립, 기업 유치 등 실질적 사업을 담당했다. 지방 정부도 유연했다. 꼭 필요한 공용공간 등 중요한 목표 수치는 바꾸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단계적 개발에 필요한 건물이나 주택의 공급 시기 조절, 건물 위치 변경 등은 별도 인허가 절차 없이 자유롭게 허용했다. 조승연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방 정부의 유연한 대응이 사업 기간에 발생할 수 있는 경기 변화로 인한 민간 기업의 부담을 크게 줄여줬다”고 했다.
개발 이익이 땅 주인에게만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연면적 8만㎡ 규모 커뮤니티 시설에서는 시민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와 프로그램이 열린다. 킹스크로스에서는 거의 매일 10여개씩 전시·공연·문화 행사가 개최된다. 그래너리광장의 거대 분수를 비롯한 공원과 볼거리도 다양하다.
■원주민 반대·소송은 불가피…“왕도는 없다”
킹스크로스 프로젝트에도 긍정적인 측면만 있었던 건 아니다. 우리나라 재개발 사업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제점도 생겼다. 주변 집값 상승 등으로 원주민들이 모두 떠난 것이 대표적. 일부 원주민들이 개발에 반발해 시행자 상대로 소송을 낸 것도 비슷하다.
손정원 런던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최근 국토교통부 주최로 열린 ‘도시재생 국제 컨퍼런스’에서 “킹스크로스는 런던에서 유일하게 임대료가 싼 주택이 남아있던 곳이었는데 개발로 인해 임대료가 50% 이상 폭등했다”면서 “2008~2010년 월세 280만원 수준이었는데 2년 뒤에는 350만원으로 치솟았다”고 했다.
손 교수는 “킹스크로스의 경우 민관이 함께 오랜 시간 노력한 결과 가시적인 성과를 냈지만 그 자체로 따라하기만 하면 되는 왕도인 것은 아니다”라며 “결국 우리 실정에 맞는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을 꾸준히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