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5.20 07:30
“이곳에서 집이란 그저 잠자고, 물건을 보관하고, 샤워하는 곳일 뿐이죠.”
영국의 금융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는 미키 데이(29)는 지난해 10월부터 런던의 공유주택 ‘올드 오크(Old Oak)’에서 살고 있다. 공유 주택이란 집 한 채에 여러 명이 살면서 거실과 주방, 커뮤니티시설 등을 함께 사용하는 주거 방식이다.
‘올드 오크’는 수령(樹齡)이 오래된 참나무처럼 넉넉하다는 의미가 있다. 영국의 ‘더 컬렉티브’라는 회사가 2016년 5월 런던 서부 월섬애비에 문을 열어 세계적 화제가 됐다.
■개인 공간은 10㎡...다양한 공유 공간 갖춰
올드오크는 요즘 젊은이들의 니즈와 주택시장 상황을 제대로 파고 든 주택 형태다. 실제 한국 젊은이들이 서울로 몰려드는 것처럼 영국 젊은이들도 런던으로 몰리지만 런던은 집값과 월세가 비싸기로 악명(惡名)이 높다. 런던 도심에선 화장실 1칸과 간단한 주방, 침실을 갖춘 ‘스튜디오형 주택’ 월세가 200만~300만원인 경우도 많다. 돈없는 젊은층이 혼자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음성원 에어비앤비 미디어정책총괄은 “젊은이들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이들과 교류하려는 욕구도 강하다”고 했다.
‘올드 오크’에는 무려 546명이 한 곳에 모여 산다. 입주자들은 약 10㎡(3평)의 작은 방을 사적 공간으로 갖는다. 개인 화장실과 2인이 함께 사용하는 작은 주방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공유 공간이다. 식당 뿐만 아니라 도서관, 영화관, 게임룸, 체육관, 커뮤니티 라운지, 루프탑 정원 등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영국 ‘선데이 타임스’는 최근 올드 오크에서 실제로 며칠을 살아본 체험기를 실었다. 샬럿 보우덴 기자는 “이곳은 사람들이 단순히 ‘세입자’가 아니라 ‘공동체주의자’ 또는 ‘멤버’가 되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비슷한 입주자끼리 엮어준다”
‘올드 오크’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생각하는 공유 주택과는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국내 공유주택은 3~5가구가 한 건물에 모여 사는 형태다.
‘올드 오크’는 546명이 모여 살기 때문에 모든 멤버가 입주하자마자 자신과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을 찾을 수 있다. 현재 이곳에는 대학생, 회사원, 회계사, 디자이너, 발레리나 등 20대 중반~30대 중반 젊은이들이 모여 있다. 커뮤니티 매니저는 입주 심사 때부터 입주자 면접을 보면서 개인 성향을 파악한 후 관심사가 비슷한 ‘멤버’와 친해질 수 있도록 소개해주고 모임도 만들어 준다.
“약간은 오싹한 경험이었다. 내가 그 10층짜리 유리건물에 들어가자 그날 저녁 ‘펠로우(Fellow)’라고 불리는 6명의 직원들이 나를 귀찮게 따라다니면서 다른 멤버들과 유대 관계를 갖도록 도와줬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 6시가 넘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차를 마시도록 한다거나,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럴 때 로비를 허둥지둥 달려 엘리베이터로, 사생활이 보장된 내 방으로 도망친 적도 있다.”
선데이 타임스 기사는 조금 유머러스하게 표현했지만, ‘올드 오크’의 생활 방식은 ‘임대 세대’(Generation Rent·높은 집값 때문에 나이가 들어도 임대 주택에 사는 세대), 혹은 ‘Y 세대(Generation Y·베이비부머 자녀 세대)’로 불리는 이들이 원하는 것을 맞춤형으로 제공한다. 공유 경제를 이용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도시 한복판 깨끗한 집에서 살 수 있다. 자기 개발이나 다른 사람과 교류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해 내는 것은 덤이다.
레자 머천트(Merchant·29) 더컬렉티브 대표는 “젊은이들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도시에 살수 있는 방법으로 올드 오크를 고안했다”며 “주거 공유를 주택 시장에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임대료는 비싸도 공유 주택은 이미 대세”
통상 젊은이들이 공유 주택을 선택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주거비 절약이다. 공유 공간이 아무리 화려해도 주거비가 많이 든다면, 구태여 공유형 주택을 선택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올드오크의 월세는 얼마나 될까.
결코 저렴하지는 않다. 한달 임대료가 1000파운드(146만원)에 달한다. 런던의 높은 주거비를 고려해도 결코 싼 것은 아니라는 평가다. ‘올드 오크’ 측은 방세 뿐 아니라 각종 전기·수도 요금, 와이파이, 보안과 방 청소·침대보 세탁 등 호텔식 서비스가 포함된 가격이라고 설명한다. 뿐만 아니라 스파, 체육관, 게임방, 도서관 사용료 역시 포함돼 있다.
머천트 대표는 “사람들은 모든 걸 해결해 주는 ‘포털’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니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준 높은 사회 생활이 가능한 편의시설과 교류 공간이 필요하다. 젊은이들은 부동산 가격이 너무 올라 부동산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는다. 물질보다 경험에 투자하기를 더 원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공유 주택 트렌드는 미국 뉴욕에서 시작됐다. 스타트업 기업인 ‘퓨어하우스’나 ‘코먼’ 같은 회사가 밀레니얼세대 대상으로 호텔 서비스가 가미된 공유 주택을 내놓아 인기를 끌었다. 공유 사무실로 성공한 ‘위워크’는 2016년 4월 공유 주택인 ‘위리브’를 내놓기도 했다. 더컬렉티브 역시 거대한 빌딩형 공유 주택을 런던에 추가로 짓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초대형 공유형 주택이 가능할까. 한국인들은 인간 관계를 맺는 방식이 유럽·미국보다 폐쇄적이고, 주거 스타일 측면에서 독립성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한계가 있는 것 사실이다. 하지만 주거비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라이프 스타일이 개방적인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점은 긍정적인 요인이다.
음성원 에어비앤비 미디어정책총괄은 저서 ‘도시의 재구성’에서 “올드 오크같은 공유 주택은 주로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하지만 베이비붐 세대를 포함한 장년층에도 통할 가능성이 높다”며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커뮤니티, 그 안에서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과의 교류, 안전, 낮은 주거비 등 밀레니얼과 은퇴자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점점 비슷해지고 있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 바로 공유 주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