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5.20 06:31
“6개월 전만 해도 방문객 중 60% 정도는 미군들이었는데, 이제는 10~20%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미군들이 이미 다 떠난겁니다.” (용산구 이태원동 편의점 직원)
지난 10일 용산구 이태원동.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나와 남산 방향으로 나 있는 골목을 따라 올라가자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고급 빌라촌이 나타났다. 이 빌라들은 주한 미군과 미군 내 근무자들, 외국계 기업 주재원들 등이 월세를 내고 사용하던 집들이다. 저렴한 자재를 사용해 지은 일반 빌라와 달리 건물 자체도 크고, 외장재로 대리석 등 고급 석자재를 사용해 지은 집들이 많았다. 경비실을 따로 둔 빌라도 있었다.
겉은 멀쩡해 보이는 이 빌라들은 빈집이 많았다. 빌라 건물 외벽에는 ‘Rent’(임대)라고 크게 써 붙여놓은 곳이 다섯 집 걸러 한 집 정도는 보였다. 이 지역 부동산 중개업소 전면 유리벽에도 빌라 월세 세입자를 찾는다는 전단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A중개업소 사장은 “올 연말에 용산 미군 기지가 평택으로 이전 완료하는 것으로 돼 있는데, 기지에 근무하던 미군과 군무원은 작년 말부터 이미 대부분 평택으로 내려갔다”며 “미군들이 떠나면서 월세용 렌트하우스가 텅텅 비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n미군 떠난 렌털하우스 깔세 시장...텅 빈 집
수두룩
수두룩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 미군을 대상으로 한 임대주택 시장이 유례없는 공실률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군 고급 장교들이 살던 고급 빌라의 경우 월세가 적게는 300~400만원, 비싼 집은 1000만원이 넘는 경우도 있다. 미군들이 떠나면서 이렇게 비싼 월세를 감당하지 못한 빌라들이 세입자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미군 기지와 가까운 곳에 있는 주택은 보통 ‘깔세’ 형태로 임대 중이다. 깔세란 보증금 없이 일정 기간의 월세를 한꺼번에 받는 방식이다. 이태원에서는 주로 용산에 주둔하던 미군들이나 한국에 파견 나온 외국인 간부들이 1~2년 치 월세를 내고 고급 빌라에 거주했다. 미군의 경우 미군 주택과에서, 집주인에게 월세를 직접 지급하는 경우가 많아 렌탈하우스 사업자들은 그동안 안정적 수익을 올려왔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녹사평대로에 있는 한 빌라의 관리인은 “환경이 쾌적하고 구조가 좋아 공실이 나도 바로 채워졌는데, 현재는 총 12실 중 3개 방에만 세입자가 들어와 있다”고 말했다. 이 집에 남아 있는 3가구는 평택에 내려가지 않고 용산 기지에 잔류하는 미군이다. 공실이 많다 보니 임대료도 낮아지고 있다. 이태원동의 한 55평짜리 고급 빌라 월세는 전망이 좋지 않은 A동은 850만원 정도였는데, 현재는 500만원까지 떨어졌다.
용산 일대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월세 시장도 직격탄을 맞았다.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과 이촌역 중간 지점에 있는 ‘용산시티파크’ 1단지의 경우 전용 116㎡ 월세는 보통 350만~370만원 정도였는데, 현재 330만~340만원까지 내려갔다. 저층 매물은 300만원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집 크기가 더 큰 146㎡(44평)짜리 주택은 보통 미군보다는 외국계 대기업 고위 간부들이 더 많이 찾았기 때문에 큰 가격 변화가 없다고 한다.
용산동5가의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외국인에게 깔세를 받던 집주인들이 전세나 반전세로 돌린 경우도 많다”며 “용산 주상복합은 지은지 10년이 넘는 경우가 많아 외국인들이 신축이면서도 월세가 더 저렴한 마포 쪽을 찾는 추세다”고 말했다.
■“외국인은 이태원 가장 선호한다지만... 월세 하향 조정 불가피”
이태원 일대 고급 주택 임대 시장 현재 고전하고 있지만, 일각에선 앞으로 새로운 임차인이 등장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태원은 한국에 근무하는 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거지이기 때문이다.
서울시글로벌중개사회에 따르면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서울 시내 주거 지역은 한남동 22.7%, 이태원동 19.8%, 연희동 18.8% 등으로 조사돼 용산구 선호도가 무려 42.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태원동에서 주재원을 대상으로 중개업소 관계자는 “지금은 미군이 떠난지 얼마되지 않아 임대료가 내려가고 있지만, 강북권 각 지역에 흩어져 살던 외국 기업 주재원들이 이태원을 선호해 시간이 지나면 채워 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군이나 기업의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임대주택 시장은 워낙 월세가 비싸고, 시장 자체가 특수한 시장이어서 임대료 하락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태원 렌탈하우스는 시간이 지나면 다른 외국인들이 들어와 공실이 줄어들 수는 있어도, 수요가 한정돼 있어 임대료는 하향 조정될 것”이라며 “반면, 이태원 상권은 이미 미군보다는 한국인과 관광객 위주로 재편된지 오래 됐기 때문에 미군 이전에 따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