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5.17 06:31
“전세금 추락은 매매 가격 하락 전조인가.”
전국 아파트 전세금이 일제히 주저앉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집값 상승을 이끌었던 서울에서도 올 들어 전세 시장 하락세가 뚜렷하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5월 둘째주 서울지역 아파트 전세금은 평균 0.09% 떨어져 지난 2월 둘째 주 이후 12주 연속 내렸다.
전세금은 매매 시장 선행 지표로 인식돼 왔다. 따라서 시간이 갈수록 아파트 매매가격도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세금 하락은 아파트 입주 물량 증가 등으로 공급이 수요보다 지나치게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반론도 나온다. 현재 전세 시장 약세는 그동안 매매가에 비해 지나치게 높았던 가격이 제자리를 찾는 조정일 뿐이라는 것. 물량이 과도하게 공급된 수도권 외곽 중심으로 매매가격 조정은 있겠지만 서울 등 중심지 매매가는 전세금과 상관없이 계속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다.
■통계로 보는 전세-매매 관계
과거 자료를 보면 전세금은 실제로 매매 가격의 선행지표로 작용해 왔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2001년 서울 전세금 상승률이 둔화하기 시작해 2004년까지 이어졌다. 매매가격 상승률은 이보다 1년 후인 2002년부터 꺾였다.
2008년 이후에는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전세금이 먼저 오른 이후 매매가격이 따라 오르는 모습을 보였다. 서울 매매가격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꾸준히 하락하는 동안 전세금은 계속 올랐는데, 2013년부터 높은 전세금이 매매가격을 밀어 올려 매매가도 급등하기 시작했다.
2016년부터는 매매가격 상승률이 전세 상승률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2015년부터 꺾인 전세금 상승률은 올 들어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서울과 수도권의 신규 입주물량이 증가하는 만큼 한동안 전세 시장 약세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전세 하락→매매 하락, 이번에도 성립하나
관건은 전세금 약세가 앞으로 매매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이다. 일반적으로 전세금 하락이 시차를 두고 매매가 하락으로 이어진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이는 전세금이 떨어지면 이론적으로 매매 수요가 줄어드는 탓이다. 집주인이 전세 계약 만기에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면서 집을 매물로 내놓을 수 있다. 전세금 하락으로 무주택자의 주거 비용이 줄어 굳이 집을 사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과거 통계 역시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른바 ‘갭(gap) 투자’를 하기 위해 필요한 투자액이 증가하는 것에 주목하는 해석도 있다. 최근 몇 년간 서울에서 아파트를 살 때 매매가격과 전세금 차액(갭)이 보통 1억~2억이었다. 전세 끼고 집 사기가 쉬웠던 것이다. 이는 아파트 시장에 투자 수요가 유입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전세금 하락으로 갭이 3억원 이상으로 늘어나면 투자자의 부담이 커진다.
최근 아파트 시장에서 전세금 하락과 동시에 매매가격도 약보합으로 돌아서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5월 첫 주 매매가격은 0.03% 오르는데 그쳐 7주 연속 0.1% 이내로 안정화되는 모습이다. 특히 전세 하락이 두드러지는 강남구는 매매가격도 0.05% 하락(5월 첫 주)했다.
■“매매-전세 갭 커지는 것도 가능하다
전세금 하락이 매매가 하락 요인 중 하나가 될 수는 있다. 다만 그것만으로 반드시 매매가격이 떨어진다고 보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전세가 현재의 수요-공급에 의해 결정된다면 매매는 현재부터 미래까지의 수급을 반영하므로 미래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보면 가격이 오를 수 있다”며 “특히 서울의 전세금 하락은 경기도권 입주 물량 증가에 따른 일시적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전세금 하락을 ‘갭 투자’ 측면에서 바라보는 다른 시각은 매매가와 전세금의 갭이 커지는 현상을 ‘새로운 균형점’으로 보기도 한다. 실제 그동안 저금리와 화폐 가치 하락을 고려했을 때 1억원 정도 투자해 서울 아파트를 살 수 있었던 것은 리스크보다 기대수익이 너무 큰 불균형 상태였다는 것. 이로 인해 너도나도 갭 투자에 뛰어들며 매매가격은 상승, 전세금은 하락하는 현재 상황은 ‘갭 투자’의 투자 금액 대비 적절한 수익률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해석이다.
실제로 서울의 매매가격 대비 전세금 비율은 2016년 73%선까지 올랐지만 불과 8년 전인 2008년만 해도 그 비율이 38%에 불과했다.
특히 서울의 경우, 주택 구입 능력을 가진 고액 전세 세입자나 지방 원정 투자자 등이 매입에 나서면 가격 상승 여력이 여전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최근 지방의 돈 많은 투자자들이 서울로 몰려들면서 서울의 주택 수요는 과거보다 더 늘어나고 있다”며 “인구와 돈이 집중되는 서울은 전세금이 내려도 매매 가격은 더 오를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