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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첨만 되면 2~3억" 로또 청약 불지른 HUG

    입력 : 2018.05.02 06:31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지난 23일 대구 수성구와 경기 성남시 분당구를 ‘고분양가 관리지역’으로 추가 지정하면서 정부의 아파트 분양가 통제 논란이 다시 뜨겁다. 고분양가 관리지역에서는 일정 기준을 넘는 분양가를 책정한 아파트는 HUG에서 분양보증을 받지 못해 분양을 할 수 없다.

    민간 사업자가 아파트 분양 승인을 받기 위해 분양가를 낮게 책정하면 시장 왜곡 현상이 발생한다. 분양가격이 낮게 책정된 아파트는 일단 당첨만 되면 분양권 시세가 수억원씩 올라 이를 노리고 청약자들이 몰려든다. 주택 청약시장이 ‘돈 놓고 돈 먹기’식 도박판으로 바뀌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연초 서울 한남동 외인주택을 헐고 다시 짓는 ‘나인원 한남’, 서울 강남구 ‘디에이치자이 개포’, 경기 과천시 ‘과천 위버필드’ 등의 아파트 분양 가격을 HUG를 통해 간접적으로 통제했다. 이 중 디에이치자이 개포와 과천 위버필드 등은 분양이 낮게 책정되면서 ‘로또 청약’ 사태가 벌어졌다.

    주택건설 업계에선 자본주의 국가에서 정부가 공기업을 활용해 사실상 민간 아파트 분양가를 쥐락펴락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부, HUG 통해 민간 아파트 분양가 통제

    국토부는 어떻게 분양가격을 통제할 수 있을까. 국토부는 공기업인 HUG의 분양 보증 제도를 통해 아파트 분양가격을 간접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건설사나 재개발·재건축 조합 등 민간 사업자가 아파트를 분양할 때는 반드시 HUG에서 발급하는 분양보증서를 받아야 한다. 분양보증이란 건설사가 파산이나 부도 등으로 분양 계약을 이행할 수 없게 됐을 때 보증회사(HUG)가 해당 주택을 대신 분양하거나 분양대금을 환급해주는 제도다.

    HUG 규정에 따르면 서울·부산·수도권 등 고분양가 관리 지역에서 1년간 아파트 분양가 평균을 넘거나, 신규 단지의 분양가가 인근 지역 평균 분양가나 평균 매매가격의 10%를 초과하면 분양보증 승인을 내주지 않는다. 건설사와 조합들은 HUG를 청약 시장에서 갑(甲) 중의 갑이라고 지적한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분양보증 없인 분양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분양가를 정할 땐 분양보증 발급권 결정권을 쥔 HUG의 지침을 따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6년간 HUG의 총 보증규모는 3배, 분양보증 규모는 2배 가까이 늘었다. /이상빈 기자

    문제는 ‘분양 보증’을 해주는 곳이 HUG 한곳 뿐이라는 점이다. HUG는 국토부의 관리감독을 받기 때문에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결과적으로 국토부가 특정 지역 주택 시장이 과열됐다고 판단하면 HUG는 이 지역을 고분양가 관리지역으로 지정해 가격 통제에 들어가는 방식이다.

    HUG는 분양보증 시장을 독점하면서 고율의 보증료를 부과해 수천억원대 수익도 올리고 있다. HUG의 보증액은 2012년 46조원에서 2016년 156조원으로 3배 이상 늘었다. 보증료 수익도 2012년 1754억원에서 2016년 4161억원으로 늘었다. 아파트를 분양 받은 청약자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분양가 통제의 부작용, 청약시장 ‘도박판’으로 변질

    하지만 정부의 가격 통제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HUG가 분양가를 통제할 수는 있지만, 청약이 끝난 아파트의 분양권 시세까지 통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당첨과 동시에 분양권 시세가 급등하는 것이다. 서울 강남권 아파트 청약 시장에선 “정부가 가격을 통제한 아파트 단지는 당첨만 되면 분양권 시세가 2억~3억원 오르는 것은 일도 아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고 경쟁률 106대 1을 기록한 과천 위버필드의 한 청약자는 “당첨만 되면 수억원 벌 수 있다고 해서 청약통장을 넣었는데 떨어졌다”며 “같이 청약한 친구는 당첨됐는데 솔직히 배가 좀 아프다”고 말했다.

    지난 3월 '로또 아파트'로 불린 서울 서초구 양재동 '디에이치자이 개포' 모델하우스 앞엔 입장 대기줄이 1㎞ 가량 장사진을 이뤘다. /고운호 기자

    하지만 국토부와 HUG는 “분양 가격을 통제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국토부와 HUG는 분양보증은 가격 통제가 아니라 선(先) 분양 시스템에서 미분양·미입주로 돈줄이 막혀 발생할 수 있는 분양 사고를 막기 위한 보증 제도라고 주장한다. HUG 관계자는 “지나치게 높은 분양가로 분양되면 나중에 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 보증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분양보증 상품 자체가 건설사 부도, 주택시장 침체 등으로 ‘사고’가 발생할 것을 예방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인데, 사고가 날 우려가 있어서 보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공정위 “분양보증 시장도 경쟁구도 돼야”

    주택건설 업계에선 분양보증 시장을 HUG가 100% 독점하는 시장 구조를 바꿔 준공공 기관이나 민간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난해 7월 공정거래위원회도 HUG의 독점 구조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2020년까지 보증 시장을 개방하라고 했다.

    하지만 국토부는 미온적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정위의 2020년 분양 보증시장 개방 결정은 주택시장을 고려해서 진행될 것”이라며 “아직까지 구체적인 계획이 추진되진 않고 있다”고 말했다.

    분양가 통제로 '로또' 청약 심리에 불만 질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선DB

    주택시장 전문가들은 정치권에서 압박하지 않는 이상 국토부가 아파트 가격 통제권을 놓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과 토지의 공공성을 폭넓게 인정하더라도 정부가 분양 가격을 통제하는 것은 시장 경제에 맞지 않다”며 “국토부가 분양가를 통제해도 당첨 이후 분양권 가격이 급등하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결국 효과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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