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4.23 06:31
서울 강남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한 정부의 연이은 대책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교통·학군·문화 등을 비롯한 각종 인프라가 강남에 집중된 상황에서 규제만으로는 집값을 잡을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근본적으로 강남 주택 수요를 분산할만한 대체지가 없다면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강남 집값 급등과 이에 따른 부작용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강남 대체지’ 개발 필요성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제기됐다. 1980년대 말 분당·일산 등 수도권 1기 신도시 건설도 서울 강남 수요 분산 목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2000년대 후반까지 강남 집값이 급등하자 판교신도시부터 위례·광교·하남 등 강남 인근에 신도시나 택지지구가 개발됐지만 근본적인 수요 분산에는 역부족이었다. 최근에는 서울 강북 지역을 개발해 인프라나 주거 환경을 강남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땅집고는 강남 집값 안정화를 위한 대체지 개발이 필요한지, 어떤 식으로 가능할 지에 대해 전문가 의견을 들어봤다.
■강남권 그린벨트 해제냐, 강북 대체 개발이냐
강남 대체지 개발로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방안은 강남 인근에 택지지구를 개발하는 것이다. 강남권으로 쉽게 출퇴근 가능한 택지지구를 만들어 주택을 대규모로 공급하면 수요 분산으로 집값을 안정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다만 이 경우 서울이나 인근 경기도 지역에 택지지구로 쓸 땅이 많지 않아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해제가 사실상 유일한 방법으로 평가된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과거 강남구 수서동이나 서초구 내곡지구 등에 소규모 택지를 개발했을 때는 시세 차익을 예상한 ‘로또 분양’ 얘기만 나왔을 뿐 집값 안정 효과는 없었다”며 “대규모 그린벨트 해제를 하지 않으면 집값 안정 효과를 보기 어려운데, 자연 환경 파괴 우려 등으로 쉽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판교신도시에 오피스를 많이 공급하니까 한때 강남구 테헤란로 오피스 가격이 떨어졌듯이 강남 인근에 대규모 주택을 지으면 효과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린벨트를 풀려고 마음만 먹으면 해제할 땅은 많다”면서 “환경단체 반대와 단기적 가격 급등이 우려돼 정치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서울 강북 등 비인기 지역 인프라를 대폭 확충해 강남 수준으로 주거 환경을 끌어올리는 방안도 나온다. 서울 마포·성동·용산구 등이 최근 재개발을 통해 과거에 생각하지 못했을만큼 주거지 가치와 주택 가격이 상승한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강북에서도 강남을 대체할만한 주거지를 지속적으로 개발하려면 현실적 어려움이 크다는 지적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십수년 전부터 강북 뉴타운 개발이 시도되고 있지만 일부를 제외하고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서 “기존 도로·주택 등이 남아있는 지역의 인프라를 개발하는 일은 새로 만드는 것보다 10배 이상 비용과 시간이 든다”고 했다.
■인구 저성장 시대, 대규모 신도시 건설은 불가능
수도권에서는 주택 과잉 공급 우려로 강남을 대체할 대규모 주거지를 만드는 것이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채미옥 한국감정원 부동산연구원장은 “이미 조성된 수도권 택지지구나 신도시로 강남 인구가 상당수 빠져나가고 있다”며 “화성 동탄신도시를 비롯한 수도권 외곽의 교통 여건이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등으로 개선되고, 이 곳에 좋은 아파트가 많이 지어져 교육 여건만 개선되면 인구 분산에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역발상으로 강남 핵심 지역에 재건축을 통해 아파트를 더 많이 공급하는 것이 해법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박상언 유앤알컨설팅 대표는 “서울시에서는 현재 인센티브를 받아도 재건축 아파트 용적률이 최대 300%까지만 허용되는데 이를 500%까지 높여 일반 분양 주택 수를 늘리면 공급이 늘어나면서 가격이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도시가 고밀도 주택 건설을 허용하는 경우인데 고층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공원 면적이 더 늘어나 주거환경이 쾌적해지는 효과도 있었다”고 말했다.
박원갑 위원은 “대규모 강남 대체지 개발은 그린벨트 해제에 따른 자연 파괴를, 도심 고밀도 개발은 환경 훼손 같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면서 “정부가 5년간 100만가구의 공공 주택을 짓겠다고 공언했으니 이를 착실히 이행하면서 주변 지역 인프라를 개선해 나가는 등 현실적인 대책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