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4.12 03:09
"집값 떨어진다" 주민들 님비에… 극비가 된 건설 위치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주민 30여명이 서울시청을 방문, '역세권 청년임대주택'에 반발하는 민원서류를 접수했다. 청년임대주택으로 인한 교통 혼잡, 공사 소음, 지역 슬럼화 등 6가지 문제에 대한 서울시 대책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서울시 측은 "교통량 조사 등 민원 내용 중 납득할 만한 부분에 대해서는 최대한 해법을 마련하겠다"고 답했다.
청년 주거난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서울시가 추진하는 역세권 청년임대주택이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반대의 주된 이유는 주거 환경 악화와 집값·임대료 하락 등이다. 주민들이 반발하자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청년임대주택 전국 20만호 공급' '서울시 8만호 공급' 등 숫자는 홍보하면서도, 초기 단계 사업지 위치는 아예 비밀에 부치고 있다. "정부·지자체가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로 봉합만 하는 탓에 똑같은 갈등이 계속 반복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원 발생률 100%'
청년임대주택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민간 기업을 통해 도심 역세권에 주변보다 임대료가 싼 임대주택을 공급, 만 19~39세 청년 주거난을 해소하려는 정책이다. 11일까지 삼각지·광흥창·합정역 등 역세권 청년임대주택 사업 17개를 인가했다. 그러나 17곳 가운데 민원이 접수되지 않은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민원율 100%'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금도 계속 민원이 들어오고 있다"며 "앞으로 공개될 곳도 99.9% 민원 접수 등 저항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물리적인 반대 행동도 발생했다. 지난 6일 강동구청 앞에서 성내동 주민 수십명이 '임대주택 결사반대'라고 쓰인 피켓과 어깨띠를 이용해 시위를 벌였다. 작년 9월에는 마포구 1구역 재건축 단지 주민들이 시청까지 찾아와 항의했다. 영등포구 당산동 한 아파트의 일부 주민은 전단을 붙이고 뜻을 같이하는 이웃을 모았다.
정부·지자체 대응은 '일단 최대한 숨기고 보자'는 식이다. 서울시는 지난 2월 '5년간 청년·서민 보금자리 24만호 공급'이라는 제목의 보도 자료를 내고 "역세권 청년임대주택 공급 물량을 8만가구로 확대했고, 서울 전역 55개소에서 사업이 정상 궤도에 올랐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정상 궤도에 오른 55곳' 가운데 인가가 나 공표된 17곳을 뺀 38곳의 위치는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지금은 다수 여론이 청년임대주택 반대 주민을 비판하는 쪽으로 흐르는 것 같지만, 막상 자기 집 주변이 사업지인 것을 알게 되면 '청년임대주택 반대'로 입장이 바뀌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인프라 개선 등으로 주민 설득해야"
주민 반대의 가장 큰 이유는 집값·임대료 하락이다. 성내동 주민 이미란씨는 "성내동은 특히 낙후된 지역인데 임대주택이 세워지면 더 낙후된 곳으로 인식될 것"이라며 "여기 있는 어른들 대부분은 전·월세를 받아 생활하는데 노후 대책도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임대주택 때문에 피해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정유승 서울시 주택건축국장은 “청년임대주택은 25m 대로(大路)변에 짓고 입주자 상당수는 중산층으로 채운다”며 “기피 시설로 오해하는 일부 주민을 적극 설득해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노년층 입장에서는 생계가 걸린 일’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광흥창역 청년임대주택 인근 저층 단독·다가구주택 밀집 지역에서 만난 임모(68)씨는 “청년임대주택이 기피 시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값싼 청년임대주택이 들어오면 내가 먹고 살 일이 막막해진다”고 했다. 혼자 사는 임씨는 유일한 재산인 2층짜리 소규모 주택에서 나오는 월세 60만원과 목욕탕에서 하루 4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해서 버는 50만원으로 생활한다.
한국도시행정학회 2016년 발표 자료를 보면 국내 임대 소득자 평균 연령이 62.3세였다. 주택 임대 사업자 59.7%는 임씨처럼 연 1000만원 이하 소득자이고, 3분의 1이 무직자(15.4%) 또는 전업주부(14.4%)였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매년 공공임대 공급 목표치를 설정해놓고 추진하기 때문에 주민 반대가 강하면 관련 예산이나 추진 정책 등이 줄줄이 연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사업 지역에 인프라 개선 등 공익적인 성격의 혜택을 줘서 원래의 지역 주민도 ‘윈-윈’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역세권 청년임대주택 사업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민간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고 역세권에 전용면적 60㎡ 이하 임대주택을 짓도록 한 뒤, 청년층이 시세의 60~90%에 집을 빌릴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이다. 4호선 삼각지역은 전용면적 19~49㎡ 임대료가 12만~38만원이다. 임대 의무 기간 8년, 임대료 인상률은 연 5% 로 제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