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4.12 06:31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궁뜰 어린이공원 앞에는 건축디자인회사인 쿠움파트너스 김종석 대표가 설계한 두 건물이 나란히 서 있다. 하나는 재생 건축(리모델링)으로 되살린 오래된 건물, 다른 하나는 신축 건물이다.
재생건축으로 증축한 건물에는 1970년대 처음 지었을 당시 양식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붉은 벽돌 하나하나를 정성껏 쌓은 모습은 아날로그적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요즘 유행하는 마치 자로 댄 한치 오차도 없이 하얗게 마감된 건물과 사뭇 다르다. 자연을 닮아 복잡하면서도 규칙성이 있고, 명쾌한 규칙 가운데 조금씩 다른 변주도 갖는다.
김 대표는 신축 건물에서는 이런 감성이 살아나지 않는다고 했다. 오래된, 내가 살던 그 시대의 감성을 그대로 재현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요즘엔 재생 건축을 적용한 건물 인기가 더 높고 입주하려는 사람이나 손님도 더 많이 찾아온다.
인기 이유는 또 있다. 두 건물의 임대료 차이다. 재생 건물이 3.3㎡(1평) 당 연 103만 5000원, 신축 건물이 1평당 연 94만 5000원으로 재생 건물 임대료가 조금 더 높았다.
■“재생 건축 비용, 신축의 60%에 불과”
임대료를 뽑아내기 위해 투자한 공사비를 비교하면 재생 건축의 장점이 얼마나 큰 지 금새 알 수 있다. 재생 건축 건물(연면적 425㎡)은 증축 등에 투입된 공사비가 4억5000만원이었다. 반면, 신축 건물(연면적 715㎡) 공사비는 12억8000만원이 들었다. 1평당 공사비를 따져보면 재생 건축 건물이 349만원, 신축 건물이 평당 590만원 수준이다.
1평당 임대료로 따지면 두 건물은 비슷한 수익을 내고 있지만 투입 비용은 재생건축 건물이 신축의 60%에 불과한 셈이다. 심지어 재생 건축 건물에는 건물주가 직접 살고 있으니 주거 인테리어 비용을 빼면 투입 비용 측면에서 격차는 더 클 가능성이 높다.
재생 건축은 규제 측면에서도 신축보다 유리하다. 재생건축 건물은 만약 새롭게 창출된 연면적 모두를 신축했다면 건축법에 따라 3대의 주차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재생건축으로 증축한 부분에 대해서만 주차장 규제를 받게 돼 2대의 주차공간만 만드는 것으로 규제를 피할 수 있었다.
■증축 리모델링으로 월세 1075만원
또 한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김 대표가 연희동에 증축·리모델링한 A 건물이다. 이 건물은 1종 일반주거지역에 해당하는 214㎡ 땅에 건축면적 90㎡로 지어져 있다. 법정 건폐율은 60%를 적용받는다. 이 법정 건폐율의 최대 한도까지 추가로 지을 수 있는 땅은 38㎡로 파악됐다. 1970~1980년대에는 마당을 넓게 만들려는 경향이 강해 굳이 건폐율을 최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용적률 역시 마찬가지다. 기존 A건물의 연면적은 209㎡다. 연면적 78㎡를 늘려 법정 용적률 150% 수준으로 확대할 수 있었다.
김 대표는 이 건물을 증축·리모델링해서 8개의 임대공간을 뽑아냈다. 신축하면 3대의 주차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것과 달리, 리모델링으로 주차공간을 1대만 확보하면 됐고, 그 면적은 그대로 임대공간이 됐다. 작은 임대공간을 모두 합쳐 계산하면 이 건물에서 나오는 월세는 총 1075만원에 이른다. 저성장 시대에 소비만하던 집을 생산재로 바꿔냈다.
공사에 들어간 돈은 총 3억5000만원이었다. 만약 이 규모로 신축을 했다면 어림잡아 5억9000만원 정도 공사비가 들 것으로 추정됐다. 재생건축 비용이 신축의 60% 수준에 그친다는 뜻이다.
이 건물은 3억5000만원을 투자해 연 임대수익 1억2900만원을 거두는 건물이 됐다. 연간 투자 수익률이 36.9%로 3년 정도 이 건물을 운영하면 투자비가 모두 회수된다. 건물 가격도 1평당 2500만원(총 16억3000만원)이었던 것이 4000만원(총 27억원)으로 올랐다.
■‘옛것’ 가치와 효율성, 트렌드로 떠오른 재생 건축
재생건축이 훨씬 경제적인데도 사람들은 왜 지금까지 신축을 선호했을까? 빈 땅이 많았던 1970~1980년대에는 신축이 건축의 표본이었다. 개발시대에는 허름한 집을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새 집을 짓는 일은 구질구질한 구시대와 단절하고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동시에 가져다줬다. 뿐만이 아니다. 이 때도 신축 가격이 재생건축보다 비싸기는 했지만 가격 차이가 지금처럼 크지는 않았다. 인건비, 자재비, 건설 폐기물 처리비 등이 지금보다 낮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이제 서울은 ‘오래된 도시’가 됐다. 빈땅이 더이상 없다. 용적률이 높은 빌딩이 대량으로 공급될 필요도, 그래봐야 빈 방이 없어 모두 채울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물론 재생건축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주차공간이 부족한 것이 단점이 될 수도 있다. 다만, 김 대표의 건물이 들어선 연희동은 20대 젊은층이 더 많이 찾는 곳이기 때문에 주차장이 부족해도 인기가 높다.
김 대표는 “처음 재생건축을 시작할 때는 옛것의 가치를 고려하지 않고 시작했지만 시장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옛것의 가치를 시장이 인정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옛것의 가치가 떠오르는 시기와 저성장에 따라 재생건축의 효율성이 주목받을 수 밖에 없는 시점이 결합하면서 재생건축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이 기사는 음성원 에어비앤비 미디어정책총괄이 지은 ‘도시의 재구성’ 책자에서 저자 허락을 받아 일부 내용을 발췌한 후 재가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