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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만 있는 '전세', 다시 늘어난다

    입력 : 2018.03.12 06:31

    서울 송파구 송파동 ‘래미안 송파파인탑’ 아파트 전용면적 87㎡는 이달 초 7억원에 전세 계약됐다. 불과 한 달 사이에 5000만원 떨어졌다. 김영일 OK부동산 사장은 “갭(gap) 투자한 집주인이 전세를 내놓고 계약 기간이 다됐는데도 세가 나가지 않자 당초 전세금보다 1억원을 낮추자 계약됐다”며 “올해 말 인근에서 1만 가구 규모 ‘헬리오시티’가 입주하는데 그때 가면 전세금이 더 내려갈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서울 서초구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나붙은 전세 시세 안내문. /조선DB

    지난 몇 년간 무섭게 올랐던 아파트 전세 시장이 빠르게 안정되고 있다. 서울 기준 주간(週間) 전세금 상승률이 3년8개월만에 하락세로 돌아섰고, 매물도 늘고 있다. 전셋집을 찾다가 매물이 없어서 포기하던 ‘전세 종말 시대’가 가고 다시 ‘전세 부활 시대’가 온다는 예측마저 나온다.

    ■다시 늘어난 전세 거래…월세는 줄어

    아파트 시장에서는 최근 3~4년 전부터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전세 제도는 곧 사라지게 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집주인들이 전세보다 보증부 월세나 월세를 놓으면서 전세 매물이 점차 줄고 가격은 급격히 올랐기 때문이다. 전세금 급등과 매물 품귀 현상은 전세 수요자들을 주택 매수에 나서도록 압박해 결과적으로 집값을 올리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연도별 전국 주택 전세 거래량. /자료=국토교통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4년 99만건이던 전국 주택 전세 거래량은 2015년 94만5000건, 2016년93만8000건으로 3년 연속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월세 거래량은 62만8000건에서 71만6000건으로 크게 늘었다. 전·월세를 합친 전체 주택 임대차 거래에서 차지하는 월세 비중도 같은 기간 38.8%에서 43.3%로 높아졌다.

    하지만 3년만에 이런 추세가 뒤집어졌다. 지난해 주택 전세 거래량은 다시 96만2000건으로 늘어난 반면 월세 비중은 42.5%로 조금 낮아진 것. 박원갑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수석위원은 “세입자는 월세보다 주거비용이 덜 드는 전세를 선호하기 때문에 전세금이 빠지면 전세 거래량은 늘어난다”며 “올해부터 전세 하락세가 본격화되면서 거래량 증가는 더 두드러질 것”이라고 말했다.

    월별 전국 전세금 변동률. /자료=한국감정원

    ■전세 공급 늘고 수요는 감소

    2016년까지 전세 거래량이 줄었던 이유는 집주인들이 저금리 시대를 맞아 전세 공급을 줄이는 대신 월세를 늘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집값이 안정된 시기에는 전세가 세입자에게 아주 유리한 제도라는 점도 한몫했다. 집값의 60~70%를 보증금으로 내면 취득세·재산세 등 각종 세금을 내지 않고 2년간 저렴한 비용에 거주할 수 있고, 집값 하락에 따른 리스크도 없앨 수 있었던 것.

    하지만 집값이 오르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우선 전세 공급이 늘어나고 있다. 집주인들의 전세 선호도가 다시 높아진 탓이다. 전세 보증금을 받으면 집주인은 자기 투자금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집값 상승에 따른 자본이득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전세 끼고 집을 사는 ‘갭 투자’가 대표적이다. 갭 투자자들은 집을 사서 전세로 놓았다가 가격이 오르면 되팔아 차익을 챙긴다.

    연도별 전국 전월세 거래량과 월세 비중. /자료=국토교통부

    반면 수요는 줄어드는 추세다. 전세 살던 세입자들이 집값이 오르자, 주택 매수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매매가격 대비 전세금 비율이 70%에 육박하면서 세입자들은 주택 구입 능력도 갖춘 경우가 많다.

    이처럼 전세 공급은 늘고 수요가 줄면서 전세금이 하락하고 있다. 그런데 전세 거래량이 늘어나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수요 감소 효과보다 공급 증가 효과가 더 크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수도권 신도시나 지방에서 신규 아파트 입주가 크게 늘어나면서 전세 시장의 연쇄 이동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 하남 미사강변도시, 위례신도시, 김포 한강신도시 등 서울 접근성이 좋은 수도권에 개발된 신도시가 대거 입주하면서 서울 전세 수요를 상당히 흡수했다. 서울은 전세금이 높고 매물도 많지 않은 반면 신도시 새 아파트는 전세금이 낮고 만족도도 나쁘지 않아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전세 수요자들이 늘어난 것이다.

    ■“전세 거래 당분간 늘고 가격은 안정”

    전문가들은 아파트 입주 물량 증가로 향후 1~2년동안 전세금 하락과 거래량 증가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새 아파트가 입주하면 입주 단지 뿐 아니라 주변 지역에 연쇄 효과를 미치기 때문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전국 입주 예정 아파트는 44만여가구로 2000년 이후 최대다. 경기도는 16만여가구로 가장 많다.

    실제로 경기 화성·용인 등지에서는 전세금이 급락하는 단지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전세금이 떨어지면 집주인이 새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기존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내주지 못하는 ‘역(逆) 전세난’이 발생할 우려도 높다.

    하지만 ‘전세 시대 부활’ 현상이 계속될지에 대해서는 속단하기 어렵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팀장은 “집값이 안정되면 집주인들은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할 수밖에 없어 전세 공급 증가는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며 “서울 강남권에서는 초과이익 환수를 피하기 위해 작년 말 관리처분 인가를 받은 재건축 아파트들이 본격 이주에 들어가면 다시 한번 전세 품귀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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