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2.26 06:31
“사실 헌법소원을 해도 이긴다는 보장은 없지요. 요즘 같은 분위기에선 조합원들이 어쩔 수 없이 돈을 내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벌써 5년 전에 부과된 부담금을 내야 할 사람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한남파라곤 주민 A씨는 본의 아니게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된 것에 대해 불편해 하면서도, 할말이 많은 듯 했다. 한남파라곤은 남산1호터널을 나와 한남대교 방향으로 내려가다보면 오른쪽으로 내려다보이는 고급 저층 아파트 단지다. 가구 규모는 42가구로 소규모다.
이 아파트 단지가 주목 받는 이유는 지난달 정부가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꺼내든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의 대표적인 단지이기 때문이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는 재건축 사업으로 평균 집값 상승률을 넘는 개발이익이 발생하면 최고 절반까지 정부가 부담금으로 환수하는 제도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실현 이익’에 대해 부담금을 부과한다는 등의 이유로 위헌(違憲) 논란도 있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가 시행(2006년 9월) 된 이후 서울 중랑구의 정풍연립(2010년), 우성연립(2010년) 전국적으로 5개 단지에 부담금이 부과됐다. 다른 단지들은 부담금 규모가 크지 않아 이미 부담금을 낸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남연립은 조합원 1인당 5544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부담금이 부과됐고, 조합은 이에 반발해 소송전을 시작했다. 2014년 헌법소원까지 냈다. 한남연립의 헌법소원에 대해 헌재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땅집고 취재팀은 한남연립 조합원 A씨를 만나 조합 입장과 헌법소원을 낸 배경을 들어봤다.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A씨는 익명을 요구했다. 그는 조합이 헌법소원에 대해 “현재 분위기로 봐서 이길 것이라는 보장은 없어 보이는데, 조합원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현행법은 부담금을 개인이 아니라 조합에 부과 하는데 한남연립 조합원 31명 중에 상당수는 집을 팔고 떠났습니다. 예전 조합원 7~8명은 행방도 잘 모르겠어요. 남아 있는 사람이 부담금을 내야 하는 상황인데, 이렇게 되면 주민 간에 또 소송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잘못하면 이웃 간에 칼부림이 날 지경입니다.”
이미 부과받은 부담금(17억 1800만원)은 현재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조합에서 부담금을 내지 않고 있어, 미납한 부담금에 대해 이자 뿐 아니라 징벌적 이자까지 매달 2000만원 넘게 부담금이 늘고 있다. 그는 “현재로선 조합원들이 퇴로(退路)가 없다”며 “헌법재판에서 패소한다 쳐도 국가가 조합에 부담금을 부과하는 조항을 개선해 조합원 개개인에게 청구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남연립은 총 42가구로 31가구는 조합원 몫이었고, 일반분양으로 11가구가 분양됐다. 분양가는 3.3㎡당 2200만~2400만원으로 알려졌다. 국토부 실거래가 기준 준공 직후 2012년 매매가는 전용 82.62㎡가 5억6500만~5억8000만, 116.02㎡가 8억5000만원이었다. 이듬해 1억~2억원 정도 시세가 올랐다가 그 다음해 시세가 다시 떨어졌다. 지난해 기준 8억5000만원, 10억4000만원대를 기록했다.
일반 분양으로 인한 추가 수입으로 부담금을 충당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우리 조합은 작은 조합이라 그 돈으로 건축비 내는데 다 썼다”며 “초과이익이 나는 부분은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인해 남은 돈이지 그 밖에 다른 건 없다”고 말했다.
조합원 중엔 집 한 채 뿐이라 부담금을 내려면 빚을 내거나 집을 팔아야 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군부대에서 하우스보이 하던 팔·구순 되는 할아버지가 한분 계신다”며 “평생동안 이 집 하나 갖고 있었는데 지금은 (이 집) 세주고 경기도 광주에 전세 살고 있다”고 했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 부담금 계산식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 부담금은 일반분양분의 경우 분양가에서 재건축 시작 당시 공시가격과 재건축 추진을 안했어도 정상적으로 오른 집값, 개발 중 들어간 개발비용을 뺀 금액에 금액별 가중치를 곱해 계산한다.
“지금도 정부 내에서 재건축 초과이익 부담금 계산법에 대해 혼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조합에 부담금을 부과했던 용산구청도 처음에는 계산이 틀렸습니다. 분양 당시에 미분양이 나왔는데, 이걸 구청에서 제 멋대로 주변 시세 기준으로 가격을 정해 엄청난 이익을 얻었다고 계산한 겁니다.”
한남연립 조합은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를 해 20억1800만원이었던 부담금을 17억1800만원으로 줄였다. 그는 “법 적용 사례가 많지 않다보니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데, 이 미흡한 기준에 대해 국가가 먼저 고치려고 나서는 게 아니라 개인들이 피해를 감수하면서 고쳐야 하는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초과이익 환수제 계산법 자체에 큰 결함이 있다고 주장했다. 최초금액을 공시지가로 잡고 종료시점 가격을 거래가격으로 하면 실제 가격 상승분보다 더 큰 금액으로 잡힌다는 것. 그는 “지금 당장 샀다가 팔아도 저 산식대로라면 초과이익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A씨는 승소 가능성에 대해서는 “법리적으로는 이길 자신이 있다”면서도 “정치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아무리 소송을 잘해도 99% 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같은 시절엔 자기 집 재건축 하는 것 자체가 부도덕 행동처럼 돼 있으니 헌법재판소도 그런 시류를 따라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남연립은 재건축 초과이익환수금 부과에 반대해 2012년 행정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2014년 항소와 동시에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미실현이득에 대한 과세로 헌법이 보장하는 재산권을 침해할 뿐더러 형평의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것이다. 성격이 양도소득세와 유사해 이중과세의 성격이 있을 수 있고, 부담금 산정식이 불분명해 명확성하지 않은 것도 소를 제기한 이유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