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2.04 23:06
['강남 불패' 절반의 진실] [下]
강남 재건축 집중 규제하자 주변 지역에 대체수요 몰려
흑석동 분양권 11억에 산 은행원 "강남 가려 했는데… 그냥 질렀다"
좋은 곳에 아파트 계속 나온다는 신호 보내는 게 정부의 할 일
전세로 12년을 살던 시중은행 직원 박모(41)씨는 최근 서울 동작구 흑석동 한 아파트 전용면적 84㎡ 분양권을 11억원에 샀다. 그는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는 내후년쯤 강남에 집을 사서 가려 했는데, 요즘 집값 오름세가 너무 무서워서 '준(準)강남'이라고 쳐주는 곳 아파트를 사기로 했다"며 "정부 방침대로라면 강남에 재건축을 통한 새 아파트도 한동안 나오기 어려운 거 아니냐"고 했다.
서울 강남, 특히 재건축을 핵심 타깃으로 한 정부 규제가 '강남권 주변 지역' 일반 아파트값까지 밀어 올리고 있다. 대출과 인허가·세금 규제를 통해 강남 재건축을 집중적으로 규제하자 수요자들이 주변 지역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마포·성동·동작구 등에서는 20평형대 소형 아파트가 2억원 가까이 오르거나 아파트 분양권 실거래가격이 입주를 앞두고 1년 만에 50% 급등한 곳도 있다. 전문가들은 "'강남권'을 겨냥한 대책이 자칫 서울 전역의 집값을 올리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강남·재건축 누르자 非강남·일반 아파트로
시세조사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1월 마지막 주에도 서울 아파트값은 0.54% 올랐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등의 압박책으로 재건축 상승폭은 줄었는데, 일반 아파트 가격 상승폭이 0.36%→0.51%로 급등했다. 마포(1.01%), 성동(0.97%), 영등포(0.75%), 동작(0.74%), 용산(0.69%) 등 비강남권이 주도했다. 마포·성동구 등에서는 일주일 새 최대 5000만원까지 오른 단지가 나왔다고 부동산114가 밝혔다. 직장 인근 마포에 집을 사려고 알아보는 서모(43)씨는 "중개업소 수십 군데를 돌아다녔지만, 막상 계약서를 쓰자고 하면 집주인이 2000만원씩 가격을 올리다가 결국 매물을 거둬들이는 상황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1년 가까이 강남 4구를 중심으로 한 재건축과 분양권 거래 규제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들 상품의 구매자가 투기 세력이고, 이들만 막으면 급등세가 멈출 것이란 판단에서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불안감을 느낀 실수요자들이 강남권 주변 새 아파트를 사들이고 있다.
지난 1년간 서울 성동구 아파트값은 7.4%, 마포구는 6.7% 올랐다. 강남구(6.5%)를 웃도는 상승률이다. 새 아파트(2016년 말 입주)인 성동구 옥수동 'e편한세상 옥수파크힐스' 전용면적 59㎡는 작년 초 7억원이던 것이 12월엔 9억원에 거래됐다. 같은 기간 마포구 아현동 '마포 래미안 푸르지오' 전용 84㎡ 실거래가는 8억2600만원에서 10억3500만원으로 25.3% 올랐다.
◇"시장에 만연한 '불안감' 없애야"
노무현 정부 때 주택정책에 관여한 전직 고위 관료는 "서울 주택시장은 공급이 충분하고, 인구 감소로 수요는 계속 감소할 것이라는 정부의 '기본 진단'에 문제가 있다"면서 "잘못된 진단을 바탕으로 대책을 내놓으니 서울 집값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강남 일부 고가 아파트와 다주택자 등 부유층 규제에만 집중하는 사이, 실수요자가 사방으로 튀면서 집값을 올려놓고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서울 주택시장이 정부 정책 때문에 요동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없애는 게 우선"이라고 충고한다. 최막중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며 "집값을 정책으로 잡겠다는 생각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시장 수요자에게 당장 조급해하지 않아도 (집을 장만할) 좋은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게 정부의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과거에도 무주택자의 불안감이 극에 달했을 때 지금처럼 주택시장에 비이성적 과열이 나타났다"고 했다.
교육제도 개편과 일자리 확충 등 범정부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채미옥 한국감정원 부동산연구원장은 "주택 수요자가 선호하는 강남 인프라의 핵심은 교육인데, 이와 관련한 정책은 지금껏 아무 효력을 내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이용만 한성대 교수는 "공교육이 균질적이고 수준 높은 주거지를 많이 만들어야 특정 지역으로 집중되는 수요가 분산될 것"이라고 했다.
김학렬 더리서치그룹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강남권에 밀집한 대기업이 자발적으로 다른 지역으로 옮겨갈 수 있게 정부가 제도적으로 지원한다면,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1년 가까이 강남 4구를 중심으로 한 재건축과 분양권 거래 규제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들 상품의 구매자가 투기 세력이고, 이들만 막으면 급등세가 멈출 것이란 판단에서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불안감을 느낀 실수요자들이 강남권 주변 새 아파트를 사들이고 있다.
지난 1년간 서울 성동구 아파트값은 7.4%, 마포구는 6.7% 올랐다. 강남구(6.5%)를 웃도는 상승률이다. 새 아파트(2016년 말 입주)인 성동구 옥수동 'e편한세상 옥수파크힐스' 전용면적 59㎡는 작년 초 7억원이던 것이 12월엔 9억원에 거래됐다. 같은 기간 마포구 아현동 '마포 래미안 푸르지오' 전용 84㎡ 실거래가는 8억2600만원에서 10억3500만원으로 25.3% 올랐다.
◇"시장에 만연한 '불안감' 없애야"
노무현 정부 때 주택정책에 관여한 전직 고위 관료는 "서울 주택시장은 공급이 충분하고, 인구 감소로 수요는 계속 감소할 것이라는 정부의 '기본 진단'에 문제가 있다"면서 "잘못된 진단을 바탕으로 대책을 내놓으니 서울 집값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강남 일부 고가 아파트와 다주택자 등 부유층 규제에만 집중하는 사이, 실수요자가 사방으로 튀면서 집값을 올려놓고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서울 주택시장이 정부 정책 때문에 요동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없애는 게 우선"이라고 충고한다. 최막중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며 "집값을 정책으로 잡겠다는 생각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시장 수요자에게 당장 조급해하지 않아도 (집을 장만할) 좋은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게 정부의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과거에도 무주택자의 불안감이 극에 달했을 때 지금처럼 주택시장에 비이성적 과열이 나타났다"고 했다.
교육제도 개편과 일자리 확충 등 범정부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채미옥 한국감정원 부동산연구원장은 "주택 수요자가 선호하는 강남 인프라의 핵심은 교육인데, 이와 관련한 정책은 지금껏 아무 효력을 내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이용만 한성대 교수는 "공교육이 균질적이고 수준 높은 주거지를 많이 만들어야 특정 지역으로 집중되는 수요가 분산될 것"이라고 했다.
김학렬 더리서치그룹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강남권에 밀집한 대기업이 자발적으로 다른 지역으로 옮겨갈 수 있게 정부가 제도적으로 지원한다면,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