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1.13 06:31
지난해 1월 전북 전주지법. 전북 진안군 운장산 계곡 기슭의 쓸모없어 보이는 논이 경매에 부쳐졌다. 면적은 2275㎡(약 690평)로 제법 컸지만 감정가격이 817만원에 불과할 만큼 저렴했다. 아무도 관심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뚜겅을 열어본 결과, 이 논을 낙찰받기 위해 몰려든 응찰자만 154명. 이는 작년 한 해를 통틀어 토지 경매 중 최고 경쟁률이었다. 역대 토지 경매 역사에서도 3번째로 높았다. 결국 감정가의 26배에 달하는 2억1410만원에 주인을 찾았다.
산기슭의 쓸모없는 논이 큰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뭘까. 이 땅이 전원주택이나 펜션을 짓기에 딱 좋은 땅이어서다. 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 관계자는 “이 논 앞으로 물이 흐르는 골짜기가 있고 도로도 연결돼 있어 지목(地目)을 변경해 주택이나 펜션으로 활용하기에 최적의 입지”라며 “실제로 주변에 이미 펜션 단지가 있고 낙찰자 역시 집 지을 목적으로 감정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써냈을 것”이라고 했다.
요즘 경매 시장에서 가장 잘 나가는 부동산이 바로 작고 저렴한 땅이다. 지난해부터 단독주택 인기가 크게 높아지면서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이 경매 시장에서도 덩달아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은퇴자 중심으로 전원주택 붐이 일고 있는데다 ‘효리네 민박’같은 방송프로그램이 유행하면서 귀농을 꿈꾸는 젊은이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체 경매 물건 44%가 토지
지난해 경매가 진행된 토지는 4만6950건. 전체 경매 물건의 44%에 달했다. 토지의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전년 대비 7.1%포인트 상승한 76.0%로 집계돼 2008년(83.6%) 이후 9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토지의 평균 응찰자 수도 3.0명으로 전년 대비 0.1명 늘어 2005년(3.4명)이후 역대 두 번째로 높았다.
토지 중에서도 전원주택을 지을 수 있는 소규모 토지 인기가 높았다. 작년 토지 경매 물건 중 응찰자 수 상위 10건을 살펴본 결과, 1건을 제외한 모든 매물이 감정가 4000만원 미만 소액이었다. 면적도 대부분 2000㎡ 미만 소규모였다.
지역도 수도권이 아닌 전북·전남·경남 등 지방 토지의 경쟁률이 높았고, 토지 용도는 논이나 밭이 대부분이었다. 저렴하게 구입해 주택용지로 활용한다는 목적에 딱 맞기 때문이다. 임야의 경우 땅 면적이 지나치게 크고 주택을 짓기 위해 용도를 변경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지난해 116명이 몰려 입찰경쟁률 2위를 기록한 경남 고성군 삼산면 미룡리 논 역시 해안가 도로변으로 단독주택 짓기 안성맞춤 입지다. 이 논은 감정가 1454만원에 경매에 나와 6630만원에 낙찰됐다. 낙찰가율이 456%에 달했다.
■정보 얻기 쉽고 가격 저렴…취득 요건 확인해야
경매를 통해 단독주택 지을 땅을 구하면 여러 장점이 있다. 역시 가격 메리트가 가장 크다. 법원 경매는 감정가 기준으로 최저 입찰가격이 정해지는데 토지는 주택과 비교해도 감정가가 시세보다 낮은 경우가 많다. 특히 지방 논·밭은 주변에 참고할만한 거래 사례가 많지 않아 감정가가 실제 가치보다 낮게 책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매를 통하면 땅을 구입하는 과정도 더 수월하고 믿을 수 있다. 경매정보사이트 등을 이용해 전국의 경매 물건 정보를 수시로 쉽게 파악할 수 있어 발품을 덜 팔아도 된다. 경매 토지는 객관적인 감정가 기준인 만큼 바가지를 쓸 우려도 적다. 아파트와 달리 시세 파악이 쉽지 않은 토지는 부동산 중개인이나 땅주인이 부르는 가격이 적절한지 파악하기 어렵지만 경매는 감정가가 기준이 되는 것이다.
물론 주의할 점도 있다. 낙찰받으려는 토지에 단독주택 건축이 가능한지를 따져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우선 땅에 도로가 접해 있는지, 전기와 상하수도가 갖춰져 있거나 공사가 가능한지를 미리 확인해야 한다. 이런 경우 땅에 미리 지어진 폐가 등이 있다면 도로와 상하수도 공사 비용을 아낄 수 있다.
경매로 논·밭을 낙찰받아 취득하려면 매각일로부터 7일 이내에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토지에 따라 농지취득자격 발급이 가능한지를 해당 시·군·구청에 미리 확인해야 한다.
이창동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경매가 보편화하면서 주택 낙찰가율이 크게 올라 상대적으로 시세차익을 노리는 수요도 토지로 옮겨가고 있다”면서 “올해도 토지 경매 시장의 인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