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1.01 06:50
정부가 ‘세계 최초’ 부동산 전자계약 시스템을 지난 8월부터 전국으로 확대 시행한 지 반 년이 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용률은 저조하다. 서울의 경우 전체 매매 거래의 1%를 밑돈다. 다른 지역도 사정은 비슷하다.
부동산거래 전자계약시스템이란 공인중개사를 통해 주택·토지·상가·오피스텔 등 모든 부동산 거래를 할 때, 온라인에서 전자서명을 하고 계약서를 작성·체결하는 것으로 거래신고까지 자동으로 이뤄진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대출 금리 인하·등기비용 절감 등 여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이용자들로부터 외면받는 이유는 뭘까.
땅집고 취재팀은 최근 전자계약시스템을 직접 이용해 보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짚어봤다.
■‘전자계약’ 중개할 공인중개사는 어디에?
정부는 현재 부동산 전자계약시스템을 쓰는 거래당사자들에게 주택담보대출 이용시 최대 0.3%포인트 금리 인하 혜택과 부동산 등기 수수료 30% 할인 혜택을 준다. 부동산중개수수료 2~6개월 신용카드 무이자 할부, 5만~10만원대의 캐시백 혜택도 함께 제공한다. 대학생·사회초년생·신혼부부 임차인에겐 건당 중개보수 20만원을 선착순으로 지원해 준다.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전자계약을 체결할 때 중개의뢰인은 본인명의 휴대폰과 신분증만 지참하고 중개소에 방문하면 된다. 도장 없이 계약이 가능하고 장롱이나 서랍 속에 계약서를 보관할 필요가 없다. 계약서류는 공인된 문서보관센터에 보관돼 언제든 열람과 출력이 가능하다. 임대차계약의 경우 확정일자가 무료로 자동부여 된다. 매매계약을 할 때는 부동산거래신고가 자동으로 처리돼 늦은 거래신고로 인한 과태료 처분을 받을 일도 없다.
마침 직장 문제로 서울에서 거주할 방을 찾기 위해 기자는 전자계약시스템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보증금 5000만원, 월세 20만원을 내는 ‘반(半)전세’ 물건을 계약한다고 가정했을 때, 보증금 대출 이자 연 15만원과 부동산 중개수수료 20만원 지원 등 최대 35만원을 아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방을 구하려 했던 지역의 부동산 공인중개사들은 대부분 전자계약시스템에 가입하지 않았던 것. 관악구 신림동과 봉천동 일대 공인중개사들은 “(전자계약시스템을) 들어보기는 했는데 막상 써본 적은 없다”며 “그걸로 계약서 쓰겠다고 찾아온 경우도 당신이 처음”이라는 반응이었다.
신림동의 S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아직 시스템이 안정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어서 쓰지 않고 있다”면서 “공인중개사협회에 사용 신청은 했지만 시스템이 안정되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했다.
■전자계약 가입한 업소부터 찾아야
전자계약을 하고 싶은 이용자는 미리 국토교통부 전자계약시스템 홈페이지에 들어가 해당 지역의 부동산 중개업소 목록을 보고 서비스에 가입해 실제 이용하는 업소부터 찾아야 한다.
기자는 서울 관악구 봉천동 세양공인중개사사무소 임병철 대표의 도움을 받아 관악구 은천아파트 49.95㎡ 전세 거래를 하는 걸로 가정하고 실제로 전자계약을 진행해 봤다.
절차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공인중개사가 전자계약시스템 홈페이지에 들어가 전자계약서를 작성하고 중개대상물과 임대인·임차인(매매계약의 경우 매도인·매수인)·중개사 인적사항을 입력한다. 모니터로 입력 내용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서명은 두 가지 방법으로 가능하다. 거래 쌍방이 스마트폰에 ‘부동산 전자계약’ 앱(어플리케이션)을 깔고 본인 인증 후 서명하거나, 중개인이 태블릿 PC를 통해 서명을 받을 수 있다.
절차는 일반 부동산 거래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 종이 대신 컴퓨터 화면으로 계약 내용을 확인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임대차 확정일자를 자동으로 받을 수 있고 금리 인하·등기 수수료 절감 등 혜택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방식이다.
공인중개사도 계약서 작성에 필요한 가이드가 자세하게 설명돼 있어 쉽게 작성할 수 있고, 작성 시 중개 물건의 주소만 기입하면 건축물대장과 토지대장, 공시지가 등을 한꺼번에 자동으로 업로드해주는 덕분에 일일이 확인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임 대표는 “66세인 내가 써봐도 어렵지 않았다”며 “교육을 받으면 어떤 공인중개사도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손님들에게도 여러 혜택이 있다고 설명하면 호응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곳곳에 허점 많아…개선책 시급
전자계약시스템은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곳곳에 허점 투성이다.
먼저 가장 큰 혜택 중 하나인 금리 인하가 현장에서는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다. 국토부와 시중은행(우리ㆍ국민ㆍ신한 등 8개 은행)은 전자계약을 하면 금리를 깎아준다는 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막상 은행 지점에서는 이 사실을 몰라 결국 종이 계약서를 가져오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원래는 전자계약서 번호만 알려주면 은행에서 확정일자를 찾아 전세자금 대출 등 주택 금융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공인중개사 2명이 공동 중개를 할 경우에도 문제가 생긴다. 예컨대 한쪽은 매수인(또는 임차인)을, 다른 한쪽은 매도인(또는 임대인)을 대리하는 경우다. 이 때 양쪽 중개사가 가운데 한 명이라도 전자계약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계약을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자계약시스템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중개사업자용 인증서(1만1000원)가 필요하다. 또 제대로 된 서비스를 하려면 태블릿 PC도 사야 한다. 반면 아직까지 서비스 사용자가 많지 않아 가입을 꺼리는 공인중개사들이 더 많다.
서울 봉천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요즘엔 단독 중개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며 “공동 중개가 대부분인데 봉천동의 경우 중개사가 500명이라고 하면 전자계약 쓰는 경우는 50명도 안돼 공동 중개에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아직까지 종이 계약서를 고집하는 문화도 전자계약 확산에 걸림돌이다. 서울 서초동의 Y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사람들이 집을 계약하면 그 증거물인 계약서를 손에 쥐어야 뭔가 계약이 됐다고 생각한다”면서 “특히 연령대가 높은 임대인이나 건물주는 익숙하지 않으면 계약 과정에 의심을 하기 때문에 결국 종이 계약서를 써야 한다”고 했다. 이어 “전자계약을 하면 과세표준이 고스란히 노출돼 세금 측면에서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임대인들도 있다”고 했다.
국토부도 전자계약 확산을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지난 7월엔 한국공인중개사협회와 전자거래 기록을 거래 당사자 동의없이 국세청 등 다른 기관에 제공하지 않는다는 협약을 맺었다. 또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을 통해 전자계약시스템을 사용하려는 공인중개사에게는 태블릿 PC를 반값이나 무료로 제공한다는 방침도 내놨다.
내년 초까지 공인중개사협회 회원을 위한 부동산 거래 앱인 ‘한방’과 전자계약시스템을 연동시키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내년 1월부터 한시적으로 디딤돌대출과 버팀목대출에서 전자계약을 쓰면 0.1%포인트 우대금리 혜택도 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공인중개사 대상으로 좀 더 체계적인 실무 교육과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면서 “시스템이 조기에 정착되려면 이미 불거진 문제점에 대한 개선 방안도 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