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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집 살면 부자라는데…덫에 걸린 기분"

    입력 : 2017.12.24 06:50

    “주변 사람들은 큰 집에 산다고 우리보고 부자라고 하는데, 남의 속도 모르고 하는 소리에요. 집이 안 팔리니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큰 집에 사는거죠. 날씨가 추워도 보일러 한번 제대로 못 돌리고 전기장판으로 버티고 있는데….”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의 전용면적 215㎡ 대형 아파트에서 사는 이모(59)씨는 요즘 집 생각만 하면 “덫에 걸린 기분”이라고 했다. 5년 전 자녀들이 모두 분가해 남편과 둘만 살게 된 그는 큰 집이 더이상 필요없다. 집을 팔려고 내놨지만, 보러 오는 이도 없다. 이씨는 “수도권 집값이 올랐다는데, 우리 집은 예외”라며 “할 수만 있다면 처음 이사왔을 때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했다.

    대형 아파트가 많은 경기도 용인시. /조선DB

    ■수도권 대형 아파트의 끝없는 추락

    한때 ‘부자들의 전유물’로 귀한 대접을 받았던 대형 아파트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1~2인가구가 이미 전체 가구의 절반을 넘어설 만큼 늘어나면서 대형 아파트에 대한 수요 자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땅집고가 대형아파트가 몰려있는 경기도 용인 수지와 김포, 일산 등지의 아파트 단지를 취재한 결과, 대형아파트는 입주 날짜를 상의할 필요도 없는 ‘빈집’이 수두룩했다. 세입자 구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집주인들이 일단 짐을 빼서 탈출한 것이다. 김포 장기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는 “대형 아파트 집주인들은 ‘설마 더 떨어지기야 하겠느냐’고 말하는데, 요즘 분위기를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0년간의 주택매매가격 변화를 보면 대형 아파트의 몰락은 극명하다. 부동산리서치회사 부동산114에 따르면 2007년 이후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23.2% 상승했다. 특히 20평대(66~99㎡) 소형 아파트는 49.5% 급등했다. 반면 대형 아파트는 정반대다. 같은 서울이라도 50평대(165~198㎡) 아파트는 오히려 3.4% 떨어졌고 60평(198㎡) 이상 아파트는 5.7% 떨어졌다.

    경기도 대형 아파트 가격은 ‘폭락’ 수준이다. 20평대는 지난 10년간 34% 급등했지만, 50평대는 24.6%, 60평대 이상 초대형 아파트는 31.3% 각각 떨어졌다. 소형과 대형의 가격 변동 폭이 65%에 이른다. 대형 아파트는 가격 상승기에 ‘찔끔’ 오르거나 정체된 상태였다가 하락기에는 ‘폭락’한 결과다. 대형 아파트 소유자는 손도 쓰지 못한채 재산의 30%를 고스란히 까먹은 셈이다.

    서울과 경기도의 소형 VS. 대형 아파트 가격 변화. /그래픽=이윤정 기자

    아파트 단위 면적당 매매가격도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소형이 대형을 앞질렀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의 A아파트의 경우 전용면적 85㎡ 아파트의 3.3㎡(1평)당 매매가는 1200만~1300만원대이지만, 85㎡ 초과 대형은 800만원대다. 이 아파트 60평대는 10년 전만해도 13억원 안팎이었지만, 지금은 6억원대로 반토막이 났다.

    임대시장에서도 집이 클수록 제값을 받기 힘들다. 경기도 고양시 마두동의 B아파트 106㎡는 전세금이 3억8000만원선인데, 집 크기가 두 배쯤 되는 195㎡는 5억원선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김은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 팀장은 “지금까지 추세로 볼 때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 등 각종 규제가 시행되는 내년 이후 주택 경기 침체기가 되면 대형 아파트 가격이 먼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1995~2006년 가구원 수별 가구 규모 추이. /통계청 제공

    ■가구원 수 감소와 관리비 부담에 ‘찬밥신세’

    대형 아파트 몰락은 가구원 수 감소에 따른 필연적 현상이다. 통계청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5인 이상 가구는 120만가구로 전체 일반가구(1936만8000가구) 중 6.2%에 불과했다. 약 10년 전인 1995년만해도 전체의 18.4%(238만5000가구)를 차지한 데 비하면 12.2%포인트나 하락했다.

    반면 1~3인 가구는 지난해 전체 가구의 75.5%(1461만7000가구)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현재 10년 이상된 대형 아파트는 전국적으로 290만여 가구에 달한다. 대부분 1990년 이후 용적률을 250% 이상 적용받아 지은 아파트라는 점에서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이 쉽지 않다.

    대형 아파트를 기피하는 또 다른 이유는 유지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 200㎡ 아파트의 경우 한 달 공용관리비가 40만원대, 80㎡대는 20만원대다. 여름철 전기료와 겨울철 난방비까지 합치면 대형 아파트 유지비 부담은 더욱 커진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50평대 아파트에 사는 김모(59)씨는 “자식들은 모두 결혼해 부부만 사는데, 웬만큼 춥지 않으면 보일러도 켜지 않고 버틴다”고 말했다.

    ■“준비없는 중산층 은퇴자에 재앙될 수도”

    집값 안정을 추구하는 정부 입장에서도 대형 아파트는 골칫거리다. 대형 아파트 값이 하락하면 고령 중산층의 자산 가치가 하락하고 결국 전체적인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형 아파트 소유자 중 상당수는 중산층 은퇴자인데, 지나친 집값 하락은 이들의 노후 불안을 촉발할 수도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7월 ‘공동주택 세대구분 가이드라인’을 발표, 대형 아파트 1채를 2채로 나눠 1채는 임대를 놓을 수 있도록 허용한 것도 이런 고민에서 나온 것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대형 아파트를 보유한 고령층은 경제활동성이 떨어져 집값이 떨어져도 대책없이 버티는 경우가 많다”며 “노후를 위해서라면 대형 아파트를 세대구분해 주택 가치를 올리던지 아니면 과감하게 손절매하는 걸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경기 용인시 수지구 성복동 LG빌리지1차 전용 244㎡ 평면도. /네이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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