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메뉴 건너뛰기 (컨텐츠영역으로 바로 이동)

"공사비 더 들지만…조경 좋으면 집값 뛴다니"

    입력 : 2017.11.29 06:31

    경기 고양시 식사2지구에 분양할 예정인 '일산 자이 2차' 단지내 연못과 산책로. /GS건설 제공

    지난 9월 현대건설이 서울 반포주공1단지 1·2·4지구 재건축 수주전에서 승리한 비결 중 하나는 바로 조경 차별화였다. 일본 도쿄돔시티, 잠실 롯데월드타워 등을 맡았던 세계적 조경업체 씨알티케이엘(CRTKL)이 제안한 디자인이 조합원 마음을 사로잡는데 한몫했다는 것이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식사2지구에서 다음달 분양할 ‘일산자이 2차’. 이 아파트는 조경(造景)을 승부수로 내세운다. 친환경 조경의 글로벌 선두주자로 손꼽히는 미국 하버드대 조경학과 니얼 커크우드 교수가 직접 디자인했다. ‘물이 흐르는 계곡’을 테마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신개념 조경 아파트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요즘 국내 아파트 분양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조경 전쟁’이 불을 뿜고 있다. 2000년대 말 시작된 조경 전쟁은 초창기 물량 공세 위주의 1라운드에서 최근 고급화로 방향을 틀면서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건설사마다 글로벌 유명 조경업체들과 앞다퉈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협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 일각에서는 공사비와 분양가 상승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소비자들은 이런 ‘조경 특화’ 단지가 입주 후 집값이 더 높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보이는 게 사실이다.

    ■10년 전 시작된 조경 경쟁…‘아파트의 얼굴’로

    1998년 아파트 분양가 자율화 이후 건설사는 먼저 마감재·인테리어·내부구조 등 내부 구조에 고급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내부 구조가 어느 정도 상향 평준화되면서 더 이상 차별화를 내세우기 어려워졌다. 이후 건설사들은 지상에 있던 주차장을 지하로 모두 내리고 지상에는 정원을 가꾸는 일에 몰두하게 됐다. 때맞춰 녹색(green) 열풍까지 불면서 조경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졌다.

    랜드마크급 대단지 아파트들이 조경 경쟁을 본격화한 것은 2000년대 말. 2009년 7월 입주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는 경북 고령에서 1000년 된 느티나무를 10억원을 주고 사다 심어 화제가 됐다. 조경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아파트 인지도가 덩달아 올랐다.

    아파트 한복판에 수령 1000년된 느티나무를 심어 화제가 됐던 서울 반포 래미안퍼스티지. /조선DB

    서울 서초 ‘반포자이’ 아파트도 당시 서울 도심에서는 드물게 녹지율을 40%로 끌어올리고 고급 소나무만 1200여그루를 심었다. 두 단지는 서울 최고 요지에 상징적인 최고급 조경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단숨에 서울 최고가 아파트 단지들 중 하나로 이름을 알렸다.

    초창기 조경 차별화 전략은 이 같은 ‘물량 경쟁’이 지배했다. 건설사들은 수령(樹齡)이 오래된 비싼 나무, 초대형 암벽 폭포, 인공하천 등을 만들면서 조경에 쓰는 돈을 늘렸다.

    대형 인공폭포가 들어선 고양 일산 위시티 자이 아파트. /조선DB

    경기 고양 식사지구에 2010년 입주한 ‘일산 위시티 자이’는 물량 공세로 유명세를 탔던 대표 단지다. 나무를 심는데만 500억원을 포함해 조경공사에 700억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 이 단지 입구에는 금강산을 본뜬 거대한 인공폭포가 들어서 있다. 단지 안으로 들어가면 약 100개의 테마정원, 2.1㎞에 달하는 산책로도 설치돼 있다. 한그루당 평균 1000만원이 넘는 대적송 등 소나무만 2300그루를 심었고, 지름 80㎝가 넘는 아름드리 느티나무도 400그루에 달한다.

    ■물량 공세 어려워…설계 차별화가 대세

    하지만 물량 공세만 갖고 조경을 차별화하는 것도 결국 한계에 부딪혔다. 김신조 내외주건 대표는 “요즘 웬만한 아파트에서 나무숲, 잔디광장, 연못을 꾸미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 됐다”면서 “소비자 눈높이도 무시못할 만큼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최근 건설업계에는 새로운 조경 차별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크게 두 가지 트렌드가 대세로 떠올랐다. 하나는 이색 테마 조경을 통해 소비자 마음을 얻는 것. 경기 하남시 미사강변도시 ‘미사강변센트럴자이’가 대표적이다. 이 아파트는 단지 한복판에 초대형 공원이 있다. 공원 면적이 전체 대지의 4분의 1에 달한다. 나무와 인공 시냇물 사이로 산책로가 어우러진 모습이 웬만한 공원보다 잘 꾸며졌다는 평가다. 하남시의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다른 아파트를 보러 왔다가 미사강변센트럴자이의 조경에 반해 집을 사겠다고 하는 수요자도 적지 않다”고 했다.

    경기 하남시 '미사강변센트럴자이' 아파트 중앙공원. /조선DB

    지난 5월 경기 안산시 사동에서 분양한 ‘그랑시티자이 2차’는 북유럽신화를 본뜬 ‘트롤파크’, ‘휘게 그린프라자’, ‘윈터 포레스트’ 등 3가지 테마로 꾸민 정원을 선보여 청약에 성공했다.

    지난 6월 서울 양천구 신정뉴타운에서 공급한 ‘신정뉴타운 아이파크 위브’는 물량 공세와 테마 조경을 접목했다. 나무 7만5000여그루를 단지 안 보행로를 따라 종류별로 식재해 참나무마당, 소나무마당, 물빛마당, 물보라마당 등 테마 조경 공간을 갖추기로 한 것이다.

    최근 공급한 아파트들의 조경 협력 사례.

    최근 대세는 콜라보라레이션(협업)이다. 서울 강남권 고급 아파트 중심으로 글로벌 조경업체와 손잡는 것이다. 지난 9월 서울 반포주공1단지 1·2·4지구 재건축사업을 수주한 현대건설은 CRTKL과 제휴했다. CRTKL은 서울 강남 ‘센트럴시티’와 ‘코엑스몰’,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 대구 현대백화점 등 랜드마크 상업시설 설계에 참여한 업체다.

    비슷한 시기 롯데건설은 서울 송파구 잠실 미성·크로바 아파트 재건축 수주전에서 하버드디자인대학원과 협업한 조경을 내세웠고 결국 사업권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와 반포 자이의 2009년과 최근 실거래가 추이. /국토교통부

    GS건설은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4단지 조경 디자인에 미국 디즈니월드, 평창 동계올림픽 노르딕 경기장을 설계한 SWA와 협업하기로 했다.

    걍원도 평창 올림픽노르딕경기장. /평창올림픽 조직위

    고양시 일산동구 식사2지구에서 분양하는 ‘일산자이 2차’는 ‘미사강변센트럴자이’로 호평을 받은 하버드대 니얼 커크우드 교수와 다시 한번 손잡는다. ‘일산자이 2차’는 물이 흐르는 계곡을 테마로 한 조경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연못 주변으로 잔디광장, 소나무숲, 왕벚나무길, 순환산책로 등을 배치한다.

    이기성 더감 대표는 “최근에는 조경에 대한 수요가 워낙 높아 아파트 마다 조경 시설에 포인트를 주지 않으면 관심을 얻기 어렵다”며 “유명 업체와 손잡는 것은 다소 공사비가 올라가더라도 소비자들에게 확실한 인상을 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sns 공유하기 기사 목록 맨 위로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