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11.20 06:50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본점을 둔 부동산중개 스타트업 '집토스'. 요즘 대학생들의 원룸 전·월세 계약을 하루 한 건 이상 중개할 정도로 바쁘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들이 '집토스'를 찾는 데는 이유가 있다. 세입자들에게 복비(부동산 중개보수)를 한 푼도 받지 않는 이른바 '공짜 복비'를 내세우기 때문이다. 이재윤(26) 집토스 대표는 "우리는 집 주인에게만 중개보수(수수료)를 받는 대신 2배 많은 매물을 중개해 수익을 낸다"며 "방을 찾는 손님들은 '정말 복비를 안 받느냐'고 반신반의하지만 이용하고 나면 모두 만족스러워한다"고 했다.
전국 10만 공인중개사들의 수입원인 부동산 중개 보수 시장에 '반값'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세입자들에게 수수료를 받지 않는 '공짜 복비'나 '반값 복비'를 내세우는 업체들이 늘어가고, 이들의 영향력도 점점 커지고 있다. 기존 중개업소들은 ‘덤핑 공세’라며 반발하면서도 변화의 움직임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오랫동안 유지됐던 중개보수 체계가 근본적인 변화를 앞두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반값 중개보수’ 업체가 일으킨 파장
부동산 중개보수 체계는 원칙적으로 금액대에 따른 상한 요율만 정한다. 중개업자들이 세입자나 집주인과 협의해 복비를 정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중개업자가 상한 요율대로 수수료를 내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전세의 경우, 워낙 매물이 부족하디보니 세입자들이 중개업자들과의 협상에서 결정권을 갖기 더욱 어려웠다.
이 같은 중개 보수 체계는 그동안 여러차례 반발에 부딪혔다. 국토교통부는 “복비가 너무 비싸다”는 소비자 지적에 2015년부터 매매가격 6억~9억원, 전세 보증금 3억~6억원의 수수료 상한을 각각 기존의 절반 정도인 0.5%, 0.4%로 내리는 방안을 시행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수수료 상한 자체가 너무 높아 본질적인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변호사가 창업한 ‘트러스트 부동산’은 부동산 중개보수의 파격 인하를 내걸어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트러스트 부동산’ 측은 “거래 금액과 상관없이 수수료 99만원”을 내세웠다. 공인중개사를 통해 10억원짜리 집을 사고 팔면 수수료로 900만원 정도 내야 하는 걸 감안하면 10분의 1 수준이다.
‘수수료를 집주인에게서만 받는다’는 아이디어로 시작된 ‘집토스’는 소액 전·월세 시장이라는 틈새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특히 집주인에게만 수수료를 받고 부족한 수익은 더 많은 매물을 중개해 메운다는 전략이 성공했다. 전·월세 수요자들의 지지를 받다보니 임차인을 빨리 구하려는 집주인들의 호응도 높다.
‘집토스’와 유사한 ‘공짜’ ‘반값’ 복비를 내세운 업체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공짜방’은 집주인에게만 수수료를 받겠다는 부동산 매물을 소개시켜 주는 스타트업이고, ‘우리방’도 이와 유사하게 집주인으로부터만 중개 보수를 받는다. ‘부동산다이어트’는 매물 금액에 상관없이 수수료를 0.3%만 받는다.
서울 강남권 아파트 시장에서도 중개업체 ‘바니조아(vanizoa)’가 최근 반값 중개보수 서비스를 내걸고 가맹 중개업소를 모집하고 있다. 이 업체는 아파트 매매 거래를 중개하면서 수수료를 양측으로 받기는 하지만 법정 수수료 상한의 절반만 받을 계획이다.
■기존 중개업소는 반발…“변화의 기회 삼아야” 지적도
소비자들은 반값 복비 확산을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업체들이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중개 보수를 받지 않거나 파격적으로 적게 받는 방식이 ‘불공정 거래’라거나 ‘골목 상권 죽이기’라고 반발하는 기존 부동산 중개업소들이다.
‘트러스트 부동산’은 한국공인중개사협회로부터 고소당해 법정 소송이 진행 중이다. 중개사협회는 트러스트 부동산을 상대로 1차로 “공인중개사가 아니면서 부동산 명칭을 쓴 것은 불법”이라며 고소한 후, 2차로 “중개업 등록없이 매물을 중개했다”고 추가로 고소했다.
‘집토스’는 지난 8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강남 분점을 열었는데, 인근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몰려와 개업 반대 시위를 벌인 탓에 휴업까지 했다.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 얼굴이나 한 번 보자고 위협하거나, 사무실 소파에 몇 시간이고 앉아서 위협을 한 중개업자들도 있었다.
기존 공인중개사 업계에서는 이런 ‘반값’ 중개 보수 서비스가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출혈 경쟁을 불러온다고 비판한다. 서울 봉천동의 한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세입자들에게 수수료를 받지 않는 것은 불공정 거래”라며 “반값 업체들이 기존 질서를 어지럽혀 영세 공인중개사무소들의 밥줄이 끊길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개사협회 내부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보인다. 공인중개사협회가 지난 7월 국토교통부에 ‘중개 보수 선진화’ 방안을 연구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협회는 내년 3월 연구 용역에 들어가 2년간 중개 보수 선진화 로드맵을 작성할 계획이다.
중개업자들 스스로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선진국에서는 부동산 중개사무소의 수수료가 더 비싸지만 시장 조사 보고서와 세무 상담 등 질높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국내 중개업체들이 수수료만큼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