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10.30 00:59
[부동산·가계부채 대책 부작용… 분양시장엔 오히려 인파 몰려]
- 실수요자 아파트 '거래 절벽'
대출 규제 더 강력해지자 호가 수천만원 내려도 집 사려는 사람 거의 없어
- 예비 청약자 줄 선 모델하우스
대출받기 더 어려워지기 전 내 집 마련하려는 수요 급증… 단지마다 수만명씩 몰려
정부의 가계부채 대책 발표로 서울 주택시장이 관망세로 돌아서며 거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서민 실수요자가 많이 찾던 서울 비(非)강남권 인기 아파트 단지까지 '거래 절벽'이 심각하다. 가계부채 관리 강화와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상이 '직격탄'을 날린 셈이다. 주간 단위로 조사하는 서울 아파트값은 소폭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거래 위축이 장기화하면 집값 하락이 본격화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가계부채 대책 발표 후 처음 문을 연 서울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예비 청약자들이 대거 몰렸다. 내년 이후 대출받기가 더 어려워지기 전에 새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는 수요자가 몰렸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얼핏 보면 상반된 현상이지만, 모두 부동산 규제책의 부작용이라고 봐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수요자 인기 단지 매매, 8월 34건→10월 4건
본지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8·2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뒤인 8월 서울에서 가장 거래가 많았던 아파트 단지 4곳은 10월 들어 거래가 뚝 끊긴 것으로 나타났다. 비강남권에 있는 이 단지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과 입지 조건 덕분에 신혼부부나 서민층의 구매 수요가 탄탄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가 '강남 재건축' '다주택자' 등 투기 수요를 겨냥해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지만, 실제로는 은행 대출로 어렵게 내 집을 마련한 실수요자도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진단한다.
6년 전 서울 관악구 봉천동 '벽산블루밍 1차' 전용면적 59㎡ 아파트를 사서 입주한 A씨는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 전에 단지 내 큰 평수(전용 84㎡)로 옮기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달 들어 포기했다. 집을 내놨는데 매수 문의가 없었다. 부동산 중개업소에서도 "매달 20건 정도는 매매가 이뤄지는 인기 단지인데 거래가 완전히 끊겼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와 가계부채 대책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29일 국토교통부 실거래 자료에 따르면, A씨가 거주하는 벽산블루밍 1차는 이달 들어 단 1가구가 매매됐다. 이 단지는 8월 18건의 매매거래가 이뤄졌고, 9월에도 15건이 거래됐다. 강북구 미아동 'SK북한산시티', 성북구 하월곡동 '월곡두산위브', 동대문구 장안동 '장안 현대홈타운' 등 8월 기준 서울 매매거래 상위 5위 안에 들었던 단지들이 10월에는 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SK북한산시티는 8~9월 두 달 동안 62건이 거래됐지만, 10월엔 고작 4건뿐이다.
미아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수도권 신도시 입주가 예정된 집주인이 호가(呼價)를 수천만원 내려 집을 팔려고 해도 매수자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거래 절벽 속 모델하우스엔 인파 몰려
기존 아파트 시장이 거래 감소로 신음하지만, 서울 인기 지역에 새로 공급된 아파트 모델하우스엔 인파가 몰렸다. 현대건설과 대림산업이 함께 분양하는 서울 강동구 상일동 '고덕 아르테온'(고덕주공3단지 재건축) 모델하우스엔 주말 사흘 동안 4만2000여명이 방문했다. 현대산업개발이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공급하는 '사가정 센트럴 아이파크'도 입장에만 1시간 이상이 걸리는 등 사흘 동안 3만2000명이 몰렸다.
11월에도 전국에서 약 6만 가구가 분양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정부 규제로 주택 경기 전망이 밝지 않은 가운데 공급 물량이 한꺼번에 몰리는 것이 시장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팀장은 "서울 재건축·재개발 단지는 수요층이 탄탄하지만, 대출 규제와 금리 인상 등의 악재로 지방 청약 시장은 대규모 미분양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