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9.21 23:54
[국토부 "도 넘었다"… 이사비 관행에 처음 시정 명령]
공짜 관광·고가의 상품권 등 '쩐의 전쟁'된 재건축 수주전
건설사는 공사비 올려 회수, 국토부 "조합에 회계감사권"
국토교통부는 21일 "일부 건설사가 과도한 이사비를 지급하기로 제시한 건에 대해 법률 자문한 결과 도시정비법에 위배된다고 판단, 시정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최근 서울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사업 수주전(戰)을 벌이고 있는 현대건설이 "조합원 전원에게 이사비 7000만원씩을 무상으로 지급하겠다"고 제안한 것을 겨냥한 조치다. '이사비' 관행에 국토부가 개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건설사들은 해외 수주 가뭄 속에 정부의 공공 공사 감축 방침이 확정되면서 치열한 재건축 사업 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사비'에 처음 제동 건 국토부… "과열 심각"
국토부는 이날 보도 자료에서 건설사를 적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건설은 보도 자료가 나간 직후 "관계 당국의 정책 발표를 겸허히 수용한다"는 입장 자료를 냈다. 현대건설은 최근 서울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을 놓고 GS건설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조합원 전원에게 이사비 7000만원씩을 무상으로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재건축 사업에서 '이사비'라는 용어는 시공사가 이사에 필요한 실비를 지급하는 개념이다. 재건축 기간 조합원이 임시 거처에서 전·월세로 머무는 데 드는 자금인 '이주비'와는 다르며, 통상 이사비는 1000만원을 넘는 경우가 드물다.
현대건설은 입장 자료에서 "이사비는8·2 부동산 대책으로 대출 한도가 줄어든 조합원들을 위해 현대건설이 '이주비' 5억원을 무이자로 빌려주기로 하면서 대출이 필요 없는 조합원에게 그 이자 비용에 해당하는 현금 7000만원을 지원하겠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또 "앞으로 서초구청, 조합과 협의를 통해 수정안을 마련하고, 제시한 조건을 이행하는 방안으로 이행보증증권 등을 조합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해외 건설 가뭄에 주택 규제 겹치자 재건축에 '올인'
국토부는 이날 "부산 등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있는 다른 지역에도 이번 법률 검토 결과를 알리고, 시공사 선정과 관련하여 과열되지 않도록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겠다"고도 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재건축을 둘러싼 과열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L건설은 최근 공사비만 1조원이 넘는 부산의 재개발 사업 수주와 관련 “시공사로 선정되면 무상으로 이사비 3000만원을 주겠다”는 내용의 ‘이사비 증서’를 제공했다. 김치 냉장고, 유명 브랜드 청소기, TV 등을 총회 전에 미리 지급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일부 건설사는 재건축 조합원을 상대로 묻지 마 관광을 제공하기도 했다. 국토부는 이날 “앞으로 재건축 조합에 재건축 사업에 대한 회계 감사 권한을 주는 등 관계 법령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수천만원대 이사비’를 준 건설사가 추후 공사비 증액 등의 방법으로 우회 회수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건설사들이 이처럼 재건축 사업에서 무리수를 두는 이유는 해외 건설 가뭄이 이어지는 데다, 주택 시장도 규제 여파로 하락세로 접어들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건설과 대우건설, 대림산업, 포스코건설, GS건설 등 상위 다섯 건설사 반기 보고서를 보면, 상반기 건설 부문 해외 사업 매출 총합은 8조9950여억원으로 작년 상반기(13조3200여억원)보다 4조3240억원 감소했다. 감소율이 32%에 이른다. 여기에 정부는 SOC(사회간접자본) 예산도 향후 5년간 매년 7.5%씩 감축할 계획이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내년 재건축 초과 이익 환수제 부활을 앞두고 건설사들이 재건축 수주에 총력전을 펴면서 과열 양상이 빚어진 것”이라며 “여러 흐름상 건설업계가 한동안 침체를 겪을 수 있으며, 정부가 공공 부문에서라도 건설업계에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사비란?
조합원이 재건축 공사 직전에 다른 집으로 이사하고, 공사 후에는 새집으로 옮길 때 필요한 포장 이사 비용 등 경비. 시공사가 실비 수준에서 무상으로 주는 경우가 많다.
☞이주비란?
조합원이 재건축 공사 기간 다른 집에 세들어 살기 위해 필요한 전·월세 자금과 부동산 중개 수수료. 기본적으로 조합 주선하에 조합원 개개인이 아파트 대지 지분 등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받는 형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