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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 '로또판' 만든 서울 강남 부동산 '이중 규제'

    입력 : 2017.09.02 00:36

    [신반포센트럴자이, 주변시세보다 낮게 책정되자 '100m 대기줄']

    주택보증공사가 강제로 끌어내려 당첨만 되면 수억원 시세차익
    모델하우스 하루 1만5000명 방문

    전용 59㎡ 7억원 자체 조달해야… 자산가·고소득 전문직 많이 찾아
    "부자들 저가매수 계기 될 수도"

    1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신반포센트럴자이 모델하우스 앞에는 '입장 대기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줄은 'ㄹ'자 형태로 구불구불 이어졌고, 100m를 넘었다. 줄 끝에서 입장까지 한 시간쯤 걸렸다. 이른바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자)도 행렬 주변을 서성이며 호객 행위를 했다. 50대 떴다방 업자는 "당장은 어렵겠지만 입주 이후 또는 그 전이라도 상황이 풀리면 좋은 값에 팔아 드리겠다"며 연락처를 요구했다. 이날 방문객은 1만5000여명에 달했다.

    '초강력 규제'로 불리는 8·2 부동산 대책에도 인파가 몰린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가 분양가를 억지로 끌어내려 놓은 부작용"이라고 말했다. 분양 보증 기관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집값 안정을 명분으로 조합을 압박해 3.3㎡당 평균 분양가를 4250만원 선까지 끌어내렸고 인근 아파트 '아크로리버파크'의 3.3㎡당 시세(6200만원)와 차이가 크게 벌어져 시세 차익을 노린 수요가 몰렸다. 가장 작은 59㎡에 당첨되면 3억원가량의 시세 차익을 볼 수 있다는 계산이다.

    모델하우스에 긴 행렬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신반포센트럴자이’모델하우스 앞에 관람객들이 입장을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모델하우스에 긴 행렬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신반포센트럴자이’모델하우스 앞에 관람객들이 입장을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주택보증공사(HUG)의 압력으로 이 단지의 분양가는 주변 시세보다 낮게 책정됐다. 모델하우스를 찾은 사람들은“분양가가 낮아 당첨만 되면 수억원의 시세 차익을 볼 수 있는‘로또’라는 말에 청약을 하러 왔다”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정부가 이달 중 민간 택지에 대한 분양가상한제 도입을 준비 중인 가운데 이미 실질적으로 분양가를 통제받은 강남권 아파트 청약 현장이 '로또판'으로 변질되는 양상이다. 정부는 '싸게 분양한 새 아파트가 주변 시세를 끌어내릴 수 있다'며 분양가를 낮추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반대로 '새 아파트 가격이 주변 시세를 따라 올라갈 것'이라고 판단하는 '분양가상한제의 역설(逆說)'이 나타나고 있다.

    신반포센트럴자이가 들어서는 서울 서초구는 8·2 대책에서도 최고 강도(强度) 규제를 적용받는 '투기 지역'이다. 분양받으려면 자기 자금이 많이 필요하다. 정부는 '투기 지역 내 9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중도금 집단 대출을 막아놨기 때문에 전용 59㎡(10억~11억원)를 분양받으려면 기본적으로 잔금 30%를 제외한 7억여원을 자체 조달해야 한다.

    이 때문에 모델하우스 방문객 중에는 자산가가 많았다. 기혼인 딸과 함께 모델하우스를 방문한 50대 여성은 "딸에게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해주려고 왔다"고 말했다. 임종승 분양소장은 "사전 문의 전화를 6000통가량 받았는데, 절반이 강남·서초구민이었다"고 했다.

    젊은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도 많았다. 아내와 함께 온 변호사 강모(39·잠원동)씨는 "6월에 첫 내 집을 계약했지만 주변보다 싼값이라 욕심이 난다"며 "당첨되면 기존 집을 전세 놓고 그 돈으로 중도금을 메우고, 양도세는 수년간 안 팔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의사 김모(34·목동)씨는 "자금이 넉넉한 건 아닌데, 수입이 괜찮기 때문에 신용대출까지 전부 동원하면 된다"고 했다.

    이처럼 '부자들만의 로또'가 될 것이란 비판 탓에 GS건설 측은 자체적으로 은행과 협의를 통해 '무주택자에 한해' 중도금 일부(전체 집값의 40%)를 대출받을 수 있도록 길을 터놨다고 이날 밝혔다. '자산가'들은 여기에 불만을 토로했다. 박모(36·잠실동)씨는 "돈 없는 사람까지 몰리면 경쟁률이 높아질 것 같아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직장인 이모(32)씨는 "여윳돈이 1억여원에 불과하지만 청약한다"며 "당첨만 되면 지인과 돈을 어떻게든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신반포센트럴자이 분양에서 나타난 '분양가상한제 예고편'을 혹평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분양가상한제로 집값을 안정시키려면 청약 경쟁률이 떨어져 줘야 하는데, 정반대로 당첨자에게 시세 차익만 안겨줄 것 같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결국 돈 있는 사람이 더 좋은 환경에서 저가 매물을 주워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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