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5.03 19:38 | 수정 : 2017.05.04 11:20
지난달 24일 오후 경기 광주시 오포읍 광명초등학교 인근 골목은 새로 지은 빌라로 빼곡했다. 골목 곳곳에 ‘싼 집! 실입주금 7000만원부터’ ‘전세, 월세, 1~3룸 분양’ 같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빌라 신축 공사장으로 가는 레미콘 차량이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는 좁은 길을 아슬아슬하게 오갔다. 마주 달리던 차량이 상대방의 후진을 요구하며 승강이를 벌이고, 멈춰 선 차 사이로 사람들이 몸을 비틀며 위태롭게 지나다녔다.
주차장이 태부족해 밤이면 좁은 길이 주차장이 되기 일쑤다. 최모(77)씨는 “작년에 내가 쓰러져 119를 불렀는데 응급차가 오지를 못하더라”며 “제대로 된 길도, 은행·시장 같은 시설도 없는 이곳에 어쩌자고 자꾸 건축 허가를 내주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주차장이 태부족해 밤이면 좁은 길이 주차장이 되기 일쑤다. 최모(77)씨는 “작년에 내가 쓰러져 119를 불렀는데 응급차가 오지를 못하더라”며 “제대로 된 길도, 은행·시장 같은 시설도 없는 이곳에 어쩌자고 자꾸 건축 허가를 내주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전세난과 주택 시장 호황을 타고 서울 등 수도권에 빌라(다세대주택·연립주택)가 급증하고 있다. 주택법의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30가구 미만의 소규모 빌라가 ‘우후죽순’처럼 생기면서 난개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도로와 상하수도, 학교, 주차장 등 기반 시설이 부족한 지역에 우격다짐 식으로 빌라촌(村)이 조성되면서 주거 환경이 더 나빠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부동산 호황 타고 급증한 빌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만 빌라 2만4952동(棟)이 새로 생겨났다. 지난해 지어진 다세대·연립주택이 9945동, 총 10만1899가구이다. 빌라 매매 거래도 눈에 띄게 늘었다. 서울의 다세대·연립주택 매매 거래량은 2013년 3만943건에서 지난해 6만1610건으로 3년 만에 2배로 뛰었다.
서울 강북구 번동 411-3 일대에는 두세 집 걸러 한 집이 신축 공사 중인 빌라였다. 양쪽으로 각각 4층과 5층짜리 빌라에 끼인 단독주택에 사는 주민은 “낮에도 햇빛이 잘 안 든다”고 투덜거렸다. 어떤 빌라는 이웃 빌라와의 간격이 어른 팔 하나 정도 거리였고, 그 양쪽으로 난 창문을 통해서는 이웃 빌라 주민의 사생활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인근 수퍼마켓 주인은 “작은 골목에 빌라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한 집에 불이 나면 순식간에 번질까 걱정스럽다”고 했다.
수도권 빌라 급증의 원인은 최근 2년여간의 주택 경기 호황과 전세난이 꼽힌다. 이재경 서울시 도시계획관리위원회 입법지원관은 “부동산 호황과 전세난으로 빌라 건축의 수익성이 높아지자 재개발·재건축 무산 지역을 중심으로 신축 빌라가 우후죽순 생겨났다”며 “여기에 임대주택을 늘리기 위해 정부가 미분양 빌라를 사들이는 ‘매입임대’ 제도가 건축주들 사이에 ‘다세대·연립 신축은 무조건 돈이 된다’는 믿음을 부추겼다”고 말했다.
현행 주택법은 30가구 이상 공동주택을 지을 때 사업계획 승인을 받도록 규정한다. 일부 건축주는 까다로운 주택법을 피해 30가구 미만의 빌라를 공급해 난개발을 부추기고 있다. 건축 허가만 받으면 누구나 짓는 30가구 미만 빌라는 도시계획 심의를 받지 않아도 되고, 어린이 놀이터나 경로당 같은 공동시설 설치 의무도 없다. 진입도로 폭은 4m 이상이면 되고, 환경영향평가와 건축심의도 필요 없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정부가 2015년 인접한 도로 폭에 따라 건물 높이를 제한하는 ‘도로 사선제한 기준’을 폐지한 것도 빌라 난립을 부추겼다”고 말했다.
◇빌라도 체계적인 도시 계획에 근거해야
소규모 빌라가 마구잡이식으로 지어지면서, 주민끼리 갈등이 벌어지기도 한다. 지난달 24일 경기 의정부시 가능동 신축빌라 공사 현장에서는 주민들이 레미콘 차량 진입을 막고 있었다. 주민 조평덕(68)씨는 “좁은 골목으로 레미콘 차량이 드나드느라 새로 지은 집 주차장이 내려앉고 갈라졌다”며 “여기저기서 빌라를 짓겠다며 새벽 6시부터 공사를 해대는 탓에 주말에도 집에서 편히 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인천·경기 등에서도 신축 빌라로 인해 일조권을 침해받았다며 소송을 내거나 신축 빌라 앞에서 주민들이 집회를 벌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신축 빌라가 급증하면서 ‘깡통 전세’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부동산 경기가 나빠져 집값이 내리면 주로 서민층인 빌라 세입자들이 전세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유안타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다세대·연립 주택의 전·월세 비중은 58.1%로 아파트(34.7%)보다 훨씬 높다. 실제로 2012년 말부터 작년 말까지 수도권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4000여만원 오를 동안 다세대·연립주택 가격은 1000여만원 하락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도시계획에 근거하지 않은 빌라 난립은 앞으로 재산권 분쟁·주민들의 삶의 질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며 “뉴타운 해제 지역이나 재개발·재건축이 안 돼 다세대·연립 주택이 대거 들어설 지역은 도로 폭 확보 등의 규제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는 “아파트 중심의 대규모 재개발에서 벗어나 20~40가구 규모의 소규모 필지들을 모아 주차장과 도로를 확보하면서도 다세대·연립으로 건축하는 ‘미니 재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