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4.21 00:10
[원주~강릉 고속철 공사 담합, 4개 건설사에 과징금 701억원]
공구별로 낙찰받을 회사 정한 후 나머지들 터무니 없는 가격 써내
당일엔 배신 못하게 함께 움직여 최저가 낙찰제 보완책 무력화
기술력 평가하는 '종합심사제' 작년 도입 이후 담합 줄었지만
"뿌리 뽑으려면 과징금 더 올려야"
◇새 입찰 방식 역이용한 신종 담합
공정위에 따르면 이 건설사들은 한국철도시설공단이 2013년 발주한 원주~강릉 고속철 노반공사 4개 공구 입찰(총 6000억원 규모)에서 각각 1개 구간씩 낙찰받기로 하고 담합했다. 당시 입찰은 단지 최저가를 써낸 업체가 낙찰받는 게 아니라, 입찰에 참여한 업체들이 써낸 금액 평균을 고려해 최저 가격 기준을 따로 정하고, 우선 그 기준보다 낮게 써낸 업체를 탈락시킨 다음, 남은 건설사 중 최저가를 써낸 업체에 공사를 맡기도록 했다. 무조건 최저가를 낸 업체를 선정하면 부실 공사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마련한 보완책이다.
그런데 현대건설 등 4개사는 이를 악용, 들러리 건설사 3곳을 동원해 일반 다른 건설사 낙찰 희망 예정가보다 30%가량 낮은 가격을 써내게 했다. 그 결과 전체 평균 입찰 금액과 최저 가격 기준이 떨어졌고, 그 뒤 이들은 담합에 참가한 1개사에 떨어진 최저 기준가보다 약간 높은 가격을 써내도록 해 공사를 따냈다. 공구별로 각각 26개 건설사가 경합했지만 이들의 조직적인 계략을 이기지 못했다.
육성권 공정위 입찰담합조사과장은 "이들은 입찰 금액을 써내기 전날과 당일 이틀 동안 35번 이상 통화를 하고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며 "배신하지 못하도록 입찰 당일에도 함께 움직이며 서류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담합이 적발된 현대건설은 216억9100만원, KCC건설은 163억3000만원, 두산중공업은 161억100만원, 한진중공업은 160억6800만원 과징금이 부과됐다.
◇건설업계 "입찰 제도 개선 후 담합 사라져"
건설업계는 "이번에 적발된 담합은 입찰 제도가 개선되기 전인 2013년에 있었던 것으로, 2015년 담합 근절 자정 결의를 한 후 담합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당시 정부가 발주하는 입찰 제도는 국가 예산을 아끼기 위해 기술력보다는 최저가 중심으로 이뤄져, 건설사들이 최저 수익을 확보하려고 입찰 가격을 서로 조정해 담합을 했다. 기술력이 좋은 건설사도 하나의 공사 구간만 낙찰받을 수 있어(1사 1공구제), 공정한 경쟁보다는 나눠먹기식 담합이 횡행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4대강 같은 대형 국책 사업의 경우 빠르게 설계하고 공사를 하기 위해 미리 건설사끼리 입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5년을 기준으로 최저가 낙찰제 중심의 기존 입찰 제도가 기술력 평가 등을 포함하는 방식으로 개선되면서 담합은 줄고 있다. 정부는 작년부터 입찰 시 최저가가 아닌 기술력을 평가하는 '종합심사제'를 도입했고, 건설사들도 2015년 8월 '공정경쟁과 자정실천 결의대회'를 가졌다. 조준현 대한건설협회 정책본부장은 "2014년 4대강 담합이 대규모로 적발된 뒤 건설업계에서 담합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전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여러 차례 입찰 제도 개선을 통해 예전과 같은 담합은 줄어들었지만, 이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담합 적발 시 더 큰 과징금을 부과하는 강경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