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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비바람 속 18시간 기다려 청약한 까닭

    입력 : 2017.04.19 19:09 | 수정 : 2017.04.19 19:56

    분양권 거래 금지·청약 자격 강화
    11·3 대책에 숨죽였던 뭉칫돈
    재당첨 제한 규제서 자유로운
    오피스텔 등에 한꺼번에 몰려
    전매제한 풀린 지역 분양권도
    수천만원 웃돈 붙어 팔려나가

    18일 밤 경기 광교신도시 내 ‘광교컨벤션 꿈에그린’ 청약 현장. 네 줄의 대기 행렬이 모델하우스 외벽을 한 바퀴 빙 둘러싼 뒤에도 500m 이상 이어졌다. 오후를 빗속에서 보낸 대기자들은 밤이 되자 겨울용 패딩 잠바나 담요로 몸을 감쌌다. 낚시용 또는 목욕탕용 의자도 보였다. 용인에서 온 정찬길(69)씨는 “당첨되면 살고 싶은 마음 반, 팔고 싶은 마음 반”이라며 “곧바로 2000만~3000만원은 웃돈이 붙는다고 들었다”고 했다.

    여기저기서 “잠깐 밥 먹으러 다녀왔을 뿐 이 자리는 원래 내 것”이라는 승강이가 벌어졌다. 인접 4차선 도로는 접수 희망자가 주차해둔 차, 줄 선 가족과 교대하러 온 차, 지나가던 차가 뒤엉켰다. 곳곳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이날 밤 10시 30분쯤엔 모델하우스 안에서 중년 여성 5명이 다른 사람 명의로 여러 번 청약하려다 적발돼 쫓겨나기도 했다. 이런 소동은 밤새 이어졌고, 청약은 다음 날 오전 11시 무렵 끝이 났다. 최장 대기 시간은 18시간이었다.

    이번 소동의 직접적인 원인은 건설사가 인터넷 대신 현장 청약 접수를 택한 데 있다. 홍보 효과를 노리고 일부러 ‘줄을 세웠다’는 비판도 나왔다. 한화건설 측은 오히려 “투기 수요를 배제하고 실수요자를 받기 위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근본 원인은 이 단지가 정부 규제를 받지 않아 단기 투자가 가능한 ‘오피스텔’이라는 점이라는 게 일반적 해석이다. 작년 11·3 부동산 대책 이후 얼어붙었던 부동산 시장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풍선 효과’가 본격화하고 있는 것. 정부가 11·3 대책을 통해 서울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과 경기 과천·동탄2신도시, 세종시 등 지역에 대해 입주 때까지 분양권 거래를 금지하고, 청약 자격을 강화하는 등 규제를 가하자, 이를 피할 수 있는 지역과 물건으로 시중 유동자금이 급속히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회복세, 그러나 되는 지역·상품에만

    최근 부동산 시장은 지표상 회복 조짐은 완연하다. 국토연구원은 “3월 전국 주택매매시장 소비심리지수가 전월 대비 2.9포인트 오른 120.1포인트를 기록했다”고 19일 밝혔다. 소비심리지수 115~200은 ‘상승 국면’으로 분류한다. 호황이던 작년 4~5월이 120포인트 안팎이었다. 수도권은 지난달 123.5포인트까지 올랐다.

    시장 온기(溫氣)는 정부 규제의 사각(死角)지대를 철저히 찾아다녔다. 대표적으로 ‘광교컨벤션 꿈에그린’처럼 ‘청약 통장 재(再)당첨 제한’ 규정에서 자유로운 오피스텔이다. ‘광교컨벤션 꿈에그린’은 19일 집계 결과, 오피스텔 746실(室)에 6만4749명이 청약, 경쟁률이 87대 1이었다. 현장 관계자는 “지방에서 온 청약자도 많았다”고 전했다.

    청약 시장에서도 11·3 대책의 분양권 전매 제한이 강하게 걸리지 않은 지역이 압도적인 성적을 냈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가 금융결제원 자료를 토대로 올해 1분기 청약경쟁률 상위 10개 단지를 뽑은 결과, 4곳이 부산, 3곳이 평택 고덕신도시였다. 1위는 지난달 부산 부산진구 연지동에서 분양한 ‘연지 꿈에그린’이었다. 481가구에 10만9805명이 몰려, 평균 228대 1의 경쟁률이었다. 경기 평택에서 지난 5일 분양한 ‘평택고덕신도시 제일풍경채’ 아파트도 1순위 모집에 6만5003명의 청약자가 몰리며 평균 8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1순위 자격 제한 등의 규제가 없어, 수개월간 투자처를 찾지 못했던 투자자들이 전국적으로 대거 몰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분양권 거래량, 작년 10월 수준 넘어서

    서울 분양권 시장도 급격히 달아오르고 있다. 현재 거래할 수 있는 분양권은 11·3대책 분양권 전매 제한을 피할 수 있고, 잔금 분할 상환 등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각종 금융 규제도 적용받지 않는다.

    서울 시내 아파트 분양권 하루 평균 거래량은 작년 10월 30건에서 올해 1월에는 17건까지 떨어졌지만, 이후 서서히 반등했고, 최근엔 24건(3월)è32건(4월)으로 급등하며 작년 10월 수준을 넘어섰다. 가격도 급등세다. 11·3 이전 마지막 분양해 지난 18일 전매제한이 해제된 서울 강동구 고덕그라시움의 경우 웃돈이 최대 7000만원을 넘어섰다.

    불법도 만연하고 있다. 고덕신도시 주요 모델하우스 주변에는 ‘떴다방’(분양권 알선업자)이 대낮에도 ‘암(暗)시장’을 열고 있다. 전매 제한 기간이 1년이지만, 이 시장에서는 최대 4000만원 웃돈에 분양권이 팔린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투기성 자금은 항상 규제가 약한 곳을 찾아다니기 때문에 정부 규제도 신속하면서 정교하게 이뤄져야 효과가 있다”며 “전체 부동산 경기를 급랭시키지 않으면서도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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