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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강남대로 골목 '임대료 인상의 저주'

    입력 : 2016.04.19 21:22 | 수정 : 2016.04.19 23:02

    지난 6일 명동 거리. 중심가(왼쪽 사진)에는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지만 작은 골목(오른쪽 사진)에는 사람의 발길이 뜸하고 건물 일부가 비어 있다. 최근 유동인구가 많고 상가 임대료가 전국에서 1, 2위로 비싼 명동과 강남대로에서 중앙로에는 대형 매장이 앞다퉈 들어서지만 골목 상권에는 빈 점포가 생기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김연정 객원기자

    19일 오후 서울 지하철 4호선 명동역 6번 출구 인근 대로변인 명동8나길. 국내 최대 상권인 명동에서도 노른자로 꼽히는 지역이다. 작년 12월 문을 연 네이버의 캐릭터 브랜드숍 ‘라인 프렌즈 스토어’ 앞에는 대형 캐릭터 인형과 사진을 찍기 위해 10여 명이 줄을 서 있었다. 맞은편 ‘아이오페’ 화장품 매장도 중국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걸어서 1분 거리도 안 되는 이면도로인 명동4길에 들어서자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패션·액세서리 매장으로 운영되던 4층짜리 유리 건물은 통째로 비어 있었다. 인근 공인 중개사무소 관계자는 “보증금 10억원에 월세가 1억원이 넘는데 들어오려는 임차인이 있겠느냐”고 혀를 찼다. 또 다른 4층짜리 빌딩에는 ‘건물 전체 임대 문의’라는 현수막이 나붙었다. 옆 건물도 임차인을 못 구해 내부에 먼지만 잔뜩 쌓여 있었다.

    같은 시각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인근 상권도 비슷했다. 강남대로변에는 패션·신발·화장품 중심으로 대형 브랜드 매장이 성업 중이었다. 하지만 금강제화 빌딩 뒤쪽 먹자골목의 빌딩 외벽에는 ‘2층, 3층 임대’ ‘8층 임대’ 등 임차인을 찾는 현수막과 입간판이 내걸렸다.

    국내 상권 ‘빅2’로 꼽히는 서울 명동과 강남대로 상권에 공실(空室)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명동 상가 공실률(3층 이상 중대형 매장 기준)은 지난해 3분기 5.6%에서 4분기 10.4%로 배 가까이 치솟았다. 2013년 이후 가장 높다. 강남대로변도 작년 4분기 4.2%로 2014년 3분기 이후 최고 수준이다.

    중심 상권에 매장을 내기 위한 대형 패션·화장품 업체 간 물밑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로변은 물론 골목까지 임대료가 동반 폭등한 게 원인이다. 3~4년 전부터 중국인 관광객 등이 몰리면서 자금력을 앞세운 대기업들은 브랜드 홍보 차원에서 이른바 플래그십 스토어(대표 매장) 등을 중심 상권에 내기 위해 입점 경쟁을 벌이고 있다. 명동코리아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명동이 중국인 관광 명소로 떠오르면서 점포를 구하는 이들도 중국인 관광객을 타깃으로 한 화장품과 패션 업체들이 많다”며 “임대료는 상관없으니 명동 중앙로 쪽에 매물이 나오면 알려달라는 업체들이 줄을 서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일부 대기업도 중심가에서 밀려나고 있다. 강남대로변에서2007년부터 영업했던 ‘파리바게뜨 강남점’은 작년 말 재계약을 앞두고 월세가 7000만원에서 최근 1억4000만원으로 뛰자 대로변에서 철수하고 인근 이면도로 쪽으로 이전했다. 강남대로변에서는 임대료가 치솟자 제과점, 카페 등 식음료 매장이 있던 자리를 객단가가 높은 화장품, 신발, 의류 매장이 잇따라 점령하고 있다. 강남역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대형 매장들이 실제로는 이윤을 내지 못해도 브랜드 홍보 전략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높은 임대료를 내고 들어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DB

    문제는 주로 개인이 식당이나 소규모 업체를 운영하는 골목 상권의 임대료도 덩달아 뛰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진 셈이다. 부동산 정보 업체 에프알인베스트먼트에 따르면, 지난 2년 사이 명동 중앙로(명동8길)의 평균 임대료는 2% 올랐지만, 골목 상권인 명동4길과 10길 임대료 상승 폭은 22%에 달했다. 같은 기간 강남대로 골목 상권 임대료도11.5% 올라 대로변(15.6%) 못지않았다.

    골목 상권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기 불황의 직격탄까지 맞았다. 강남대로 인근 S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기업들은 매출이 저조해도 견딜 수 있지만, 영세 상인들은 영업 수익이 줄면서 권리금이라도 받고 나가길 원하는 이가 많다”고 말했다. 불황 때문에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따지는 손님이 많아졌고, 인근 상가와 경쟁을 견디다 못해 가게를 접는 경우도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물을 통째로 임대하는 ‘통임대’ 확산도 원인이다. 안민석 에프알인베스트먼트 연구원은 “명동과 강남대로 건물주들은 자산이 많아 공실이 있어도 임대료를 낮추지 않는다”면서 “최근에는 골목 상권까지 통임대로 계약하려는 건물주가 늘어나면서 공실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오래가면 상권이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대로변은 대기업의 간판 거리로만 채워지고 골목은 빈 점포가 계속 방치되면 상권 전반이 개성과 활력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준석 신한은행 PWM프리빌리지 서울센터장은 “압구정 로데오 상권도 과거 인기를 끌면서 내로라하는 법인들이 매장을 냈지만 임대료가 오르면서 골목부터 상권이 가라앉고 결국에는 대로변 건물 매매가격까지 내려앉았다”며 “건물주들이 높은 임대료만 고수하다 상권이 침체되면 부동산 가격 하락이란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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