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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상] 이젠 오피스 건물로… '108年 시네마 천국'이 사라진다

    입력 : 2015.04.21 03:04 | 수정 : 2015.04.21 06:46

    [最古영화관 단성사 매입한 영안모자 "사무용으로 쓸 것"]

    1926년 나운규 '아리랑' 개봉, 1977년 '겨울여자'땐 장사진, '서편제'땐 194일 최장 상영
    부도후 7년 정상화 작업 실패, 575억에 경매… 역사속으로

    단성사.
    '아리랑', '겨울여자', '장군의 아들', '서편제'….

    국내 대표 영화들이 개봉됐던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영화관인 단성사가 새 주인을 찾았다. 하지만 108년 역사를 지닌 영화관으로서의 생명은 끝났다.

    멀티플렉스의 등장으로 경영난을 겪은 단성사는 지난 2008년 부도 처리됐다. 서울 종로3가의 단성사 건물은 그동안 새 주인을 찾지 못했으나, 지난달 중순 7곳의 기업이 참여한 가운데 575억원의 금액에 낙찰됐다. 새 주인은 모자 전문기업인 영안모자인 것으로 확인됐다. 예금보험공사 관계자는 20일 "버스 판매를 주력으로 하는 영안모자의 계열사 '자일오토마트'에 단성사 건물이 최종 매각됐다"고 밝혔다. 예보와 채권은행들에 따르면, 지상 10층, 지하 3층(1만3413㎡)의 단성사 건물은 영안모자 계열사 자일오토마트의 사무 공간 등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영화 흥행의 산실(産室)

    단성사는 종로와 동대문 일대 상인들의 자금을 십시일반 모아 주식회사 형태로 만든 영화사로, 최초에 2층짜리 목조건물로 지어 1907년 문을 열었다. 이후 1910년대 중반 영화 제작자인 박승필씨가 인수했다. 나운규 감독의 '아리랑'이 1926년 단성사에서 최초로 상영됐다. 김종원 영화평론가는 "단성사(團成社)란 이름은 당시 조선인들이 '집단이 되어 하나로 힘을 합치자'는 의미에서 지어진 것"이라며 "박승필씨가 사망한 이후에 조카인 박정현씨가 경영권을 물려받았고, 해방 이후에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고 말했다.

    해방 이후에는 단성사 전성시대가 열렸다. 피카디리, 중앙극장, 명보극장이 이후 생겨났지만, 국내에서 흥행하는 영화들은 거의 단성사에서 먼저 개봉하고 서대문·영등포 등 나머지 영화관에서 재개봉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여겨졌다. 1977년 개봉한 '겨울여자' 등이 히트를 치면서, 단성사 앞에는 영화 상영 3~4시간 전에 표를 구하려는 관객들로 장사진을 쳤다. 정재형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은 "당시 대학생들은 수업이 끝나면 단성사로 모여 영화를 감상하고 인근 학사주점에서 술 한잔 기울이는 것이 문화 코드였다"고 말했다. 암표 장사꾼들은 단성사 앞에 줄 서 있는 관객들을 상대로 500원짜리 영화 티켓을 2~3배씩 비싸게 팔았다. 영화 흥행이 잘된 영화사는 입장객들에게 '만원사례'라고 적힌 봉투에 영화 표값보다 많은 금액인 1000원씩 담아 나눠주는 '단발성 이벤트'도 벌였다. 1993년 '서편제'가 단성사에서 개봉하면서 국내 영화 최초로 100만 관객 시대를 열었고, 194일이라는 개봉관 최장 상영 기록을 세웠다.

    1907년 문을 연 서울 종로의 극장 단성사가 생을 마감한다. 왼쪽 사진부터 196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 주연 서부극 '평원아'를 상영했을 때의 모습, 1993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의 한국 영화 사상 최다 관객 동원 축하 행사, 리모델링 공사가 중단된 상태인 현재 단성사 건물 모습.
    1960년대… 1993년 서편제… 그리고 지금 - 1907년 문을 연 서울 종로의 극장 단성사가 생을 마감한다. 왼쪽 사진부터 196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 주연 서부극 '평원아'를 상영했을 때의 모습, 1993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의 한국 영화 사상 최다 관객 동원 축하 행사, 리모델링 공사가 중단된 상태인 현재 단성사 건물 모습. /조선일보DB·성형주 기자
    ◇멀티플렉스 등장 이후 부도

    단성사의 몰락은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등장으로 시작됐다. 단성사는 시대 변화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1개이던 상영관을 더 늘리기 위해 2005년 현재 10층짜리 건물을 지었으나, 임대 분양이 잘 안 돼 2008년 부도가 났다. 이후 충남 지역에서 사무용품 사업을 하던 이상용씨가 350억원의 채무를 떠안는 조건으로 건물을 인수하면서 상호를 아산엠단성사라고 변경했다. 그는 건물 인수 이후 2009년까지 영화관을 운영하다 2010년 1월 영화관 시설을 허물고 11개 저축은행으로부터 600여억원의 대출을 받고 보석상가들이 입주하는 쥬얼리센터 건립을 추진했다. 그러나 세금 미납, 서울시의 쥬얼리센터 건립허가 취소 등의 문제가 겹치면서 임대 분양에 실패했다. 그 사이 미래·한국저축은행 등 6개 저축은행이 파산하면서 예보가 저축은행들의 채권을 관리하게 됐다. 아산엠단성사는 2013년 6월 채권단에 "공사비 등에 필요한 100억원을 자진 납부하겠으니 경매를 취하해달라"고 했지만, 결국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서 채권단은 지난해 8월 경매에 돌입했다. 당초 단성사 건물 감정가는 1200억원이지만, 건물 가치가 하락하면서 575억원에 낙찰됐다. 현재 단성사 건물은 외벽 공사만 되어 있고, 인테리어 공사는 중단된 채 곳곳에 건축자재가 쌓여 있는 상태다. 예보 관계자는 "장기간 흉물로 방치된 단성사 건물이 새 주인을 찾으면서 종로3가 일대에 활력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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