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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포커스] '행복 주택'의 눈물

    입력 : 2013.11.08 03:09

    [박근혜 정부의 서민 주거정책 '행복 주택' 첫삽도 못떠]

    -행복주택에 불행한 예감이…
    오류·가좌 두 지역 제외하고는 주민 반대로 시범지구 지정 못해

    -처음부터 계산 잘못됐나
    철길 위에 인공대지 씌우는 공법, 건축비 민간아파트의 4배 추정… 코레일에 토지 사용료도 내야
    오류지구, 50년간 1500억 부담… 현재 땅값 1200억보다 비싸

    전문가들 "원점에서 재검토 필요"

    7일 서울 구로구에 있는 지하철 1호선 오류동역. 전철에서 내리자 길게 뻗은 철길 사이로 소형 아파트 단지와 연립주택, 오피스텔이 듬성듬성 보였다. 이곳은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 서민 주거 정책인 '행복 주택' 1500가구가 들어설 지역이다. 하지만 대규모 공사가 준비되는 분위기는 전혀 없었다. '행복주택 최대 수혜지'라는 현수막을 내건 L부동산중개소 직원은 "동네를 반 토막으로 끊어 놓은 철길 위에 집과 공원을 짓는다고 해서 반가웠다"며 "하지만 굴착기 소리는커녕 언제쯤 착공한다는 소식도 들을 수 없다"고 말했다.

    행복 주택이 표류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5월 7개 시범지구 후보지(서울 오류동·가좌·공릉동·목동·잠실·송파지구, 경기 안산 고잔지구)를 발표하면서 연내 착공을 약속했지만, 아직 한 곳도 첫 삽을 못 뜨고 있다. 오류동·가좌지구를 제외한 나머지 5곳은 주민들의 강한 반대로 시범지구 지정조차 못했다. 오류동·가좌지구도 아직 사업 계획이 확정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의 공약인‘행복주택’이 들어설 서울 구로구 오류동역 부지.
    박근혜 정부의 공약인‘행복주택’이 들어설 서울 구로구 오류동역 부지. 지난 5월 국토교통부가 시범 사업 후보지로 발표할 당시만 해도 연내에 공사를 시작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건축비·토지사용료 등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빨라도 내년 중순은 돼야 착공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진한 기자
    행복 주택 사업이 이처럼 지지부진한 것은 당초 계획보다 건축비와 토지비 부담이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역 주민의 반발도 발목을 잡고 있다.

    싼 임대료, 도심 출퇴근도 수월

    행복 주택은 도심 철도 부지와 유수지(빗물을 임시 저장하는 곳) 위에 인공 대지(데크·Deck)를 만들고 그 위에 임대주택을 짓는 사업이다. 국가 소유 땅을 이용하기 때문에 택지 조성비가 거의 들지 않아 임대료를 주변 시세의 절반이나 3분의 1 수준으로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국토교통부는 예상했다. 또 저소득층을 수도권 외곽으로 내몰지 않고 역세권에 살게 해 출퇴근 시간을 줄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국토부는 행복 주택 20만 가구를 향후 5년간 저소득층과 대학생, 신혼부부 등에게 공급한다는 계획을 잡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장밋빛 청사진과 달리 사업 발표 직후부터 현실적인 문제들이 튀어나왔다. 국토부가 시범지구 후보지를 발표하자 주민들의 반발이 쏟아졌다.

    일반 아파트보다 비싼 건축비

    국토부는 반대 여론이 그나마 적은 오류동·가좌지구부터 시범지구로 확정, 올해 안에 착공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두 곳마저도 제동이 걸렸다. 현재 사업 시행자인 LH가 구상한 대로 짓는다면 건축비가 일반 아파트보다 훨씬 많이 들어가는 것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박수현 의원은 오류동·가좌지구 행복 주택 건축비가 3.3㎡당 1670만~1700만원으로 추산된다고 주장했다. 일반 민간 아파트 건축비(3.3㎡당 400만원)의 4배가 넘는 수준이다. 건축비가 대폭 늘어나는 것은 철길 위에 상자를 덮는 것처럼 인공 대지를 씌우고, 그 위에 건물을 지어야 하는 공법 때문이다. 오류동지구에 들어갈 공사비(2855억원)의 약 40%가 인공 대지 설치비다. 주택 건축도 일반 주택보다 안정성이 더 뛰어난 '라멘(Rahmen) 구조' 방식을 택하면 골조 공사비가 20% 이상 올라간다. LH는 이에 대해 "일반 주택 구조 형태로 짓거나 공사 면적을 줄이는 방법으로 비용을 줄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토지 사용료 부담도 적지 않아

    땅값 부담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예상도 빗나갔다. 철도 유휴 부지를 사용할 경우 코레일에 토지 점용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임대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철도위에 건설되는 행복주택 단면도. 행복주택 시범 지구 사업 계획.
    코레일은 토지 점용료로 공시지가의 약 2.5%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대로라면 LH는 오류동지구 공시지가(1200억원)의 2.5%에 해당하는 30억원을 매년 코레일에 내야 한다. 50년 납부를 기준으로 한 토지 사용료는 모두 1500억원으로 현재 땅값(1200억원)보다 더 많다. 민주당 박기춘 의원은 "오류동지구 행복 주택 세입자 1500가구가 토지 사용료를 분담한다고 가정하면 가구당 매달 16만원씩 내야 한다"며 "철도 부지가 준(準)주거용지로 용도가 바뀌면 공시지가가 올라 부담이 더 커질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지역 주민들도 거세게 반발

    지역 주민 반발도 거세다. 서울 양천구 목동지구 후보지에는 '행복 주택 결사반대'라고 적힌 현수막과 함께 컨테이너 박스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정부의 행복 주택 발표 후 만들어진 '주민 비상대책위원회' 사무실이다.

    신정호 비대위원장은 "목1동은 전국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곳인데 2800가구를 더 짓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했다. 안산 고잔지구에서는 안산시의회가 행복 주택 특위를 구성했고, 송파지구에서도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반대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약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 원점에서 다양한 개념의 임대주택을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한다. 도심 곳곳에 들어선 도시형 생활 주택이나 다가구 주택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부동산114' 함영진 센터장은 "행복 주택에 투입할 예산으로 내년부터 저소득층에 매달 30만원까지 지원하는 주택 바우처 대상을 확대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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