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12.24 03:06
[아파트 건설사 주거 문화 마케팅]
불황 장기화, 수요자 위주 시장 돼
분양하면 끝났던 과거와 달리 주거 품질 높이는 데 주력
단지 내 영어마을·도서관 등 커뮤니티 시설에 많은 공들여
"입주 촉진용 반짝 서비스" 지적도
지난 11월 대우건설은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주거 문화를 만들어주는 '라이프 프리미엄' 상품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출시했다. 지금까지 건설사는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는 역할만 했었다. 하지만 입주민이 아파트에서 원하는 프로그램을 고르고 내부 시설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텃밭 가꾸기, 어린이를 위한 안전교육, 요가나 생활체육교실 등 입주자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정해 건설사가 강사 섭외 등 초기 운영을 맡고 비용도 일부 부담한다. 입주 후 일정 시기가 지나면 아파트 주민이 스스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노하우를 알려줘 주민 자치가 가능하게 해주는 방식이다.
건설업계 마케팅의 초점이 입주자들에게 주거 문화를 서비스하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다. 건설사는 그동안 아파트를 지어서 팔기만 하는 공급 위주의 마케팅만 펼쳤지만, 이제는 수요자 관점에서 주거 품질을 높이는 데 주력하게 된 것이다. 불황 장기화로 집값 상승 기대감이 줄면서 투자자가 아닌 실수요자가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
주거 문화 마케팅이 가장 많이 반영되고 있는 곳은 아파트 커뮤니티 시설이다. 과거에는 부녀회나 반상회 정도에 그쳤던 아파트 커뮤니티 문화가 이제는 취미 생활, 건강, 육아, 자녀 교육 등 다양한 그룹 활동으로 확대되고 있다. 아파트 구매에 영향을 미치는 주부들의 입김이 크다는 점에서 커뮤니티 시설에 공을 들이는 건설사가 크게 늘었다.
반도건설 관계자는 "실수요자가 늘어나고 소비자들의 주거 품질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지면서 이 집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지가 아파트를 선택하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공원 같은 아파트를 꾸미기 위해 조경에 상당히 공을 들이는 건설사도 많다. 지난 6월 말 입주를 시작한 부산 북구 화명동의 롯데건설 '화명 롯데캐슬카이저'는 단지 전체에서 녹지가 차지하는 비율을 41%까지 끌어올렸다. 1만1000그루가 넘는 교목과 100만그루 가까이 되는 관목을 심어 수목원 같은 단지를 만들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입주율을 높이기 위해 화려한 서비스를 내놓는 경우도 나왔다. 아파트 값을 깎아주는 것보다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면 입주민 혜택은 물론 건설사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GS건설이 서울 마포구에서 공급한 주상복합 아파트 '메세나폴리스'의 경우 올해 초 입주민 전원에게 연 500만원 상당의 요트 회원권을 2년간 지급하기로 했다. 입주를 앞두고 입주민들에게 청소와 빨래 등을 해주는 가사도우미 서비스, 주차를 대신 해주는 발레파킹 서비스, 골프·요가강습 서비스 등도 함께 제공했다. 2년간 무료로 제공되는 서비스 규모만 총 100억원이 넘는다.
소비자의 안목이 높아지면서 직접 아파트 설계나 커뮤니티 시설 조성에 참여하는 경우도 급증했다. 고객으로 이뤄진 평가단이나 자문단을 꾸리는 경우가 대표적. 동부건설이 운영 중인 주부자문단 '명가연 플러스'는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지켜볼 수 있도록 주부들의 전용 야외 커뮤니티 시설인 '맘스존'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내 인천의 '계양 센트레빌' 아파트에 설치하기도 했다. 현대건설의 경우 고객평가단 '힐스테이트 스타일러'가 제안한 세탁기 옆 별도 손빨래 공간 및 수납장, 욕조 측면 슬리퍼 건조대 공간 등을 실제 아파트에 도입했다.
건설사의 주거 문화 마케팅이 입주를 촉진하기 위한 단기적인 것에 그칠 수 있다는 점은 소비자가 주의해야 한다. 불리한 입지 등 단점을 가리기 위해 대형 커뮤니티 시설이나 다양한 프로그램을 내놓는 경우도 있다. 분양가가 올라가는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팀장은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주거 문화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주류로 자리 잡았다"며 "대규모 공급 시대가 지나가면서 주거 품질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어 건설사 주도로 다양한 주거 상품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