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6.28 03:08
[강남권 재건축 소형 비율 서울시, 사실상 30%로 상향]
강남·송파 넘어 강동구에도 적용
올 초 소형 비율 확정한 가락시영엔 "재조정해야 사업 승인" 권고하기도
20%에 맞춰 적용해 온 전례와 달리 수급 불균형 없앤다며 갑자기 높여
일부선 "시장 더 침체될 것" 비판도
서울 강남구 개포시영아파트 재건축안(案)이 27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 작년 11월 처음 상정된 이후 네 차례나 '퇴짜'를 맞은 끝에 겨우 승인된 것. 이 아파트는 그동안 새로 짓는 주택(2318가구)에서 소형(전용면적 60㎡ 이하)이 차지하는 비율을 22%로 고집했다. 이번에는 30.7%로 크게 높인 게 주효했다.
반면 개포주공 1단지 아파트의 재건축안은 지난 15일 도시계획위원회에 상정하지도 못한 채 심의가 보류됐다. 문제는 소형 비율이었다. 전체 주택(6518가구)의 22%를 제시했지만 서울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근 서울 강남권 재건축 시장의 최대 화두(話頭)는 '30% 룰(rule·기준)'이다. '30% 룰'이란 재건축단지의 소형 주택 건설비율을 전체 가구의 30%로 맞추라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20%만 지으면 됐다. 서울시는 30% 룰을 강남구 개포주공 2·3단지, 강동구 둔촌주공 등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의 사업 승인 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다. 대다수 재건축단지는 30% 룰을 적용하면 수익성이 낮아져 사업 추진이 어렵다고 주장한다. 가뜩이나 침체된 강남 재건축 시장에 소형 비율이란 '폭탄'까지 떨어진 셈이다.
◇소형 비율 30% 충족 못 하면 '퇴짜'
송파구 가락시영아파트는 최근 사업 승인을 앞두고 비상이 걸렸다. 서울시가 사업 승인 조건으로 당초 25%를 요구했던 소형 비율을 갑자기 30%까지 높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가락시영 재건축조합 측은 "서울시 요구에 맞추려면 소형 주택을 당초 계획(2292가구)보다 최소 455가구쯤 더 지어야 한다"며 "이미 25%로 합의했는데 주민 이주를 코앞에 두고 5%를 더 지으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개포주공에 이어 가락시영까지 30% 룰이 적용되자 소형 비율 20%로 사업을 추진했던 다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대부분은 고민에 빠졌다. 30% 룰이 앞으로 서울시가 재건축 계획안을 승인하는 기준이 됐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강동구 고덕시영아파트는 지난달 29일 중대형을 절반가량 줄이는 대신 소형 비율을 30%까지 늘려 재건축 심의를 통과했다. 이에 앞서 개포주공 2·3단지도 처음엔 소형 비율을 20% 선으로 계획했다가 서울시 요구에 따라 10%포인트를 높여 사업 승인을 받았다.
◇조례 제정 등 명확한 기준 만들어야
현행 서울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조례'에는 재건축은 전용면적 60㎡ 이하 규모 주택을 전체 가구 수의 20% 이상 건설해야 한다고 돼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 재건축 추진 단지는 소형 주택을 20%에 맞춰 공급해 왔다.
그러나 서울시는 20% 비율로 재건축을 진행할 경우 기존 강남 지역에 있던 소형 주택의 감소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30% 룰을 고집하고 있다. 개포주공 1~4단지와 개포시영, 가락시영, 둔촌주공 등 강남권의 대표적 저층 재건축 아파트의 소형 주택은 총 2만2000여가구에 달한다.
하지만 현재 재건축안대로라면 새로 짓는 아파트 중 소형 주택이 9000여가구로 급감한다. 강남권에서만 소형주택 1만3000여가구가 사라지는 것. 서울시는 "재건축 소형 공급 확대는 강남권의 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며 "재건축에 따른 대규모 이주로 전·월세 시장이 불안해지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서울시가 30% 룰을 의무화한 것은 아니다. 도시계획위원회의 권고사항으로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일선 재건축조합은 권고가 아닌 의무조항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재건축을 하려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해야 하는 만큼 단순한 권고가 아니라 반드시 따라야 하는 법과 같은 효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114' 임병철 팀장은 "조합으로서는 소형 비율이 30%라는 데 불만이 있겠지만 10년 이상 재건축을 기다렸고 사업이 지연될 경우 금융비용 등 새로운 피해가 예상된다"며 "재건축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서울시의 권고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시가 소형 주택 공급 확대를 무리하게 고집하면 침체된 주택 시장을 더 얼어붙게 하고 중장기적으로 주택 공급 부족이란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서울시가 재건축 사업 승인의 기준과 방침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정책의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민은행 박원갑 부동산수석팀장은 "현재로선 소형 주택 비율 등의 통과 기준이나 원칙이 명확하지 않은 만큼 재건축조합 측이 스스로 사업성 판단과 추진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며 "소형 비율 확대 필요성이 있다면 서울시가 무작정 요구만 할 게 아니라 조례 개정 등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