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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변한다] [2] 뼈대만 남기고 다 없앴다, 한옥 원룸

    입력 : 2012.01.18 03:03

    [건축가 서승모의 집]
    70년 넘은 한옥에 철 대문 달고 대청마루·벽·문 없애 한공간으로…
    마당도 방 높이와 비슷하게 개조, 나무 기둥·서까래·대들보는 남겨
    옛 건물 온기만은 그대로 담은 집

    서승모씨.
    '서촌(西村)'으로 불리는 지역 중 하나인 서울 창성동의 한 막다른 골목길. 작은 한옥들이 서까래를 내밀고 나란히 섰다. 이 가운데 육중한 순백색 철문이 달린 집이 눈에 들어온다. 한옥에 철 대문이라니. 한옥 대문은 나무문이라는 고정관념을 입구에서부터 깨뜨린 집이다. 건축가 서승모(41·사무소 효자동 대표)씨가 사는 곳이다. 70년 넘은 오래된 한옥을 '재활용'해 자기만의 새로운 집을 만들어냈다.

    이 집은 여느 한옥과는 다르다. 옛모습을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강박을 버렸기 때문이다. 16일 이곳에서 만난 서씨는 "21세기에 사는 우리가 전통 한옥의 생활 방식을 꼭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현대적이고 창의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한옥에 대한 고정관념에 도전했다. 일단 한옥 하면 떠오르는 대청마루가 없다. 대신 실내 바닥에 돌을 깔았다. 서씨는 "대청마루가 있을 때는 마루 밑 흙이 머금은 습기가 집 안으로 퍼졌다"며 "흙 위에 콘크리트를 덮어 습기 문제를 해결했다"고 했다.

    한옥 구성에서 중요한 요소인 마당도 과감히 바꿨다. 마당을 원래보다 30㎝ 정도 높여 실내와 비슷한 높이로 만들었다. 그는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기도 편하고 실내와 마당이 이어진 느낌이 나서 집이 덜 좁아 보인다"고 했다. "'마당 깊은 집'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한옥은 마당과 마루의 높이가 달라 댓돌을 딛고 오르내리려면 불편할 수 있어요."

    서승모씨의 집 거실 부분. 옛 한옥의 기둥과 보, 서까래 같은 구조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대청마루나 장판 대신 실내 바닥에 돌을 깔았다. 바닥에 열선을 넣고 보일러로 온돌처럼 난방한다. /사진가 진효숙
    원래의 한옥은 'ㄷ자' 집이었다. ㄷ자의 터진 부분을 가로막은 담장 위에는 경사진 지붕 모양의 구조물을 올렸다.(붉은 점선 안) "건너편 다세대주택에서 집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게 한 것"이라고 했다.

    이 집은 '한옥 원룸'이다. 화장실을 제외한 모든 내부 공간이 하나로 트여 있다. 그는 "원래는 방 3개와 대청, 부엌 등이 나뉘어 있었다"며 "공간을 나누던 벽과 문을 모두 생략했다"고 했다. "넓게 트인 개방감을 원했는데 그런 느낌을 내기엔 집이 좁았다. 가구가 큰 편이어서 작은 방에 넣어놓으니 어색해 보이기도 했다." 이미 짜인 집의 구조에 사용자가 맞춰 가며 사는 게 아니라 취향에 따라 공간을 재구성한 셈이다.

    서씨의 집을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개축한 뒤에도 ㄷ자 모양의 지붕은 그대로 남아 있다.(위) 실내와 이어진 느낌이 나도록 원래 한옥의 마당을 높이고 유리문으로 실내와 구분했다. /사진가 진효숙

    벽과 문을 없애는 대신 집의 뼈대는 남겼다. 한옥의 나무 기둥이 그대로 서 있다. 대청마루 자리였던 거실에는 서까래와 대들보 같은 지붕 구조가 드러난다. "나무 기둥을 보면 약간 휘기도 했고 옹이도 있어요. 이렇게 그 자리에 있던 옛 건물의 느낌과 온기를 남겨 두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서씨는 "지금 이런 식으로 한옥을 고친다면 7000만~8000만원 정도가 들어갈 것 같다"고 했다.

    서씨는 일본 유학을 갔다가 귀국한 2004년에 이 집을 샀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한옥 가격이 비싸지 않아 예산 안에서 구할 수 있는 집을 찾고 보니 한옥이었다"고 했다. 마당까지 약 79㎡(24평), 건물만 66㎡(20평). 한옥을 고쳐 처음엔 작업실로 썼다.

    2010년 새 사무실을 내면서 이 한옥을 집으로 바꿨다. "어렸을 때 단독주택에 살았는데 도둑이 든 뒤로는 아파트에서만 살았어요. 주택에 살고 싶다는 소망이 간절했어요."

    그의 집을 사이에 두고 오래된 한옥 2채가 서 있다. 그는 "언젠가 여유가 된다면 한 채를 더 사서 집을 확장해보고 싶다"고 했다. "부부가 살기엔 지금도 충분하지만 식구가 늘어나면 좀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하겠죠. 옆집까지 합쳐서 늘리면 재미있는 집이 될 것 같아요." 그는 "집은 자기의 생활과 상황에 맞는 공간이어야 한다"며 "무조건 비싼 것보다는 몸에 맞는 옷을 골라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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