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9.27 03:01
국제 금융시장 불안으로 원·달러 환율이 치솟고 주가가 급락하자 그동안 살얼음판을 걸어왔던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도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IMF 악몽'을 떠올리며 폭락론마저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아직 국내 주택 시장에 급격한 위험 징후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사실 지난 금융 위기 때마다 국내 집값은 어김없이 출렁거렸다. 외환 위기 때인 1997년 말부터 이듬해 6월까지 6개월여 동안 전국 집값은 20% 가까이 하락했다. 2008년 리먼 사태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 위기 때도 8월부터 연말까지 집값은 평균 5% 안팎 빠졌다.
그러나 이번 미국발 금융 위기에도 주택 시장은 비교적 안정된 모습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전국 집값은 미국 신용등급이 강등된 지난달 5일 이후에도 주간(週間) 단위 변동률이 0~0.01%로 변화가 없다. 작년 말부터 강세를 보여온 지방 집값은 미미하지만 소폭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도 떨어지고는 있지만 낙폭은 크지 않다.
다만 투기적 성향이 강한 서울 강남 일대의 10억원 이상 고가(高價) 재건축 아파트는 금융 위기 영향을 받고 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시영아파트(63㎡)의 호가는 9억5000만원으로 한 달 전보다 1000만~2000만원쯤 내렸다. 지난 5월 11억8000만원에 팔렸던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 5단지(110㎡)는 최근 10억4500만원까지 하락했다. 부동산114 김규정 본부장은 "재건축은 주식과 비슷해 경제 변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면서도 "아직 급락 여부를 판단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택 시장 지표인 미분양 아파트는 지난달 말 기준으로 5년 만에 처음 7만가구 이하로 줄었고 아파트 거래량도 작년보다 40% 이상 늘어나는 등 오히려 작년보다 나아졌다.
국내 주택 시장이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펀더멘털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국내 집값은 리먼 사태가 터지기 이전인 2008년 초부터 시작해 3년 넘게 하향 조정을 거치고 있다. 두 번 위기를 겪으면서 주택 시장 참여자들이 '학습 효과'를 경험한 것도 원인이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리먼 사태 당시 대공황 공포까지 엄습했지만 결국 우리나라는 큰 영향이 없었다는 점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주택 시장의 매수 기반이 크게 약화돼 금융 위기가 장기화되면 위기가 찾아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재룡 수석연구원은 "최근 전세금이 급등해도 집을 안 사겠다는 분위기가 강하다"면서 "매수 기반이 위축된 상황에서 금리가 오른다면 매물이 쏟아져 가격 하락폭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