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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시세 실종

    입력 : 2011.05.24 03:36

    바짝 말라가는 부동산 시장… 서울 5월 한달 거래량이 고작 474건
    "6억원 호가했던 아파트 4억5000만원까지 내려도 전화 한 통화 없어5000만원 더 내렸더니 성사… 특단의 대책 나와야 주저앉은 시장 살릴 것"
    입지 좋은 새 아파트 분양만 활기

    "시세는 의미가 없어요. 팔리지도 않는데…."

    대기업 임원인 김정복(가명)씨는 최근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의 181㎡형 아파트를 석 달여 만에 겨우 팔았다. 이 아파트의 현재 공식 시세는 16억원 안팎이다. 하지만 그는 2억원 가까이 낮은 14억2000만원에 매매했다. 김씨는 "처음엔 16억원에 내놓았는데 두 달 동안 아예 보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5000만원을 낮춰보았지만 매수자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이후 김씨는 1~2주일 단위로 3000만~5000만원씩 계속 호가(呼價)를 낮춘 끝에 14억3000만원에 사겠다는 수요자가 나타났다. 김씨는 "계약 당일 매수인이 1000만원을 더 깎아달라고 요구해서 어쩔 수 없이 들어줬다"고 말했다.

    최근 수도권 아파트 매매시장에서 시세가 실종됐다. 공식적인 시세는 존재하지만 워낙 거래가 없기 때문이다. 초저가 급매물이 아니면 팔리지 않는다. 서울 강북권과 경기도는 물론 서울 강남권에서도 거래가 없어 시세가 무의미한 지경이다. 부동산 공인중개사들도 "솔직히 얼마에 사고, 얼마에 팔아야 할지 우리도 모른다"고 말한다.

    꽁꽁 얼어붙은 아파트 거래

    한때 6억원을 호가했던 경기 평촌신도시의 인덕원 대림2차 109㎡형의 요즘 공식 시세는 4억5000만원 안팎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 가격에는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다. 3000만~5000만원 정도 싼 이른바 '초급매물'이 나와야 매수자의 입질이 있다. 삼성골드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사겠다는 사람이 부르는 게 값"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올 들어 네 번째로 지난 1일 부동산 거래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지만 시장에서는 반응이 거의 없다. 아파트 거래는 더 줄어드는 추세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이달 들어 23일까지 서울의 아파트 거래량(계약 기준)은 474건으로 전월(2484건)과 비교해 5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현재 추세라면 이달 말까지 1000건을 넘기도 힘겨울 전망이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2300여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한 지난해 '8·29대책' 이후 늘어나기 시작해 올 1월(7300여건) 최대치를 기록한 뒤 5개월 연속 줄어들고 있다. 닥터아파트 이영진 상무는 "계절적 비수기라는 점을 감안해도 상황이 심각하다"면서 "정부가 DTI 규제를 부활시키면서 내놓은 보완 대책이 약발을 받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건축도 곤두박질…분양은 활기

    연초 반짝 상승세를 탔던 재건축 시장도 힘을 잃었다. 서울 강남 개포지구 지구단위계획이 발표되고 개발 용적률이 상향 조정되는 등 호재가 많았지만 집값은 오히려 떨어졌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번지에 따르면 서울 강남·송파구 등 8개 구의 재건축 아파트 시가총액은 지난 2개월 동안 1조원 가까이 빠졌다. 강남·송파·강동구 등 강남권은 이 기간 동안 지역별로 2400억~2900억원씩 감소했다.

    강동구 고덕동 A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거래량이 너무 없어 임시 폐업 상태”라고 말했다. 둔촌동 D부동산사무소 관계자도 “요즘 재건축 아파트는 시세보다 2000만~3000만원쯤 싸야 매매가 이뤄진다”고 전했다.

    매매시장과 달리 새 아파트 분양 시장은 다소 활기를 찾는 모습이다. 지난 주말 문을 연 아파트 견본주택에는 모처럼 수만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대림산업의 ‘의왕 내손 e편한세상’ 모델하우스는 지난 20일부터 사흘 동안 5만여명의 관람객이 찾았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세종시에 짓는 첫마을 2단계 아파트 분양홍보관도 주차장이 가득 차고 홍보기념품이 바닥나는 등 연일 방문객으로 붐비고 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는 “최근 나오는 아파트는 그나마 건설사들이 가장 자신 있는 상품만 내놓아 소비자 관심을 끄는 것”이라며 “일부 지역을 빼면 분양 시장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수도권은 여전히 미분양 주택(2만7000가구)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말과 큰 차이가 없다.

    전문가들은 주택거래가 정상 궤도로 돌아오지 않으면 가을 이사철이 시작되는 8~9월 이후 전·월세가격이 다시 뛸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한 전문가는 “정부가 계속 어정쩡한 대책만 내놓으면서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면서 “미분양주택에 대한 양도소득세 감면이나 보금자리주택 전면 재검토 같은 파격적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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