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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도 못 고치고 8년째… 이젠 신물난다"

    입력 : 2011.04.20 03:03

    [뉴타운 정책 오락가락… 주민도 외면하는 애물단지로]
    주택경기 꺾이고 개발은 감감무소식, 건물 증축·보수 막아 곳곳 폐허로…
    보금자리주택 나오자 인기 더 떨어져

    19일 오전 서울 강서구 방화뉴타운 3구역. 김포공항 맞은편에 2~3층짜리 다세대주택으로 가득 찬 이곳에 들어가자 벽돌이나 시멘트가 부서져 나가거나 페인트가 벗겨진 집들이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이유는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뉴타운 개발을 앞두고 주민들이 8년째 주택보수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 "계속 시간만 끌지 말고 차라리 뉴타운 지정을 풀어주면 좋겠어." 신모(72) 할머니는 "뉴타운 개발 소식을 기다리다 물도 제대로 내려가지 않는 화장실도 고치지 못하고 있다"면서 "사업을 그대로 진행하는 건지 아닌지 도무지 알 수 없고 주민만 고생한다"고 답답해했다.

    너무 낡고 오래돼 아무도 살지 않는 노량진뉴타운의 한 주택 모습.
    서울 강남에 편중된 부동산 개발을 서울 전역으로 확산시켜 균형 있게 발전시키겠다는 뉴타운 사업이 10년째를 맞고 있다. 그러나 '장밋빛 환상'은 사라지고'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게다가 서울시가 지난 11일 뉴타운지구 내 장기간 사업이 이뤄지지 않은 51개 존치관리구역에 대해 주민들이 원할 경우 건축허가 제한을 풀겠다고 밝히면서 뉴타운 사업 '운명'에 대해 주민들은 더욱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뉴타운 정책 이제 믿을 수 없어"

    뉴타운 사업에 대한 인기가 급락한 주된 이유는 주택경기 침체에 따른 집값 하락으로 수익 감소와 비용 증가라는 '암초'를 만났기 때문이다. 주변 집값보다 저렴한 보금자리주택이 대거 공급된 것도 뉴타운 인기가 떨어지는 데 적지않은 역할을 했다.

    이처럼 뉴타운 사업이 좌초 위기에 놓이자 정치권은 용적률 상향 및 임대주택 건립비율 하향 조정, 기반시설 비용에 대한 재정 지원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주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서울시의 존치관리구역에 대해선 건축허가 제한을 사실상 뉴타운 해제로 받아들이는 모습도 보인다. 흑석동 H부동산중개사무소는 "재개발과 관련해 10명이면 10명, 모두 하는 말이 다르다"면서 "이미 조합이 설립되고 시공사를 선정한 구역도 사업이 백지화된다는 흉흉한 소문도 나돌 정도"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흑석뉴타운의 경우 서울시의 뉴타운 백지화 사태가 발생한 이후 거래가 뚝 끊기고 가격도 하락했다. 흑석동 K중개사무소는 "작년 가을에 3억원 정도 하던 다세대 주택(대지지분 33㎡ 기준) 가격이 2억원 중반에도 팔리지 않는다"며 "매물도 30여채나 쌓여 있다"고 말했다.

    노량진뉴타운의 한 세탁소 주인은 "공청회다 뭐다 많이들 열리지만 먹고 살기 바쁜 우리가 그런 거 들을 시간이 있겠느냐"며 "주민의견을 수렴한다고 하지만 결국 있는 사람들 뜻대로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차라리 뉴타운 대상지에서 풀어줬으면"

    이날 오후 지하철 2호선 신정네거리역 주변의 오르막길에는 자동차들이 어지럽게 주차돼 있었다. 재래시장 가게들이 골목 앞까지 나와 장사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걸어 다니기 힘들 정도로 복잡했다. 하지만 이곳은 신정뉴타운 사업 대상지. 사업착수는 역시 '미정'이다. 기존 주택에 대한 감정가와 새로 지어질 아파트 평형에 대한 조합원들 간 이견이 맞선 탓이다. J부동산공인 K사장은 "사업이 6년째 지지부진하다 보니 원주민이나 투자자들 모두 뉴타운 해제를 내심 바라는 눈치"라고 말했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뉴타운 개발 예정지에 2~3층짜리 다세대 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곳은 2003년 11월 2차 뉴타운 사업 지역으로 지정됐지만 수익성 부족 등으로 더딘 진척을 보이고 있다. /홍원상 기자

    중앙대 바로 옆 흑석뉴타운.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 '하숙' '원룸'이라고 적힌 3~4층짜리 다세대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하숙집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주민들이 많다 보니 이 구역은 서울시의 건축허가 제한 해제를 계기로 뉴타운 대상지에서 아예 해제되길 기대하는 분위다. 하숙집을 운영하는 이모(62)씨는 "아파트를 짓게 되면 앞으로 어떻게 하숙을 칠 수 있겠느냐"며 "개발이 돼도 자금 여력이 없는 원주민들은 다들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지부진한 사업으로 삶의 질만 나빠져

    문제는 뉴타운 사업이 지지부진하고 일정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뉴타운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質)이 더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동작구청 뒤편으로 개발이 예정돼 있는 노량진뉴타운. 미로처럼 복잡한 작은 골목을 따라 지어진 한 주택은 빗물을 막기 위해 지붕 위에 비닐 장판을 깔았다.

    노량진 H공인중개소 사장은 "뉴타운 개발을 기다리며 5년 넘게 살다가 집이 너무 낡아지자 3년 전쯤 집을 아예 비우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고 말했다. 닥터아파트 이영진 이사는 "뉴타운 사업 계획을 전면 철거 후 건립이라는 일괄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 실정에 맞게 다시 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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