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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복선전철 연결되자 '투기 광풍'… 기획부동산, 암벽까지 쪼개 판다

    입력 : 2011.03.28 03:07

    "골프장·리조트 들어선다" 1만원 땅 100배로 되팔아…
    대부분 보전녹지 해당돼 개발 사실상 불가능한 곳
    단기차익 노린 외지인들, 역사 주변 아파트 '사재기'
    "땅 살 땐 현장 찾아 개발 가능한지 확인해야"

    지난 15일 경춘선 강촌역 뒤쪽으로 500m쯤 걸어가자 몸을 똑바로 세우기도 힘들어 보이는 가파른 야산이 눈에 들어왔다. 이 산은 행정구역상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방곡리 ○○번지다. '△△인베스트먼트'라는 속칭 '기획부동산' 업체가 2006년부터 작년 11월까지 "경춘선이 뚫리면 골프장과 리조트가 들어설 지역"이라며 투자자 86명에게 330~660㎡(100~200평)씩 땅을 쪼개 팔았던 곳이다.

    그러나 이 땅은 전나무와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있고 길도 없어 사람이 걸어 올라갈 수도 없었다. 강촌역 인근 Y부동산중개업소 L사장은 "몇 년 전 서울 강남의 기획부동산 업자들이 경춘선 복선전철역과 서울~춘천고속도로 주요 진출로 주변 야산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며 "지금은 일반 투자자들에게 '골프장·리조트가 들어선다'며 3.3㎡(1평)당 1만원도 안 하는 땅을 100만원에 팔고 있다"고 말했다.

    춘천은 지난 1년 동안 땅값(표준지 공시지가) 상승률이 6.22%로 전국 1위를 기록할 정도로 부동산 시장이 들썩거리고 있다. 집값도 많이 올랐다. 이유는 서울로 가는 전철과 도로가 뚫렸기 때문이다. 2009년 7월 서울~춘천고속도로가 개통했고, 작년 12월엔 경춘선 복선전철이 완공돼 서울까지 1시간이면 닿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 틈을 이용해 부동산 투기 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는 것. 길을 내기도 힘든 야산의 땅값이 50~100배씩 급등해 거래되는가 하면 아파트 20~30채를 한 번에 구입하는 사재기 현상마저 벌어지고 있다.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강촌역 일대 야산. 기획부동산들은 최근 몇 년간 이 일대를 사들인 뒤 “골프장과 리조트가 들어선다”며 일반 투자자들을 모집해 공시지가의 100배 이상으로 쪼개 팔았다. 실제 팔린 지역에 가보니 경사가 가파르고 나무가 우거져 개발이 거의 불가능한 곳이었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개발 불가능한 땅도 '쪼개 팔기'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기획부동산인 H사. 수십 개의 상장과 감사패로 가득 찬 사무실에 들어가자 이 회사 상무는 '춘천에 골프장과 레저시설이 들어선다'고 적힌 홍보 자료를 탁자에 올려놨다. 그는 "춘천 땅은 이미 다 팔렸다. 하지만 1000만원을 선금으로 내면 다른 투자자가 계약한 땅을 대신 살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말했다.

    기획부동산이란 개발 호재가 있는 지역의 토지를 싼값에 사들인 뒤 일정 규모 단위로 쪼개 일반인에게 수십~수백 배의 웃돈을 붙여 되파는 업체다. 이들이 파는 땅은 개발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D사도 춘천 ○○리의 땅을 팔고 있었다. 상담 직원은 "땅이 다 팔렸지만, 어떻게든 구해보겠다. 3.3㎡당 70만~80만원이면 아직도 싼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땅의 공시지가는 3.3㎡당 6800원으로 100배 이상 비싸게 팔고 있었다. 이 지역은 '보전녹지'여서 개발도 거의 불가능하다.

    기획부동산의 토지 쪼개기 판매는 최근 급증하는 추세다. 춘천시에 따르면 2007년 560건이었던 토지분할(쪼개기) 허가 건수는 복선전철이 개통된 지난해 712건으로 27% 늘었다. 올 들어서도 두 달 만에 109건을 기록했다.

    미분양 아파트도 대량 구매

    경춘선 복선전철 역사(驛舍) 주변 아파트에도 '투기 열풍'이 불고 있다. 2009년 초만 해도 남춘천역과 가까운 한성아파트(79㎡)의 매매가는 7000만원 선. 그러나 작년 말 1억3000만원으로 2배쯤 올랐다. 2년 전 6000만원에 거래됐던 퇴계동 현대아파트도 같은 기간 1억2000만원으로 급등했다. 퇴계동 J부동산중개업소 사장은 "전철 개통 이후 서울·수도권 투자자들이 아파트를 집중적으로 사들이면서 집값이 뛰었다"며 "1명이 많게는 30채씩 아파트를 사들인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미분양 아파트를 공동투자 방식으로 통매입한 사례도 있다. R부동산 대표는 "작년 말 서울·분당에 사는 투자자 100여명을 모아 아파트 분양가를 30%쯤 할인해서 판 적도 있다"고 했다.

    투기 바람은 외지인이 부채질하고 있다. 지난해 춘천의 부동산 거래 건수 중 절반 이상(58.3%)은 춘천 이외 지역 거주자였다. 박미자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춘천지회장은 "외지인들은 결국 단기차익만 노린다"며 "정작 춘천의 실수요자는 가격이 급등해 집을 사고 싶어도 살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연구소장은 "토지를 살 때는 현장을 찾아 개발이 가능한 곳인지 확인하고, 임야·토지 대장을 통해 기획부동산이 쪼개 파는 땅은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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