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8.25 03:10
[Cover story] 아파트 이어 토지·상가까지
서울에서도 미분양 처리 위해 최대 2억5000만원까지 깎아줘
지금 국내 부동산 시장은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 대량 염가판매)' 중이다.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부동산이 팔리지 않고 있다. 수요자들은 웬만해선 부동산 구매와 투자에 나서지 않는 상황이다. 실제로 전국 주택 거래량은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이에 따라 건설회사를 비롯한 부동산 공급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가격 할인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지방에서 시작된 부동산 바겐세일은 수도권까지 상륙했고, 아파트뿐만 아니라 상가와 토지, 콘도 시장까지 확산되고 있다. 민간기업은 물론 경영난에 처한 공기업까지 부동산 할인판매 대열에 가세하고 있다.
◆서울에도 등장한 '아파트 세일'
당초 분양가 11억원가량이었던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반도 유보라' 아파트는 최근 3억5000만원만 내면 들어와 살 수 있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사실상 주변 아파트 전세금 정도만 내면 입주할 수 있도록 한 것. 건설사는 당초 분양가격을 10%가량 인하해 10억원으로 낮췄다. 3억5000만원을 제외한 잔금 6억5000만원은 회사가 대출을 알선해 주고 이자는 대납해 준다.
입주자가 2년 후 집을 사겠다고 하면 잔금 대출을 입주자가 가져가면 되고, 살지 않겠다면 이미 냈던 돈(3억5000만원)을 돌려준다는 조건이다. 일종의 '변종 전세분양'인 셈이다. 주택경기가 장기간 침체돼 있던 지방 아파트 시장에서 유행한 전략이 서울까지 올라온 것이다.
부동산은 상품 특성상 옷이나 식품처럼 직접적으로 가격을 깎아주는 속칭 '땡처리'가 불가능한 상품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을 부동산에 투자하다 보니 먼저 같은 상품(주택이나 토지)을 '제값' 주고 구입한 소비자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이런 관행이 깨지고 노골적인 할인 판매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지방 미분양 아파트에서 시작된 할인 판매는 인천·경기 등 수도권은 물론 서울까지 확산됐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서울에서만 5개 단지가 가격 파괴에 나서고 있다. 현대 엠코는 서울 동작구 상도동 '엠코타운' 아파트를 당초 분양가보다 12%(1억3000만원) 싼 10억9000만원에 팔고 있다. 강서구 화곡동 '그랜드 아이파크'와 강동구 '고덕 아이파크'도 분양가를 최대 15%까지 내렸다. 대명종합건설의 대명루첸은 당초보다 1억5000만~2억5000만원을 할인해 준다.
미분양 할인 판매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6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11만20가구로 작년 말(12만3297가구)보다 1만3277가구(10.8%) 줄었다. 대형 건설업체 관계자는 "준공 이후까지 미분양을 대규모로 남기면 멀쩡한 아파트의 이미지가 나빠지고 시세가 낮게 형성돼 기존 계약자에게도 손해"라며 "팔 수 있을 때 싸게라도 파는 것이 건설사는 물론 기존 계약자에게도 사실상 이익"이라고 말했다.
◆공기업도 토지·상가 할인 분양 나서
부동산 시장에 부는 세일 바람은 토지와 상가·콘도 등 상품을 가리지 않고 확산되는 양상이다. 빚더미에 시달리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최근 대대적인 토지 할인 매각에 나섰다.
LH는 이달 들어 '전사원의 영업사원화'를 표방하며 강원 원주 무실2지구 등 총 5개 지구에서 89필지의 분양가를 조정해 최대 25% 할인해 팔고 있다. 미분양으로 남은 전국 25개 사업지구, 77개 필지(3조4000억원어치)는 계약 2년 후 반납하면 계약금과 중도금에 이자까지 쳐서 되돌려 주는 '토지 리턴제'까지 적용하고 있다.
LH는 상가도 바겐세일하고 있다. 고양 일산2·남양주 가운지구 등지에 남아 있는 8개 단지, 9개 점포를 최초 예정가격보다 40% 깎아주고, 김포 양곡지구 등의 점포는 10%를 할인해 매각 중이다. LH 관계자는 "118조원에 이르는 엄청난 부채를 짊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다"며 "가능한 한 모든 방법으로 땅을 팔아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콘도·상가도 제값 받기 어려워
민간업체가 분양하는 상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경기도 오산시 원동에 들어서는 근린상가 '파크스퀘어'는 최초 분양가보다 40% 이상 싼 가격에 미분양 점포를 분양하고 있다.
장경철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는 "기존 계약자가 반발할 수 있어 공개적으로 할인 분양을 홍보하는 곳은 드물다"면서도 "고객과 협상과정에서 슬그머니 할인 금액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리조트와 콘도 회원권 시장에도 할인 물건이 나오고 있다. 강원 고성에 있는 '금강산비치리조트'는 회사 보유분 100계좌를 분양가의 절반가격에 분양 중이다. 강원 용평의 별장형 휴양아파트 '알펜로제타운'도 잔여분 할인 분양에 들어갔다.
전문가들은 최근 할인 판매 확산에 대해 과도하게 올랐던 분양가가 합리적인 수준으로 조정되는 불가피한 과정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정보업체 '스피드뱅크' 박원갑 이사는 "현재 할인 판매하는 부동산 중에는 지나치게 가격을 높게 책정했다가 할인을 하고서야 정상적인 수준으로 맞춰진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같은 할인 바람은 부동산 수급(需給)이 안정을 되찾고 극도로 위축된 투자자들의 구매심리가 회복될 때까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닥터아파트 이영진 이사는 "파격적인 할인 판매에도 불구하고 수요가 살아나지 않는 현상이 고착되면 자칫 자산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