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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부동산 덫'에 걸리다

    입력 : 2010.07.09 03:26

    집이 짐으로 '아파트 입주 大亂'
    주택거래 중단에 집값 하락…
    이사갈 집에는 입주도 못해 잔금 연체
    빚더미에 올라… '내집마련의 꿈'이 악몽으로

    지난해 9월 경기도 안양에서 미분양 아파트를 4억4000만원에 구입한 곽모(34)씨. 그는 아파트 입주 기간이 2개월이나 지났지만 원래 살던 아파트를 팔지 못해 입주하지 못하고 있다. 입주 지연 연체료로 매달 90만원씩 꼬박꼬박 내야 한다. 4인 가구 가족의 수입은 남편의 월급 360만원이 전부다. 곽씨는 "빠듯한 살림에 90만원이라는 엄청난 돈이 '생돈'처럼 빠져 나가는것을 보면 미칠 지경"이라며 "대책을 세우려고 남편하고 얘기해 봐야 서로 감정만 상한다"고 말했다.

    그가 새로 산 집값은 4000만원가량 떨어졌다. 원래 살던 주공아파트도 작년 연말 대비 5000만원이나 깎아서(2억2000만원) 중개업소에 내놨지만 전화 한 통 없다. 본인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지만, 정부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다. 곽씨는 "정부에서 작년에 미분양 아파트 사면 양도세를 깎아 준다고 얼마나 떠들었느냐"며 "정부가 미분양 아파트 사라고 국민을 꼬드겨 놓고 이제 와선 완전히 모른 척한다"고 말했다.

    올해 초부터 시작된 주택거래 중단 사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주택 거래가 되지 않아 입주가 늦어지면 건설사만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다. 내집 마련의 꿈에 부풀었던 평범한 직장인들까지 가계부도로 내몰리고 있다. 정부는 지난 4월 정상적인 주택거래 활성화 대책을 내놓았지만 벌써 '무용지물'이 됐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것. 부동산정보업체 '스피드뱅크'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의 상반기 입주 물량은 6만4491가구였지만, 하반기에는 1만2000여 가구가 더 많은 7만7157가구에 이른다.

    ◆주택 거래 중단, 가정이 무너진다

    이미 입주가 예정된 지역에선 '곡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주부 김모(47)씨는 2년 전 고양 식사지구의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했다. 김씨는 "남편 몰래 6억원짜리 미분양 아파트를 계약금 3000만원을 내고 샀는데 1년 사이에 1억원이 떨어졌다"며 "남편이 술만 마시고 들어오면 '어떻게 벌어 온 돈인데 이렇게 날려 먹을 수 있느냐, 가만두질 않겠다'고 고함을 지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주택거래 사태가 사회적인 문제로 확산되는 것은 전 재산을 집 한 채에 쏟아 부어야 하는 한국 사회의 특징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남희용 주택산업연구원 원장은 "우리나라의 중산층들은 이미 벌어 놓은 모든 재산은 물론, 앞으로 5~6년간 벌 수 있는 돈까지 대출받아 집 한 채에 '올인'하는 구조"라며 "주택 거래가 중단돼 주택 가격 하락 속도가 빨라지면 개인의 재무 구조가 무너진다"고 말했다.

    ◆수도권에도 '불 꺼진 아파트' 등장

    올 하반기 수도권 입주 물량 7만7000여 가구. 경기도 용인 6504가구, 고양 1만2941가구 등이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 입주가 예정된 이 지역에선 이미 건설사와 부동산중개업소, 일반 가정까지 '패닉(대혼란)' 상태에 빠져 있다.

    용인 수지구 성복동에서 한 대형건설사가 1500여 가구 규모로 지은 아파트 단지는 입주가 시작됐지만, 아직 절반가량이 미분양 상태다. 입주한 가구도 160여 가구에 불과하다. 이 아파트 단지는 해가 져도 불을 밝히는 가정이 드문 '불 꺼진 아파트 단지'가 될 것이 뻔하다.

    '청약불패'의 신화를 기록하며 청약자들이 몰렸던 인천경제자유구역 청라지구의 상황도 비슷한 상황. 청라지구의 A아파트 단지는 지난달 말부터 입주를 시작했지만 900여 가구 중 실제 입주한 가구는 30여 가구뿐이다. 인근 중계업소 관계자는 "입주자들이 계약금 1억~1억5000만원을 포기하고 거의 '투매' 수준으로 집을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수억원짜리 집 가진 채 부도 위기

    소규모의 개인 사업자나 자영업자들에게도 주택 거래 중단사태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들은 일시적인 자금난에 처하면, 최후의 수단으로 개인 주택을 매각해 자금을 조달한다. 하지만 주택 거래 시스템이 붕괴돼'긴급 자금 조달처'가 사라진 것이다.

    인천에서 봉제업체를 운영하는 이모(53)씨는 2007년 전매 제한이 없는 새 아파트(분양 가격 8억원)를 계약했다. 그러나 이씨는 "4월쯤 회사가 자금난에 빠져서 분양권을 팔려고 내놨는데 3개월이 지나도 전화 한 통 없다"며 "수억원짜리 집을 끌어안고 꼼짝없이 부도 위기에 몰렸다"고 말했다.

    주택거래 중단 사태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가 더는 손을 놓고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입을 모은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 소장은 "정부가 건설경기 부양차원이 아닌 사회안전망 구축 차원에서 주택 거래 중단 사태에 대해 대책을 세워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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