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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 연봉자도 입주하는 '시프트'

    입력 : 2010.03.26 02:55

    서울市 장기전세주택 '로또' 전락…
    대형 주상복합 1억9000만원에 공급
    소형 외엔 소득제한 없어 호화 시프트엔 외제차도
    "서민 지원할 세금 낭비"

    서울시가 중산층의 주거문화를 바꾸기 위해 도입한 시프트가 애초 취지와 달리 고소득자에게 싼값에 주택을 공급하는‘주택 로또’로 변질되고 있다. SH공사가 69가구를 위해 371억원을 들여 지은 왕십리 주상복합 시프트의 모습. /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대기업 계열사의 팀장인 김모(41)씨는 지난달 은평뉴타운 장기전세주택(시프트)에 입주했다. 그의 부인 역시 대기업 부장이어서 부부의 급여 소득만 연 1억5000만원. 예전에 살고 있던 전셋집 보증금 2억8000만원을 돌려받아 시프트 입주 보증금(전세금)으로 1억3000만원을 내고서도 1억5000만원의 여윳돈이 남았다. 그는 남은 돈으로 토지에 투자할 계획이다. 김씨는 "'혹시나' 하고 신청했는데 운 좋게 당첨됐다"며 "서민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어떻게 연봉 1억5000만원에 이르는 김씨 부부가 시프트에 당첨될 수 있었을까. 이유는 시프트는 소형(60㎡·18.1평) 주택을 제외하고는 당첨자를 가릴 때 '소득' 규모는 전혀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주택을 공급한다는 명목으로 주변 전세금보다 훨씬 싼 값에 최대 20년간 거주할 수 있는 시프트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도입 취지와는 달리 세금으로 지은 아파트에 '억대 연봉자'가 입주하고, 다른 사람 명의로 당첨된 시프트에 입주해 살더라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등 허점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연봉 2억도 시프트에 입주

    시프트 당첨자 선정의 기준은 서울 거주기간과 청약저축통장 가입기간, 나이, 부양가족 수 등이며 소득은 아무리 많아도 제한이 없다. 따라서 서울 강남이나 목동 등 3억~5억원짜리 전셋집에 살면서 주식·예금 등 다른 자산이 수십억원에 이르더라도 시프트 당첨에는 문제가 없다. 외국계 증권사를 거쳐 주식투자회사 임원을 지내다 올해 2월 퇴직한 A씨도 서초구 반포동의 시프트 아파트에 당첨돼 살고 있다.

    그는 인센티브를 제외한 연봉만 한때 2억~3억원이지만, 무주택자여서 시프트에 당첨될 수 있었다. A씨는 "아무리 싸지만 3억이나 하는 강남권 시프트에는 서민들이 살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9억2000만원짜리 호화 시프트

    시프트는 서울시가 자체적으로 지어 공급하는 '건설형'과 재건축 아파트에서 매입해 공급하는 '매입형' 두 가지 유형이 있다. 2007년 4월 이후 지난해 말까지 서울시가 공급한 시프트 주택 수는 7884가구. 이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세금 1조9235억원을 쏟아부었다.

    서울시가 공급하는 시프트 중에는 '주상복합아파트'만으로 지어 공급하는 '호화 시프트'도 있다. 성동구 하왕십리에서 공급한 '왕십리주상복합 아파트'(69가구)는 모든 주택이 시프트. 이 주상복합 아파트를 짓는 데 371억원이 들었다. 이곳에는 공급면적 172㎡(51.8평·전용 124㎡)의 대형 주택 9가구가 있다. 이 집 하나를 짓는 데 건설비만 9억2700만원이 들었지만, 보증금은 1억8900만원에 불과하다.

    지난 23일 저녁 취재팀이 이 아파트 지하 주차장을 찾아가 조사한 결과 총 30여대의 자동차 중 판매 가격이 6000만원가량인 크라이슬러 300C와 3000만원 안팎인 혼다 시빅, 그랜저·SM7 등 대형·준대형 차량만 10대가 넘었다.

    ◆전세 로또 시프트, 환수 방법도 없어

    최근 서울 전 지역의 전세금이 급등하면서 시프트는 ‘전세 로또’라 불린다. 2009년 2월 공급된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래미안 퍼스티지’와 ‘반포 자이’ 아파트 단지의 전용 84㎡(25.4평)형 시프트는 공급 당시 보증금이 3억원이었다. 하지만 현재 두 아파트의 전세금 시세는 6억3000만원 안팎까지 올랐다. 시프트 보증금이 주변 전세 시세의 50% 안팎에 불과하다. 주변 시세가 아무리 올라도 전세금을 조정하기도 쉽지 않다. 시프트는 2년에 한 번씩 전세 계약을 경신하지만 보증금 상승률은 5%를 넘을 수 없다고 제한해 놓았다.

    반포동 시프트에 사는 이모(40)씨는 “시아버지나 친인척이 시프트에 당첨돼 다른 사람이 들어와 사는 경우도 있고, 시프트에 당첨돼 남긴 돈으로 수입차 사고, 주식·토지에 재테크를 하는 사람도 제법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사실상 시프트 당첨자와 실제 거주자를 가려 낼 방법도 없다. 이달 초 반포 지역 시프트 거주자에 대한 실거주 조사가 있었다. 각 가구를 방문한 조사자가 “가구주가 실제 당첨된 사람이 맞느냐”고만 묻고 응답자가 ‘맞다’고 대답하고 확인서에 서명만 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당첨자 선정 기준에 소득 넣어야’

    전문가들은 서울시가 시프트에 재정을 쏟아 붓는 바람에 정작 저소득층에게 들어가야 할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서울시는 최근 경기가 어려워지자 영구임대주택 거주자(2만2000여 가구)에게 임대료 지원금 명목으로 가구당 23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시프트는 한 가구를 지을 때마다 평균 2억3000만원이 든다. 장성수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저소득 무주택자에게 돌아가야 할 세금이 시프트로 인해 낭비되지 않도록 당첨자 선정 때 소득기준을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프트(SHIFT)

    서울시와 SH공사는 서민과 중산층을 겨냥해 주변 전세 시세 80% 이하의 보증금으로 최장 20년까지 거주할 수 있는 장기전세주택(시프트)을 2007년부터 공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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