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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발전으로 각광받던 교외주택, 왜 몰락했을까?

    입력 : 2010.01.27 06:54

    인재·돈 몰리는 대도시 집중현상 심화

    1990년대 후반 인터넷 혁명이 휩쓸자 '거리의 소멸(Death of Distance)'이 부동산 시장의 화두로 등장했다. IT(정보기술) 발전으로 인터넷과 영상 전화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세상에서는 더 이상 집값이 비싸고 좁은 도시에 몰려 살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도시를 떠나 집값이 싸면서도 풍광 좋은 시골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도시구조의 지각변동이 예상된다는 전망도 나왔다. 여기다가 인도·중국 등 제3세계의 비약적인 경제 발전은 기업활동에 있어서 '국경 소멸'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만은 "세계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고 외쳤다. 미국의 상당수 기업이 영어가 가능하고 인건비가 저렴한 인도로 콜센터를 이전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국경은 이제 무의미해졌다는 것이다.


    미국 등 전 세계 기업들이 인건비가 저렴하고 영어가 가능한 인도 방갈로르에 콜센터를 설치하고 있다. 방갈로르는 글로벌 시대에 국경 없는 경제의 한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 /로이터연합

    갈수록 중요해지는 거리와 입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거리와 입지가 오히려 더 중요해졌다는 정반대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포터 교수는 2006년 경제전문 잡지 비즈니스위크에 "입지와 위치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입지의 모순(the paradox of location)이라는 말로 이를 설명했다. "글로벌화로 기술과 공정, 자본이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 어디로든 움직이는 시대다. 당연히 글로벌화로 입지가 중요하지 않고 더 이상 투자의 장벽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모순은 오히려 입지가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지금의 입지는 단순히 교통이나 천연자원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뛰어난 인재들이 많이 있는가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

    구글이나 야후 같은 첨단기업이 실리콘밸리에 여전히 둥지를 틀고 있고 혁신적 기업과 기술이 특정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지역의 중요성이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 그는 기업이 밀집하는 현상으로 인해 부자 지역이 더 부유하게 되는 시대라고 선언했다. 실제 실리콘 밸리는 집값과 인건비가 급등하는 등 기업에 매력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과 인재들이 그런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실리콘 밸리로 몰리고 있다. '클러스터(cluster) 효과' 덕분이다. 첨단기술과 상품이 1급 기술자와 과학자들이 몰려 있는 클러스터에서 창출될 가능성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집값 등 물가와 인건비가 치솟으면서 미국 실리콘밸리는 기업들에 매력도가 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 일류 기업과 인재들이 몰리고 있다.

    버블 붕괴로 교외주택 직격탄

    대도시의 중요성도 더 커지고 있다. 캐나다 토론토대학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6.5%가 거주하는 10개의 대도시 초광역권에서 전 세계 경제활동의 43%를 담당하고 혁신적 특허의 57%를 만들어내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도 1990년대 말 인터넷 기술의 발전으로 재택근무가 보편화되면서 한때 도시의 소멸론이 등장하고 전원주택의 붐이 대세를 이룰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전체 부동산 시장은 오히려 특정 지역의 집중현상이 심화됐다. 거리의 소멸로 각광받던 교외주택단지는 위축되고 있다. 주택버블 붕괴로 가장 직격탄을 받은 곳도 교외지역이다. 도심 집중화현상과 도심 부동산 가격 급등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교외에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 도심에 거주하면서 교외로 출퇴근하는 역출근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도심회귀 현상의 원인에 대해서는 맞벌이 부부와 싱글족의 비중이 늘면서 이들이 출퇴근 시간이 적게 들고 문화·쇼핑 등 편의시설이 많은 도심을 선호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버드대 글레이서 교수는 도시의 부동산 가격(임대료)은 그 지역의 생산성(소득수준)과 편의시설 프리미엄을 더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인터넷과 영상전화의 보급으로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집값이 비싸고 비좁은 도시보다 교외주택이 부각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미국의 경우, 금융위기 이후 집값이 폭락한 곳은 대부분 교외지역이다. 사진은 교외주택단지에 나붙은 '무료 임대' 안내판.

    대도시·선진국에 구매력 높은 인력 몰려

    특정 도시에 고학력자와 전문지식인이 몰리는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미국 성인의 대졸자 비율이 27%인데, 샌프란시스코워싱턴DC의 경우 절반 정도가 대졸자이다. 디트로이트는 11%, 클리블랜드는 4%에 불과하며 이는 30년 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시카고 다운타운과 뉴욕 미드타운 거주자의 3분의 2가 대졸자이다. 소득이 높은 고학력자들이 특정지역에 몰려 살면서 집값을 부담할 능력이 적은 저소득층이 도시를 떠나는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인재의 재배치는 국가 내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제3세계의 유능한 인재가 미국 등 선진국으로 이민 가고 있어 인재 유출 논란이 뜨겁다. 필리핀도 전체 인구의 10분의 1에 달하는 800만명이 해외에서 일하고 있고, 이들의 송금은 필리핀 국민총생산(GNP)의 10%(약 128억달러)를 차지한다. 실리콘밸리의 과학자와 엔지니어 50%는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민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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