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11.24 15:56 | 수정 : 2009.11.25 04:23
한국의 친환경 주택, 어디까지 왔나
'아파트 천국' 한국, 절약형 주택 개발에 유리
전기를 사다 쓰지 않고도 환하게 불을 밝히는 아파트, 발전소 없이도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도시는 가능할까. 탄소 배출량 감축 기술이 전 세계적인 화두(話頭)로 떠오르고 있다. 국가마다 주택과 도시의 에너지 사용량을 감축하려는 공격적인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주택·도시 설계 분야에서 에너지 절감 기술을 선도하는 외국과 한국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대한민국에 이런 집만 있다면 한국전력공사는 벌써 망했다. 손바닥만 한 창문도 달려 있지 않은 이 집 화장실은 대낮처럼 밝다. 천장에 전등처럼 생긴 것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지만 사실은 햇빛이다. 집 밖 햇빛을 거울로 모아 실내로 끌어들이는 광덕트라는 장치 덕분이다. 태양광을 모아 전기를 만드는 파란색 태양광 패널 176장으로 지붕을 덮었다. 벽 속에 숨겨진 단열재는 '진공단열보드'. 냉장고에 사용하려고 만든 물건으로 집을 감쌌으니 단열 효과는 최고다. 목욕탕 수도꼭지에서 김이 모락모락 날 정도로 쏟아지는 온수는 태양열로 데웠다.
이 집 이름은 '그린 투모로우'. 삼성물산이 경기도 용인 동백지구에 '에너지 제로(0) 주택'으로 지어 공개한 시범형 단독주택이다. 이 집에선 전기 요금을 한 푼도 안 내고 살 수 있다. 이규재 삼성물산 기술연구소 부사장은 "그린 투모로우는 에너지 절감기술로 에너지 사용량(기존 주택의 56%) 자체를 줄이고, 태양광·지열 발전기에서 생산한 에너지(나머지 44%)를 사용하는 에너지 자급자족형 주택"이라고 말했다.
◆에너지 사용량 못 줄이면 아파트 못 지어
에너지 절감형 주택(그린홈)을 개발하기 위한 건설사들의 치열한 '전쟁'이 시작됐다.
지난 5일 이명박 대통령 주제로 열린 '녹생성장위원회' 보고에서 국토해양부는 '녹색도시·건축물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 계획대로라면 2025년까지 모든 건축물에 대해 외부에서 끌어다 쓰는 에너지가 전혀 없는 '제로에너지 건축물'이 의무화된다. 2012년까지 연간 에너지 소비량(3만3055㎾)을 현 수준 대비 30%(냉·난방에너지는 50%) 줄이고, 2017년 60%, 2025년에는 100% 줄여야 한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에너지 소비량을 확실히 줄이지 못하면 아파트 장사 못하는 시대가 곧 온다"고 말했다.
◆생존의 위한 그린홈 전쟁 시작
에너지절감 로드맵이 정해진 이상 건설사 입장에선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앞으로 '아파트' 건설의 경쟁력은 에너지 사용량을 '얼마나 빨리 그리고 많이' 줄이느냐에 따라 갈릴 전망이다. 국내 건설사들이 지금까지 개발한 에너지절감형 주택의 수준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
에너지절감형 주택 분야에서 앞서 달리고 건설사로는 대림산업을 꼽을 수 있다. 대림산업이 지난해 4월에 분양한 아파트(의령군 유곡 e-편한세상)는 냉·난방 에너지를 30%까지 절감할 수 있도록 지었다. 올해 입주가 시작된 정릉 2차·고양 원당 e-편한세상 아파트 단지에는 태양광을 활용해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태양광 발전시스템을 적용했다. 최수강 대림산업 건축사업본부장은 "장기적으로는 아파트 단지에서 생산한 에너지를 외부에 팔 수 있을 정도까지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GS건설은 최근 서울 서교동 자이갤러리 안에 '그린 스마트자이' 홍보관을 개관했다. 이곳에선 지능형 전력망 기술을 적용해 실생활에서 에너지 절감을 유도한 것이 특징. 가전제품의 불필요한 대기전력을 차단하는 '대기전력 차단 스위치, 요리를 가열할 때 적정한 온도와 시간을 알려주는 시스템이 도입돼 있다. 대우건설이 지어 2007년 입주한 '목포 옥암 푸르지오'에선 태양광발전 시스템으로 생산한 전기로 복도·주차장·승강기 등 공용 전력으로 사용했다. 덕분에 지난해 한 가구당 20만원 정도의 전기 요금을 덜 냈다.
◆아파트 공화국 에너지 절감기술 개발엔 최적
문제는 '돈'이다. 에너지 절감 기술을 많이 도입할수록 건축비가 상승해 집값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 삼성물산이 시범적으로 지은 그린 투모로우 역시 땅값을 제외하고 3.3㎡당 건축비가 약 1000만원. 일반 단독주택의 2배다. 창호·단열재 등이 건축비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따라서 얼마나 싼 값에 에너지 절감기술을 개발해 누가 빨리 실제 분양하는 아파트에 적용하느냐가 '녹색 주택전쟁'의 핵심이다.
도시와 농촌에 관계없이 아파트가 빼곡한 한국의 독특한 아파트 선호 현상은 에너지 절약형 주택을 개발하는 데에는 오히려 유리하다. 이상호 GS건설연구소 소장은 "단독주택보다 아파트는 획일적인 집단형 구조여서 에너지 사용량이 훨씬 적고, 기술 개발도 쉬운 편"이라며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한국의 주택 문화가 에너지 절감형 주택 기술개발 분야에서는 최적의 환경"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