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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공화국의 그늘] [2] 무너지는 재개발 신화

  • 특별취재팀

    입력 : 2009.11.03 02:34 | 수정 : 2009.11.03 08:31

    주택·전세난 해소한다더니… 재개발 시급한 재개발 정책
    멀쩡한 집 40%인데도 싹쓸이·마구잡이 재개발
    돈 버는 이는 외부인뿐…
    서울 23개 뉴타운 완공땐 9000여 가구 갈 곳 없어

    지난 2일 간송미술관과 캐나다·체코 등의 외국 대사관저 30여곳이 모여 있는 서울 성북구 성북동. 대사관저로 올라가는 골목 초입에는 낡은 단독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하지만 골목을 따라 올라가자 지은 지 10년이 안 된 멀쩡한 주택들이 모여 있었다. 정원을 갖춘 고풍스러운 한옥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지난 5월 재개발조합 설립인가가 떨어져 아파트로 바꾸는 재개발 사업이 추진 중이다. 2층 단독주택에 사는 주민 노정순(47)씨는 "집 지은 지 20년이 넘었지만 아무 불편 없이 잘 사는데 멀쩡한 주택을 '노후주택'으로 분류해 헐어내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동네 입구에 있는 5층 빌딩은 지은 지 3년밖에 안 됐지만 재개발사업이 진행되면 강제 철거될 수밖에 없다.

    화장실과 수도시설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낡은 주택을 헐어내는 재개발사업의 취지가 변질되고 있다. 집주인들에게 막대한 시세차익을 안겨주고 부족한 주택공급을 대폭 늘린다는 명분조차도 잃어가고 있다.

    이제 오히려 엄청난 추가 공사비 때문에 주민들도 반발하고 있고, 주택공급을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전세난을 촉발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지난 5월 조합이 설립돼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서울 성북구 성북동(성북 제3구역) 일대. 이곳에선 재개발에 찬성하는 주민과 반대하는 주민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멀쩡한 집 많아도 싹쓸이식 재개발

    재개발 사업에서 왜 멀쩡한 집을 헐어내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 걸까. 특정 지역에 20년 이상 된 노후 건물이 전체 주택 수의 60%만 넘으면 재개발 사업이 진행(지구지정)되기 때문이다. 현행 규정에는 노후·불량건물 비율(60% 이상), 4m이상 도로를 낀 주택의 비율(접도율), 주택 밀도, 작은 필지(90㎡ 이하) 등 4가지 요건 중 2개 이상만 충족하면 재개발 사업이 진행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규정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고 마구잡이로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 민주당 이용섭 의원에 따르면 서울시내 뉴타운 사업지구 중 노후 불량 건축물 비율이 60%가 되지 않는 곳은 총 84개 구역 중 31곳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군다나 구청장 재량으로 노후 건물 비율이 60%가 안 되어도 기반시설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재개발이 추진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서울 성북동 주민 박희찬(62)씨는 "생활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재개발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왜 무조건 멋도 없고, 성냥갑 같은 아파트만 고집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재개발로 손해 보는 주민도 늘어

    재개발 사업을 지탱했던 '돈이 된다'는 말도 옛말이 되고 있다. 재개발을 해 봐야 이익은커녕 재산상 손실을 보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일 오전 한남뉴타운 예정지에서 만난 강모(64)씨는 "주택 입주권을 준다고 하지만 100㎡(30평)짜리에 들어가려면 7억~8억원은 내야 한다"면서 "재개발을 해도 오히려 손해가 된다"고 말했다. 인근 용산구 보광동에서 신발 가게를 운영하는 박모(47)씨도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그는 "조만간 용산구 신청사가 들어오면 손님이 늘 것으로 기대했는데, 갑자기 멀쩡한 건물을 헐고 나가라니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한남뉴타운은 이들의 바람과 달리 이미 투기 바람에 휩싸인 지 오래다. 이 지역에선 대지 지분이 3.3㎡당 5000만~6000만원에 거래된다. 반지하 단칸방도 수억원을 호가한다. 박씨는 "결국 뉴타운 사업으로 돈 버는 사람은 외부에서 들어온 투기꾼뿐인데 동네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재개발 예정지에 다세대·다가구 주택을 가진 주민들도 불만스럽긴 마찬가지다. 서울 성북동에서 다가구주택 7가구에 월세를 놓고 사는 주민 최정자(58)씨는 "월세 수입으로 생활해왔는데 재개발되면 생활이 막막하다"며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재개발로 주택이 늘어난다고?

    주택 공급 확대라는 재개발 사업의 효용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1973년 이후 지금까지 9만5649동을 재개발로 허물어 내고 21만9409가구를 지은 것으로 조사됐다. 무려 주택 수가 12만가구 이상 늘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오류가 있다. 재개발로 헐어낸 주택 중 다가구·다세대를 모두 1개 동으로 계산했기 때문이다. 반지하에 옥탑방까지 다가구 주택 1채에도 10가구 이상 들어 있는 주택이 많지만 1개 동으로만 계산된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 따르면 사업계획이 수립된 23개 뉴타운 지역의 기존 가구 수는 29만2000여가구이지만 사업 이후 공급되는 가구 수는 오히려 28만3000가구로 줄어든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장영희 박사는 "사업이 완료되면 9000여가구는 갈 곳이 없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재개발 본격화로 서민주택이 사라지면서 전세난도 촉발되고 있다. 서울의 경우, 2011년부터 재개발 사업으로 사라지는 주택이 새로 공급되는 주택보다 연간 1만5000~3만가구 많아질 것으로 예상돼 상당기간 전세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수익성도 안 나오는데 멀쩡한 아파트를 헐고 새로 짓는 재건축 사업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들어차는 아파트 가운데 '즐거운 나의 집'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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