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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아파트 공화국'의 그늘] [1] 북한산·남산 턱밑까지 아파트 숲… 갈수록 '도시의 흉물'로

    입력 : 2009.11.02 03:05

    망가지는 경관
    도시 전체 디자인 고려않고 마구잡이로 파헤치고 건설
    "영혼없는 개발로 꽉찬 한국" 외국 전문가들 따가운 비판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남산 3호터널 북측(중구 회현동) 입구. 터널로 향하는 도로 왼쪽에는 새로 건설 중인 고층 건물이 기세좋게 올라가고 있었다. 오른쪽엔 또 다른 고층 건물 공사가 막 시작돼 가림막이 처져 있고, 레미콘 차량과 덤프 트럭이 바쁘게 들락거렸다. 두 건물 모두 주상복합 아파트다.

    1994년 조망권을 살리겠다며 외인아파트(16·17층짜리 2동)를 철거하며 난리를 쳤던 남산 주변엔 지금 외인아파트 대신 30층짜리 고층 주상복합아파트가 슬금슬금 들어서고 있다. 현재 남산 주변에 건설 중인 고층 주상복합아파트는 롯데건설의 '남산롯데캐슬아이리스'(32층), SK건설의 '리더스뷰남산'(30층), 쌍용건설의 '남산플래티넘'(33층), 삼성물산의 '남산트라팰리스'(37층)가 있다. 저마다 아파트 이름에 '남산'을 자랑스럽게 붙이고 탁월한 남산 조망권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아파트 주민을 제외한 서울 시민들에겐 남산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일 뿐이다. 민간 건설업체는 물론 정부도 땅만 있으면 그린벨트·단독주택지역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아파트를 짓고 있다. 도시의 전체의 디자인이나 스카이라인은 깡그리 무시된 지 오래다.

    ‘콘크리트 병풍’에 막힌 한강 1일 서울 강남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바라본 잠실일대 아파트. 초고층으로 우뚝 솟은 콘크리트 아파트가 마치 거대한 병풍처럼 한강변을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다./전기병 기자 gibong@chosumn.com
    ◆명산 밑에 들어서는 아파트

    북한산 북측에 그린벨트와 단독주택이 있던 서울 은평구의 349만㎡ 크기의 대지에는 거대한 아파트 숲인 은평뉴타운이 조성되고 있다. 뉴타운 건설 현장 맞은편 도로에서 보면 백두산·금강산 등과 함께 대한민국 오악(五嶽) 중 하나라는 북한산은 아파트 숲 사이로 손톱만하게 보인다. 아파트 단지는 북한산 자락을 깊숙이 파먹으며 들어서고 있다. 이 지역의 대부분의 아파트는 '남향', '북한산 조망권'을 확보하기 위해 비슷한 방향으로 최대한의 용적률을 살려 경쟁적으로 지어 올리다 보니 북한산을 가로막는 장벽이 돼 버렸다. 김희곤 경원대 겸임교수(건축사)는 "전 세계 어딜 가도 600년 고도(古都)의 명산 턱밑에 이렇게 거대한 아파트를 지어 올리는 곳은 없다"며 "지금은 '최신식'으로 보이는 저 아파트들이 30년 뒤 서울의 흉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린벨트가 아파트 벨트로

    수도권 그린벨트도 머지않아 아파트벨트로 바뀐다. 정부는 2012년까지 수도권 그린벨트를 풀어 서민용 아파트인 보금자리주택 32만가구를 지을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2020년까지 분당신도시의 15.7배인 최대 308㎢(9300만평)의 그린벨트 해제와 아파트 단지건설을 추진 중이다. 정부 관계자는 "대부분 보존가치가 낮은 곳이어서 개발해도 환경 훼손은 없을 것"이라며 "주택공급을 늘리기 위해서는 아파트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획일적으로 아파트를 짓기보다는 주변 환경에 맞춰 단독, 저층 연립 등으로 다양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주현 건국대 교수는 "개발이 불가피하다면 저층 연립이나 단독주택을 지어서 전체 경관 등 환경을 최대한 보존하고, 그 개발수익금을 서민 주거 복지에 사용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무차별적 그린벨트 개발은 문화재 존립마저 위협하고 있다. 세종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과 후손 700기의 묘가 모여 있는 서울 강남 수서동의 광평대군 묘역(서울시 유형문화재 48호)은 아파트 숲에 둘러싸여 그 가치가 훼손될 위기에 놓여 있다. 정부는 묘역 남쪽에 보금자리주택(세곡2지구)의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아파트 공화국' 외국인도 비판

    서울 곳곳을 잠식해가고 있는 콘크리트 아파트 촌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은 차갑기만 하다. 지난해 독일에서 발간된 도시전문 잡지인 '슈타트 바우벨트'에는 '서울은 기억을 지워버리는 도시'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불도저식 재개발로 서울의 역사를 담은 가옥들을 모두 밀어내고 아파트를 만드는 식으로 개발한다는 데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최근 여행가이드북 출판사인 론리 플래닛(lonelyplanet)이 네티즌의 의견을 수렴해 만든 방문하고 싶지 않은 도시 10곳에 서울을 포함시켰다. 구소련 스타일의 콘크리트건물이 가득차 있고

    '영혼이 없는 개발(no heart or spirit)'이라는 이유에서다. 한국 아파트 문화를 심층 분석했던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책을 통해 "한강변 아파트는 마치 군사기지를 방불케 할 정도"라고 평가했다. 천의영 경기대 교수는 "전국에 획일적 아파트를 짓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하다"면서 "도심은 물론 교외 농촌까지 주택을 똑같은 아파트로 짓다 보니 한국 건축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외국인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비판이 쏟아지는데도 정부와 서울시는 아파트를 더 높게, 더 쉽게 지을 수 있도록 최근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김희곤 교수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도시 디자인에 돈을 쏟아붓는 당국이 한편으로는 경관을 망치는 아파트 개발을 부추기고 있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들어차는 아파트 가운데 '즐거운 나의 집'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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