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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뉴욕 슬럼가 고급주거지로 바뀐 까닭… 부자들이 돌아왔다

    입력 : 2009.10.23 03:15

    도심재개발의 글로벌 트렌드

    뉴타운 등 재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낙후됐던 도심이 고급 주거지역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은 아니다. 외국에서도 슬럼화됐던 도심이 고급 주거지로 재개발되는 현상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를 지칭하는 학술용어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단어를 직역하면 고급화라는 의미. 저소득층이 거주하던 도심 낙후지역이 중산층 주거지역으로 변모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영국의 사회학자 글라스(Glass)가 1964년 런던 도심 낙후지역에 중산층의 유입현상에 대한 논문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언급한 이후 수많은 학자들이 책과 논문을 통해 그 원인과 과정을 밝히려고 노력하고 있다.

    미국 뉴욕의 도심 주상복합아파트. 한때 도심공동화 현상이 우려될 정도로 교외로 이주했던 중산층들이 도심으로 돌아오고 있다. /블룸버그

    젠트리피케이션의 원인에 대해서는 대체로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중산층이 도심을 찾는 것은 그들이 갖는 특별한 문화적 취향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한국과 달리, 런던과 뉴욕 등 도심 낙후지역에는 20세기 초에 지어진 주택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 지역은 슬럼가로 전락했지만 19세기 말 20세기 초에는 고급주택가였고, 당대 유행하던 건축양식을 담고 있는 주택들이 대거 지어졌다. 하지만 교외 주거지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중산층이 빠져나가 이민자, 흑인들이 몰려 사는 하류층 주거지로 전락했다. 주택들은 방치돼 슬럼화됐다. 그런데 이들 건축물들의 미적 가치에 주목한 중산층들이 몰리기 시작했다는 것. 중산층들이 싼 가격에 낡은 주택들을 사들여 리노베이션을 통해 문화적 가치를 창출하면서 고급 주거지로 변화한다는 분석이다. 한국도 옛 한옥이 보존된 인사동에 중산층이 몰리는 것도 같은 이유로 분석된다. 예술가들이 이런 변화를 주도하기도 한다. 미국 뉴욕의 소호 경우, 과거 가내수공업 공장으로 쓰이던 로프트(loft)는 천장이 높아 화가 등 예술가들이 스튜디오로 쓰기 편리한 구조이다. 로프트에 처음에는 화가 등 예술가들이 몰렸다. 이에 따라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한 카페·화랑 등이 성행하면서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거리가 형성된다. 이 거리 풍경을 동경하는 중산층들이 이주하면서 고급주거지로 변신했다. 이는 최근 화랑가들이 들어서면서 인기를 끌고 있는 청담동 등도 이런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영국 런던 도심의 고급주택가. 20세기 초반에 지어진 주택이 노후화되면서 저소득층 주거지로 전락했던 도심 주택가들이 리모델링되면서 고급주택가로 변모하고 있다. 런던뿐만 아니라 인도·중국 등에서도 도심에 고급 주거단지가 형성되고 있다. /블룸버그

    둘째, 가족구성의 변화로 설명하기도 한다. 미국과 영국에서 1960년대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이른바 '정상 가족'들은 도심의 흑인들을 피해 대거 교외 주거지로 이동한다. 당시 선진국 대부분 대도시의 도심은 범죄와 마약의 소굴처럼 여겨지면서 중산층은 대거 교외로 이주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하지만 80년대 이후 도심의 낙후지역에 중산층의 이주가 확연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학자들이 도심 이주자들을 분석해보니 이들 중에는 이혼자. 게이 등이 많았다는 것. 자녀를 둔 가정은 교육환경이 좋은 교외를 떠나기 어렵지만, 자녀가 없는 맞벌이 부부나 이혼자들은 편의시설이 많고 출퇴근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도심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도 자녀를 분가시킨 은퇴자의 도심복귀 현상도 새로운 현상으로 부각되고 있다.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싱글족이 늘고, 이혼율이 높아지면서 도심주거지가 인기를 끌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집값이 폭락한 미국 교외 주택단지에는 집을 팔겠다는 안내판들이 즐비하다. 도심 주거지 선호현상으로 교외지역 집값은 회복되지 않고 있다. /블룸버그

    셋째, 지대격차에 의한 분석이다. 땅값은 도심과 가까울수록 비싼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도심 주변의 낙후 지역은 저소득층이 몰리면서 땅값이 교외주거지역보다 하락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전통적 이론으로 보면 중심지역에서 멀어질수록 땅값이 싸야 한다. 그런데 도심낙후지역은 교외지역보다 교통이 편리하고 중심지에 가까운 데도 슬럼화되면서 비정상적으로 가격이 하락한다. 개발업체들이 교외지역과 도심 낙후지역의 땅값 격차가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이들 지역을 본격적으로 개발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재개발현상도 이런 시각에서 분석이 가능하다. 재개발이 본격 추진되면서 땅값이 치솟는 용산 일대는 편리한 도심 접근성에도 낙후주택이 많다 보니 도심과 강남보다 턱없이 땅값이 낮았다.

    21세기 들어 도심에 초고가 주택이 개발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뉴욕 맨해튼이나 런던의 경우, 이미 고급주택지로 변모한 도심지역이 다시 초고급주택으로 개발되고 있는데 이를 수퍼젠트리피케이션(Super Gentrificatrion)이라고 지칭한다. 전통적인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지역의 주거지 고급화 현상인데 이미 고급주거지가 된 지역이 다시 초고급주택으로 개발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금융자율화로 인해 초거액의 연봉과 보너스를 받는 신부유층이 탄생하면서 이들을 겨냥한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하고 이 같은 현상을 수퍼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명명한다. 수퍼젠트리피케이션은 런던과 뉴욕뿐만 아니라 시드니, 푸둥 등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금융산업의 발전으로 초고액연봉자들이 급증하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초고급 주택지 건설붐이 불었기 때문이다. 서울의 초고가 아파트도 어떤 의미에서는 수퍼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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