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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식 정원·호텔식 주민시설… 아파트, 예뻐야 팔린다

    입력 : 2009.10.23 03:19

    아파트 디자인의 진화
    단지 내 정원·외관은 물론 휴게실·수영장도 세련되게
    세계적 건축가 설계 맡기도

    대구 수성구 범어동의 '쌍용예가' 아파트 단지에는 이색 정원이 있다. 나지막한 사철나무 2만 그루가 미로처럼 만들어져 있고, 삼각뿔 모양으로 다듬어진 조경수가 줄지어 서 있다. 정원 가운데는 60m길이의 분수대와 화원이, 가운데는 황갈색 벽돌로 보행로가 만들어져 있다. 영락없이 유럽 고성(古城)의 정원을 옮겨 놓은 듯하다. 정원의 이름은 '빅토리아원'.

    유럽 고성의 정원을 본떠 만든 대구 범어동의 ‘쌍용 예가’ 정원 야경. 이 정원은 지식경제부로부터 우수 디자인상을 받았다. / 쌍용건설 제공
    "다른 아파트처럼 나무나 몇 그루 심고 끝내자는 공사 담당 부서와 갈등이 좀 있었죠. 그쪽은 공사비를 아껴야 하니까. 하지만 디자인 쪽에선 절대 양보를 못한다고 버텼어요." 임성재 쌍용건설 상품기획부 부장의 말이다. 이 아파트 정원은 올해 상반기 지식경제부가 주최한 우수디자인(Good Design)상을 받았다. 회사 내부에선 "정원에 돈 쓰길 잘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최근 공동주택 공간인 아파트의 내·외부 공간 디자인이 엄청난 속도로 진화(進化)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 내 정원, 외관, 평면은 물론 주민공동시설(커뮤니티 시설)도 호텔 부럽지 않은 수준으로 바뀌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나서서 "성냥갑 아파트는 건축불허"라고 떠들지 않아도 지금은 성냥갑 아파트를 지을 한가한 건설사는 없다.

    ◆아파트 디자인이 분양률 좌우

    최근 아파트 건축에서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건설사들이 '디자인'을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 주택공급률이 높아지고 소득 수준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아파트를 짓기만 하면 팔리던 시절은 끝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초 현대산업개발경기도 수원 권선동에서 분양한 '권선 아이파크'. 분양 당시만 해도 이 아파트는 중대형 위주여서 분양이 잘될 것이라고 장담을 못했다. 하지만 청약접수 결과 2.7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면서 성공적으로 분양됐다. 업계에서는 '디자인 마케팅'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아파트를 설계한 사람은 세계적인 건축가 벤 판 베르켈(UN스튜디오)과 네덜란드의 대표적 조경설계가인 로드베이크 발리옹. 이들은 파크(Park)·워터(Water)·빌리지(Village) 등 자연과 주변환경에서 이미지를 차용한 5개의 외벽 디자인을 도입했다. 이 디자인을 살리기 위해 아파트 외벽을 2중(더블 스킨 공법)으로 설계했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외벽을 이중으로 만들면 비용은 많이 들지만 디자인을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최근엔 신도시를 만들면서 아예 디자인 공모를 해 시공사를 선정하기도 한다. 김포한강신도시를 짓는 김포도시개발공사는 현상공모를 통해 디자인·설계평가·시공능력을 평가하고 시공업체를 선택했다. 디자인 능력이 떨어지면 공사 수주도 하기 어려운 시대가 온 것이다.

    (위쪽부터) 삼성물산 ‘래미안 퍼스티지’ 커뮤니티 시설 내부 모습. GS건설 ‘반포 자이’ 미니 카약장. 대우건설 ‘해운대 트럼프월드마린’ 의 정원.
    ◆중앙광장, 축구장 몇배냐가 경쟁력

    시커먼 아스팔트 바닥으로 돼 있던 아파트 중앙공간을 거대한 녹지공간으로 꾸미는 것도 '아파트 디자인 혁명'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지상에 주차장이 없는 아파트'는 더는 자랑거리도 아니다. 최근엔 중앙 녹지광장 키우기 경쟁도 벌어지고 있다.

    이달 영종하늘도시에 '우미 린' 4236가구를 분양하는 우미건설은 중앙에 축구장 3개 규모에 이르는 초대형 중앙광장을 조성했다. 광명에서 분양하는 대림산업의 '광명 e-편한세상' 아파트 단지에는 무려 축구장 7배 크기(5만㎡)의 녹지 공간을, 청라지구에서도 반도건설, 한라건설 등이 모두 단지 중앙에 축구장 2~3배 크기의 중앙광장을 만들었다.

    대형 수로(水路)를 아파트 단지에 끌어들이는 것도 최근의 유행이다. 포스코건설이 인천 송도지구에 짓는 주상복합아파트 '더�� 퍼스트월드' 단지 중앙엔 폭 16m·길이 300m의 대형 중앙 수로가 관통하고 있다. 중앙 수로 주변의 녹지와 단지 곳곳의 산책로 등에는 산수유·배롱나무 등 15만 그루를 심었다.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인 삭막한 아파트로는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아파트에 카약장 게스트룸 등장

    주민들의 공동생활 공간인 '커뮤니티' 시설은 호텔급으로 진화하고 있다. 커뮤니티 공간의 수준이 아파트의 가치를 평가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가 된 것. 골프연습장과 피트니스센터 정도로는 더 이상 소비자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지난해 말 입주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에는 아파트 단지에 어린이들을 위한 '미니 카약장'을 만들었다. 단지에 물길을 만들어 어린이들이 노를 저으며 카약을 탈 수 있게 했다. 호텔이나 초고가 아파트에 등장하는 게스트 룸이나 스카이라운지도 아파트에 들어선다. 이달 영종지구에 분양되는 '우미 린'은 최상층에 입주자 공용 펜트하우스와 스카이라운지를 설치하고, 서초구 서초동 '서초아트자이'에는 지상 22층 높이에서 두 개 동이 이어진 스카이 브리지에 게스트룸을 만들었다.

    아파트 외관과 조경 등에서 차별화가 시도되는 현상은 전국적인 현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건설사들은 서울 강남 지역이나 수도권 대규모 택지에서 '랜드마크'로 짓는 아파트에 투자를 집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번지' 박원갑 연구소장은 "더 이상 아파트가 콘크리트 흉물이 되지 않도록 정부 차원에서 디자인과 조경 다양화에 적극적인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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