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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광화문의 멀쩡한 주상복합이 흉가 된 사연은

    입력 : 2009.10.10 03:29 | 수정 : 2009.10.10 15:53

    지주들에 개발 유혹한 디벨로퍼
    공사대금 미납·횡령·구속…
    공정률 78%서 스톱… 6년째 방치
    분양사기 휘말린 217가구 피눈물

    부유한 집이라는 의미를 담았다는 주상복합건물 ‘베르시움’이 서울 도심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분양사기로 공사가 중단된 지 6년째이지만 재개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외부 출입을 막기 위해 두른 낡은 담장이 우뚝 솟은 건물 외양과 대비된다. /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서울 광화문 새문안길 남쪽에 지난달 초 새 도로가 뚫렸다. 그런데 금호 아시아나 제2사옥, 흥국생명 본사 같은 초고층 빌딩 사이에 을씨년스러운 건물이 버티고 서있다. 지상 18층~지하 7층 규모인데 6년째 텅 비어 있다. 서학당길~광화문 오피시아~세안빌딩~금호 제2사옥~흥국생명을 잇는 길에서 이 건물은 골칫거리다. 도로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주위에는 철제 담장이 둘러져 있고 막힌 입구엔 컨테이너 경비실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경비원은 "건물 안으로 누가 들어갈까 봐 2교대로 24시간 지키고 있는데 공사가 재개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건물은 무슨 이유로 도심의 거대한 흉가(凶家)처럼 됐을까.

    알짜배기 땅이 흉가가 된 것은 부동산 개발업자 최모(65)씨 때문이다. 그가 7055㎡ 부지에 61필지로 구성된 이곳 재개발지구에 나타난 것은 1993년 5월이다. 그는 기존 토지 면적보다 4배나 큰 평형의 아파트를 분양해주겠다며 땅 주인들을 설득했다. 한 달 후 그는 이 땅에 지상 18층의 주상복합아파트를 짓는 사업시행권을 따냈다. '문화타워'라는 이름으로 분양이 시작된 것은 2년 후인 1995년이다. 분양실적은 저조했고 2년 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외환위기가 닥쳤다.

    악운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공사가 중단됐고 1998년 최씨는 검찰에 구속됐다. 구청 공무원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가 드러난 것이다. 최씨를 믿지 못한 땅 주인들이 사업시행 계약을 파기하기로 했다.

    1999년 말 출소한 최씨는 집요했다. 그는 거삼, 보스코산업이라는 2개의 사업시행사를 가지고 있었다. 사업시행권을 거삼에서 보스코산업으로 옮기면 아무 문제 없이 건물을 지을 수 있다고 주민들을 꾄 것이다. 척 봐도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인데 땅 주인들은 그 교묘한 말에 넘어갔다. 왼손(거삼)이 가지고 있던 사업시행권을 오른손(보스코산업)으로 넘긴 그는 2001년 건물 이름을 '킹덤타워'로 바꾸고 다시 분양을 시작했다.

    18층까지 철골 공사가 끝나고 2002년 공사는 또 중단됐다. 최씨가 이번에는 시공사에 공사대금을 내지 않은 것이다. 그는 다시 재주를 부린다. 삼성생명 등 대기업을 끌어들여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530억원을 대출받고 파격적인 혜택을 내세우며 3차 분양에 나선 것이다.

    그는 건물 이름도 '베르시움'으로 바꿨다. 세번째였다. 종로구청이 기존 계획과 다르다며 분양 및 분양광고 중지명령을 내렸지만 최씨는 분양을 계속했다. 이렇게 2003년 6월까지 이 건물을 분양받은 사람이 217가구, 그들이 낸 계약금과 중도금이 607억원이었다.

    최씨는 이렇게 모은 분양대금을 자기 회사 빚 갚는 데 썼다. 공사대금 320억원을 지불하지 않았다. 그러자 시공사 한진중공업이 2003년 9월 다시 공사를 중단했다. 공정률 78%였을 때였다.

    최씨는 마지막으로 시공사를 설득했지만 공사는 재개된 지 6개월 만에 다시 중단됐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덩그러니 남게 된 베르시움을 보고 분양사기에 휘말린 200여명은 애를 태우고 있다.

    최씨 회사는 파산절차를 밟고 있다. 지난 3년동안 베르시움은 여섯번이나 공매에 부쳐졌지만 모두 유찰(流札)됐다. 경매가격도 700억원이나 떨어졌다고 한다. 파산채권은 4800억원에 이른다. 최씨는 이 중 3800억원에 대한 채권은 부인하고 있다. 최씨는 지난 7월 상고심에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최씨의 변호인 명단에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 김진국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 등 노무현 정권 실세들이 포진해 있어 눈길을 끈다.

    세간에는 최씨가 신문로 재개발사업을 10년 이상 끌어온 데는 모종의 힘이 작용하지 않았느냐는 소문도 있다. 검찰 관계자는 "누가 뒤를 봐줬는지는 확인되지 않았고 돈이 많아 유명한 변호인들을 선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씨는 지난해 1심에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고 항소했지만, 오히려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분양사기가 항소심에서 유죄가 돼 징역 5년으로 가중 처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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