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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금자리 주택 '투기꾼들 보금자리' 되나

    입력 : 2009.09.15 02:30

    세곡지구 85㎡ 당첨되면 2억5000만원 시세 차익…
    청약통장 불법 거래 횡행… 보상금 수조원 노린 세력
    "1~2억 버는 건 일도 아냐" 무늬만 '서민 주거안정' 돈많은 외지인들 배불려

    서울 강서구 염창동에 사는 김모(58)씨. 그는 14년 전 청약저축통장에 가입, 예치금액이 1500만원가량 된다. 그는 인터넷에서 청약통장을 매입한다는 광고에 솔깃해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은 "14년 된 통장이면 5000만~6000만원은 확실하게 받을 수 있다"며 통장 판매를 권했다. 김씨는 "보금자리주택에 청약해 내 집이 생기는 것도 좋지만 지금같이 저축통장이 인기 좋을 때 목돈을 받고 파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가 '야심 차게' 준비한 보금자리주택이 부동산 가격 상승 조짐과 맞물려 '한탕'을 노린 투기 세력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보금자리주택은 분양가격이 시세의 최대 절반 수준으로 예상돼 당첨만 되면 수억원의 높은 웃돈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당첨 가능성이 큰 청약통장을 거액의 웃돈을 주고 불법 매집하는 사례가 확산되는가 하면 토지 보상비를 노린 불법 투기 행위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오는 10월 사전예약을 받는 보금자리주택 시범지구로 지정된 경기도 하남 미사지구 일대에 지난 10일 토지수용에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토지보상을 앞두고 하남시 일대에선 투기꾼들이 등장하기 시작해 정부가 단속에 나섰다./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2억5000만원 차익 나는데…" 통장 불법 매매 활개

    정부는 청약통장 불법 거래 등에 대한 단속활동을 펴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통장 불법거래 사실이 적발되면 매수·매도자 모두 3년 이상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며 "순간적인 유혹에 넘어가 처벌 대상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불법 통장 거래는 이미 공공연한 비밀. 인터넷의 A무료정보지 사이트는 '청약통장 판매'라고 치자 '아파트 청약저축 통장전문, 서울·경기 전지역 3·4자녀 신혼부부 상담'이라고 선전문구를 단 광고가 20여건 올라왔다. 안내 전화번호도 적혀 있었다.

    청약통장 거래란 보금자리주택 당첨 확률이 높은 청약저축통장을 속칭 '떴다방'(이동식 부동산중개업소)에 파는 것. 일단 당첨이 되면 통장 명의자 소유로 해두었다가 전매 가능 기간이 되면 매입자의 명의로 돌리는 것. 정부가 공개한 강남 세곡지구의 보금자리주택 3.3㎡당 분양예정가는 1150만원 수준으로 주변 수서동(평균 2205만원)의 절반 수준. 85㎡(25.7평) 크기의 주택에 당첨되면 2억5000만원 이상의 시세 차익이 보장되는 셈이다. 정부는 보금자리주택에 대해 의무 거주 기간을 5년, 전매 금지 기간을 최장 10년까지 연장하는 대책을 마련했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번지' 박원갑 연구소장은 "과거에도 상황에 따라 전매제한 기간이 단축된 적이 있다"면서 "시세 차익이 너무 큰 까닭에 위험한 불법 통장 거래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보상금 노린 투기 행위

    보금자리시범지구로 지정된 하남 미사·강남 세곡 등 4개 시범지구에도 이미 '투기' 세력들이 움직이기 시작됐다. 최근 경기도 하남시 보금자리지구에 있는 B공인중개사사무소로 들어서자 '상담 실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중년 여성은 A4용지 한 장을 건넸다. 택지개발 이후 상가부지와 이주자 택지 거래 알선을 소개하는 자료였다. 이 여성은 "보상이 시작되면 이곳에 사는 원주민들에게 이주 주택은 물론 상가 부지도 헐값에 쏟아져 나온다"며 "머리만 잘 쓰면 돈 1억~2억원 버는 것은 일도 아니다"고 말했다.

    보금자리지구 중 가장 면적이 큰 하남 미사지구의 경우, 주민들은 보상이 진행되면 6조~7조원까지도 보상금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남시 망월동 주민 박모(48)씨는 "토지 수용 보상금으로 남양주나 하남에서 땅을 알아보고 있다"며 "이미 땅값이 너무 올라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남시의 경우 보금자리주택 시범지구로 지정한 여파로 지난 6월 땅값이 0.67%, 7월에는 0.9% 오르며 두 달 연속 지역별 전국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게다가 정부는 10월쯤 추가로 그린벨트를 5~6곳 해제해 보금자리주택 지구를 선정할 계획이다. 추가 해제 지역으로 이름이 거론되는 하남과 시흥·과천·고양 등지에선 벌써부터 땅값이 들썩이고 있다.

    서민 주거안정 퇴색 우려…

    투기 조짐이 확산되면서 정부가 당초 의도했던 '서민 주거안정'이란 취지도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불법 통장 거래로 정작 집이 필요한 서민은 당첨 기회를 잃게 되고, 자금력 있는 투기꾼의 배만 불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개발예정지역에 대한 땅 투기는 과다한 보상비 지출로 이어져 결국 분양가 상승을 부추기는 부작용도 낳는다. 과도한 보상비 지출은 부동산 시장에 과잉 유동성을 만들어 주변 집값과 땅값을 상승시키는 불쏘시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2기 신도시와 행정중심복합도시 등 각종 개발계획이 일시에 터지면서 매년 20조원이 넘는 토지 보상비가 대거 풀렸다. 결국 이 돈은 부동산 시장으로 환류(還流)하고 말았다. 한양대 임덕호 교수는 "저금리로 갈 곳 없는 자금이 부동산 시장을 교란시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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