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메뉴 건너뛰기 (컨텐츠영역으로 바로 이동)

[심층분석] 정부가 규제를 풀어도 은행이 '돈줄'을 안푼다

    입력 : 2008.11.18 03:24

    투기지역 해제에도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
    은행 "우리도 어려운데… 돈 빌려줄 여유 없다" 대출 여전히 꽉 막혀
    아파트 거래'빙하기' 어떤 대책도 안통해

    지난주 경기도 고양시에서 162㎡(49평)짜리 아파트(분양가 6억5000만원)를 분양 받으려던 중견기업 부장 박모(44)씨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박씨는 정부가 지난 7일자로 서울 강남·서초·송파구를 제외한 전 지역을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했다는 소식에 집값의 절반을 대출 받아 계약하려 했다. 하지만 대출 상담을 위해 찾았던 모델하우스 인근 N, W은행 관계자로부터 모두 '대출해 줄 수 없다'는 대답만 들은 것. 박씨가 '투기지역에서 풀렸으면 집값의 60%까지 빌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따졌지만, 두 곳 모두 '지금 분위기에선 대출이 어렵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박씨는 "일산 102㎡(31평) 아파트서 살다가 애들도 크고 해서 큰 평형으로 옮기려던 참이었다"며 "요즘 대출 금리도 7% 후반으로 떨어지고 대출 규제도 풀렸다고 해서 찾았는데, 역시 정부 발표는 믿을 게 못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 7일 자로 거의 대부분의 투기지역을 풀었지만 상당수 은행들이 해당 지역 주택 담보 대출을 제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부동산 경기 활성화 방안으로 내놓은 투기지역 해제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조치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곳곳에서 대출 불가

    기존 아파트 거래 시장도 상황은 마찬가지. 최모(50)씨는 이번에 투기지역에서 풀린 서울 양천구 목동의 115.7㎡(35평)짜리(시세 8억~8억5000만원) 아파트를 구입하기로 하고 인근 K은행 대출 창구를 찾았다. 하지만 은행 직원은 최씨에게 "미국 금융위기 여파로 11월 들어 주택담보대출은 거의 나가지 않고 있다"며 "요즘은 예금 담보대출도 될까 말까 한 판"이라고 했다.

    또 용인 수지나 경기도 분당 등 이번에 투기지역에서 풀린 다른 지역 은행들도 대출을 꺼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부 은행은 자체적으로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 분당 H은행의 경우 대출 창구에서 "DTI제도가 없어지긴 했지만, 사실상 DTI규정에 준한 연 소득이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은행들 몸 사리기, 정부 정책은 유명무실

    은행들이 이처럼 대출에 인색한 것은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은행 스스로가 신용 경색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강동지역의 한 대형은행 김모(45) 지점장은 "연말까지 은행의 재무 건전성을 따지는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야 하는 등 여유가 없는 만큼, 가급적 주택담보대출 등을 자제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고 말했다. 여기에 정부의 각종 규제 완화에도 불구하고 집값 하락세가 멈추지 않는 것도 한 이유로 꼽히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아파트 가격이 계속 떨어지면 제 아무리 60% 선에서 대출해줘도 이게 나중에 80%, 90% 수준까지 올라가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더 감' 이기성 사장은 "투기지역 해제로 대출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했겠지만 시장 분위기는 영 딴판"이라며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겨우 될 만한 거래마저 다시 중단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11·3대책 이후 재건축 급매물 위주로 거래됐던 일선 아파트 매매 시장은 최근 다시 침체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는 형국이다. 현대경제연구원 박덕배 연구위원은 "정부가 정책 효과를 제대로 예측 못하는 데다, 그나마 정책을 내놔도 현장에서 통하지 않아 유명무실화되고 있다"며 "정부가 금융·주택거래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종합적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투기지역=
    지난 정부가 주택 수요 억제를 위해 도입한 제도. 이 지역의 6억원 초과 아파트를 구입할 때는 집값의 40% 범위 내에서 DTI 40% 규제를 적용해 대출해줬다. 하지만 지난 7일 정부가 서울 강남·서초·송파구를 제외한 전 지역을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함으로써, 원론적으로 이들 강남 3개 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선 집값의 60%까지, DTI 규정 없이 빌릴 수 있게 됐다.

    DTI(Debt To Income:총부채상환비율)=
    매년 갚아야 할 대출원리금이 연간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 DTI 40%라면 매년 상환하는 원리금이 연소득의 40% 이내가 되도록 대출 한도를 정해 그 한도 내에서만 대출해 준다는 뜻이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sns 공유하기 기사 목록 맨 위로
    닫기